설교/출애굽기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창무 2015. 5. 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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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요절: 출애굽기 16:4 "그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지금은 인기가 시들하지만 제 학창 시절에는 중국 무협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중국 무협 영화는 제목은 각기 달라도 스토리는 늘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항상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젊은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무림 고수를 찾아 깊은 산 속에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을 제자 삼아 달라고 간절히 청을 올리고, 고수는 마지못해 그를 제자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스승은 무술은 가르쳐주지 않고 날마다 물 떠오고 청소하고 밥하는 일만 시킵니다. 함께 들어왔던 동기는 도대체 이러다가 무술은 언제 배우냐며 투덜대다가 결국 산을 내려갑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꾹 참고 날마다 정성스럽게 허드렛일을 감당합니다. 마침내 주인공은 어느날 스승으로부터 무술의 비기를 하나씩 전수받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스승은 날마다 물을 떠오라고 한 것은 다리와 팔에 힘을 기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주인공은 드디어 마지막 남은 최후의 필살기까지 모두 다 전수 받고 하산하여 강호를 평정해 버립니다. 그런데 무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히딩크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훈련이 무엇이냐? 바로 기초 체력 훈련이었습니다. 선진 축구 기술을 전수받으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딩크는 욕을 먹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체력 훈련을 날마다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가 옳았음이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16강 대 이탈리아 전에서 승부차기에 가기 전까지 전후반과 연장전 내내 계속된 이탈리아의 파상 공세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히딩크의 체력 훈련 덕분이었습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꾸준하게 행하는 경건의 연습이 습관으로 정착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이 안 되면 배움도 없고 영적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신앙 생활에 있어서 날마다 꾸준한 경건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이를 우리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두 달 반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엘림을 지나 신광야에 이르렀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생물이 살기에 적합하지 못한 환경입니다. 광야에는 먹을만한 나무 열매도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도 토끼나 사슴 같은 사냥할 짐승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먹을 양식이 없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아따 배고파 죽겄어요. 이봐 모세 양반! 우리를 굶겨 죽일 작정으로 여기까지 꼬셔낸 것이야?" 그들은 출애굽한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애굽생활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정말로 그들이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었던 때가 떡을 배불리 먹던 때가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 말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부대에 남은 음식 소위 짬이라고 부르는 것을 무상으로 수거해 가는 양돈업자가 한 분 계셨습니다. 대신 이 분은 일년에 한번씩 돼지 다섯 마리 정도를 부대에 기부하셨습니다. 그 날은 전 부대원이 고기로 포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직접 용접을 해서 만든 거대한 불판에 소금을 뿌려 가면서 구워먹는 생삼겹살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고 한들 군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요즘도 저는 아주 가끔씩 병무청의 행정 착오로 다시 군에 입대하는 꿈을 꾸곤 합니다. 그때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안 돼 이건 아니야' 하면서 잠에서 벌떡 깨곤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백성은 어떻습니까? 애굽에서 노예생활할 때가 좋았습니까? 너무너무 비참했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처럼 부림 당하는 삶, 인간대접도 받지 못하는 삶, 때로는 짐승만도 못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긋지긋한 노예상태에서만 구원해 주시면 무슨 일이든지 다 감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히자 구원의 은혜는 다 잊어버리고 원망불평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한 번 고기 메뉴로 회식했던 것 하나 가지고 그 시절이 더 좋았다면서 역사의 시계추를 다시 과거로 돌리려고 합니다. 이들은 참으로 배은망덕한 자들입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와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우리 다같이 4절 상반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하나님은 아예 양식을 다 만드셔서 하늘에서 비처럼 뿌려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씨를 뿌려서 곡식을 재배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름을 주고 물을 대고 가꿀 필요도 없습니다. 추수를 하고 타작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예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처리해서 완제품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양식인 만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늘 양식을 통해 백성들을 먹이시고자 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4b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두도록 하신 것은 단순히 백성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깊고 중요한 뜻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습관을 형성시켜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되 한 달치나 일주일치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고 매일 매일 그날 먹을 만큼만 주셨습니다. 그것도 21절에 보면 아침에 거두어야지 해가 뜨고 나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나를 먹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진 사면으로 나아가 만나를 거두어야 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는 안일하고 무절제한 이스라엘백성들이 규모 있고 부지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버릇이 몸에 배어 있어서 먹을 것이 있으면 한꺼번에 왕창 먹고 없으면 며칠이라도 굶었습니다. 잠도 한 번 잤다하면 24시간을 자고, 안잘 때는 며칠이고 밤을 꼬박 새우며 게임하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주인이 야단을 치면 열심히 일하는 체 하고 주인의 감독이 소홀해지면 슬슬 눈치 보며 요령피우고. 이런 생활을 반복하였습니다. 이런 생활을 400년 동안이나 하였으니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천박하고 나태하고 무질서했겠습니까? 이런 자들이 어떻게 세상만민을 품고 섬기는 제사장나라가 될 수 있습니까? 이에 하나님께서는 매일 일용할 양식 훈련을 통해 그들의 죄악된 노예근성을 빼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빚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매일 아침잠을 부인하고 일찍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거두러 가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시간표가 생기고, 규모가 있고, 질서가 잡힌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조금씩 '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율법에 준행하면 복을 받는구나' '내 맘대로 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훨씬 좋구나' 이런 자각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자신의 감정을 중시하는 시대입니다. 소위 말하는 필(느낌)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장훈필 형제님이 참 중요한 분입니다.) 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일단 한 번 필을 받으면 밤을 새워가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필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컨디션 좋은 날은 고고씽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 기분이 꼬질꼬질한 날은 다 때려 치고 아무 것도 안 합니다. 어떤 날은 밤을 하얗게 새고 어떤 날은 겨울잠 자는 곰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잡니다. 땡기는 날에는 폭식을 하고 기분이 꿀꿀한 날엔 아무것도 안 먹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일에 있어서는 분명 반짝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고 위대한 일들이 대부분이 다 그렇듯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탁월함을 이끌어내는데 있어서는 이런 방식은 반드시 실패하고 맙니다. 

여러분! 이 분이 누구인지 맞춰 보십시오. 초등학교 1학년 때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스스로 깨달아 작곡을 시작했고, 지휘자 금난새씨는 "내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에 음악 천재가 한 명 있었지... 그런데 가난해서 늘 수돗물을 배를 채우곤 했어.."라고 말한 천재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가수 송창식씨입니다. 서양 음악도 국악도 아닌 정말 독특한 이 분의 음악을 듣다 보면 정말 천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타고난 재능을 가진데다가 68년에 데뷔했으니 이제 43년차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하루에 세 시간씩 반드시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라도 악기 연습과 목소리, 음정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세월이 흘러도 제가 예전과 똑같이 노래할 수 있는 건, 매일 하루에 3시간씩 연습하기 때문이죠."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존 칼빈은 신앙 생활은 우선 성실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책 기독교 강요 제 3 권 6장 4절의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신자의 대부분은 심히 약해서 그들은 비틀거리며 절름거리며 심지어 기어갈 뿐, 그 움직이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의 미미한 능력의 정도에 따라서 전진할 생각으로 우리가 시작한 여행을 떠나도록 하자. 비록 아주 짧은 거리일지라도 매일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그런 출발은 상서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길에서 다소라도 끊임없이 전진하도록 우리의 노력을 중단치 말아야 한다. 우리의 성공이 사소한 때에도 낙심하지 말라. 원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나으면 무익한 노력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진실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우리의 목표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저는 이런 삶의 모습을 안겸손 목자님에게서 봅니다. 안겸손 목자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새벽 기도를 감당하십니다. 보통은 10시전에 잠든다고 하시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도 다음날 어김 없이 새벽 기도를 준비를 하러 5시에 센터에 나오십니다. 몇 달 동안 지켜 봤는데 딱 한 번 지난 번 맹장 수술을 하고 한 5일 입원하신 때를 빼고는 빠진 적을 못 봤습니다. 성실함과 꾸준함은 정말 안겸손 목자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성실하고 꾸준한 것이 전부 다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실함과 꾸준함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과 기도, 매 주 있는 화요찬양기도회와 목요 놀러와 미팅 참석 이런 것이 별 것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컨디션 좋으면 가고 안 좋으면 안 가고 해도 별 문제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루 빠지고 한 주 빠진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별 차이가 안 날지 모르지만 1년이 가고 2년이 지나고 5년, 10년이 지나게 되면 그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게 됩니다. 한 사람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같이 주렁주렁 의의 열매를 맺는 복있는 삶,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기분대로 느낌따라 수시로 들락날락했던 사람은 내면의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고 메마르고 열매도 없을 것입니다. 1년 후, 2년 후, 5년 후 10년 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거두는 훈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주신 훈련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받아야 할 훈련도 바로 이 신실함의 훈련 즉 내 상태가 어떠하든, 내 기분이 어떠하든 경건의 연습을 날마다 그리고 매주 소홀히 하지 않고 꾸준히 감당하는 훈련입니다. 이 신실함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훈련의 기초가 놓여진 가운데서야 성령께서 내 마음을 만지시고 빚으셔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특히 우리 학생회 형제 자매들이 학창 시절 동안 신실함을 잘 배워 신앙과 인생의 기초를 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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