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 3강 / 이창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말씀/ 누가복음 18:1-8
요절/ 누가복음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기도와 낙심 사이
살면서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밤을 새워 스펙을 쌓고 자기소개서를 수십 군데 써서 냈는데, 돌아오는 건 무미건조한 거절 이메일뿐일 때. 혹은 정말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산산조각 났을 때. 우리는 그 막막한 벽 앞에서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세상은 내 목소리에 관심이 없구나." 그럴 때 우리 마음에는 깊은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무력감은 곧 '포기'로 이어집니다. "해봤자 안 돼", "말해봤자 소용없어"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하죠.
사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속에도 그런 거대한 벽 앞에 선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 과부'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과부는 아무런 힘도, 배경도, 돈도 없는 가장 연약한 존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억울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판장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 재판장이 어떤 사람입니까? 2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재판장은 과부에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습니다. 돈을 찔러주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고, 힘없는 자의 호소는 잡음 정도로 취급하는 냉혹한 사람이었죠. 마치 우리가 마주하는 이 차갑고 효율 중심적인 세상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이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아주 중요한 목적을 밝히십니다. 1절을 함께 보실까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1)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낙심'하는지, 그리고 그 낙심 때문에 얼마나 쉽게 하나님께 말 거는 것을 포기하는지를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 끈질긴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한 벽이 아무리 높더라도 우리가 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말을 거는 그 대상인 하나님은 세상이라는 재판장과 어떻게 다른 분인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무언가에 막혀 낙심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으시는 그분을 다시 만나는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벽, '불의한 재판장'을 마주하다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2)
예수님은 비유 속 재판장을 두 마디로 정의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입니다.
그는 공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자신의 안위가 훨씬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재판장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처한 부패한 현실의 단면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논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과부는 당시 법정에 설 수는 있었지만, 변호해 줄 남편이나 아들이 없었고 뇌물을 줄 돈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재판장의 귀에는 그저 귀찮은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하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요?
"배경이 없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
"성과를 내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증명되지 않는 냉혹한 평가 시스템"
우리는 종종 세상이라는 거대한 재판장 앞에서 좌절합니다. "내가 더 유능했더라면,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졌더라면 내 목소리가 들렸을 텐데"라고 자책하며 입을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부가 택한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3)
과부는 자주 그에게 갔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를 했습니다. 재판장이 그녀의 요구를 들어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의감 때문이었나요? 아니었습니다. 5절에 그 본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5)
여기서 '괴롭게 하다'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눈 아래를 쳐서 멍들게 하다'입니다. 즉, 재판장은 그녀가 하도 귀찮게 구니까 "아, 이제 좀 살고 싶다. 그냥 들어주고 치우자!"라는 마음으로 응답한 겁니다.
세상의 응답 방식은 대개 이런 식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응답받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귀찮게 해서 겨우 무언가를 얻어내야 하는 피로한 투쟁의 연속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흔히 오해합니다. "하나님도 이 재판장처럼 내가 떼를 쓰고, 귀찮게 굴어야만 겨우 마지못해 들어주시는 분이 아닐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려주신 진짜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냉혹한 재판장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불통’의 재판장이 아니라,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보여주시는 놀라운 반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도 이 재판장처럼 인색하고 고집불통이니, 너희도 과부처럼 끝까지 떼를 써서 무언가를 받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우리가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진짜 이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앞서 본 재판장에게 과부는 어떤 존재였나요? 그저 자신의 휴식을 방해하는 '번거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귀찮고, 피하고 싶고,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하는 대상이었죠.
하지만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누구라고 부르십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이라고 부르십니다. '택하신 자'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수험번호'로 기억하고, '학점'과 '스펙'으로 등급을 매기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처럼 '선택한 자녀'로 보십니다.
재판장은 과부를 '귀찮은 이방인'으로 대했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아들딸'로 대하십니다. 자녀의 목소리가 부모에게 번거로운 소음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의 목소리는 세상 그 어떤 소리보다 가장 먼저 들리는 '신호'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아주 강력합니다. 6절과 7절을 다시 보면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나쁜 재판장조차도 계속 말하면 결국 들어주는데, 하물며 너희를 너무나 사랑해서 아들(예수님)까지 내어주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의 기도를 외면하시겠느냐?"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기도는 인색한 신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한 '고행'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버지께 나의 마음을 쏟아놓는 '대화'입니다.
이제 우리는 '혹시 안 들어주시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아니라, '반드시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두꺼운 담벼락을 두드리는 고독한 외침이 아니라, 나를 향해 두 팔 벌린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잡는 겁니다. 나 자신의 연약함,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아픔, 그리고 아주 작은 소망까지도 숨기지 말고 다 쏟아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번거로운 민원'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와의 달콤한 대화'로 여기십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일하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8a)
8절에서 예수님은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우리에게 정작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간절히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입니다. 7절 끝에 언급된 표현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시는 것 같은 그 시간이, 우리 입장에서는 응답의 지체이자 가혹한 하나님의 침묵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하나님, 속히 응답하시겠다더니 왜 이토록 더디기만 한 겁니까?"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주인공 브루스(짐 캐리)는 자신의 삶이 불행한 이유가 신의 무관심 때문이라 원망하다가, 어느 날 신으로부터 전지전능한 능력을 잠시 양도받게 됩니다. 수억만 명의 기도 소리에 괴로워하던 그는 모든 기도에 ‘예’라고 답하는 것이 가장 선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모든 소원을 즉각 들어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모두가 복권 1등에 당첨되는 바람에 당첨금은 고작 몇 달러에 불과해졌고, 노력 없이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자 세상은 질서를 잃고 폭동과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브루스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의 모든 욕망이 즉각적으로 채워지는 세상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이때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 절망한 브루스에게 진정한 기적의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은 흔히 홍수가 갈라지거나 마법처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적이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단지 ‘마술’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짜 기적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미혼모가 두 개의 직업을 뛰며 자녀를 정성껏 돌보는 인내, 사춘기 아들이 탈선의 유혹을 뿌리치고 공부에 전념하는 의지, 그리고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기로 결심하는 사랑의 실천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브루스에게 “기적을 보고 싶나? 자네 스스로 기적이 되게”라고 당부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기도가 나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내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변화된 삶’ 자체가 가장 위대한 기적임을 우리에게 시사해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즉각 'Yes'라고 답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우리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것보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릇'이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때를 위한 세밀한 조정의 시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속히'는 우리의 조급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응답을 단순히 소비하고 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응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빚어질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 눈에는 더디게 보일지라도, 사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가장 안전하고 단단하게 세워질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속도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온전하게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가장 열정적인 응답의 시간임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마지막인 8절에서 예수님은 아주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8b)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내 뜻대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무조건 잘될 거라고 믿는 '긍정적 사고'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믿음은 '응답이 더뎌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힘'입니다. 즉,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좋으신 아버지이시다"라고 고백하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태도' 그 자체입니다.
과부는 재판장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애썼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됩니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왜 안 도와주시냐"고 따지던 우리가, 기도의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 그 변화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장 큰 응답이자 기적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 '응답 없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여러분의 밤낮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분은 지체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가장 완벽한 타이밍을 준비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다시, 당신의 아버지께 말을 거십시오
오늘 우리는 세상이라는 '불의한 재판장' 앞에 서서 낙심했던 한 과부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예수님의 진짜 마음을 만났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목소리에 무관심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주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가장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특별히 2026년 올해, 우리 안암1부는 "우리의 기도가 쌓여 기적을 이루게 하소서"라는 표어를 가슴에 품고 출발합니다.
과부가 재판장을 '자주' 찾아갔을 때,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첫 번째 방문도, 열 번째 방문도 재판장은 요지부동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헛수고 같아 보이던 시간들이 층층이 쌓였을 때, 마침내 재판장의 마음을 움직이는 임계점을 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응답이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은 기도가 땅에 떨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입니다. 낙심하지 않고 한 번 더 무릎을 꿇는 그 기도가 기적의 토양이 됩니다.
우리는 대개 상황이 바뀌는 것만을 기적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기도가 쌓이는 과정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내면이 바뀌는 겁니다.
불안이 평강으로 바뀌는 기적!
원망이 신뢰로 바뀌는 기적!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기적!
예수님은 마지막에 물으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 믿음은 기도가 쌓이는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보석입니다.
사랑하는 안암1부 러너스 여러분, 혹시 응답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하나님께 말 거는 걸 포기하진 않으셨나요? 2026년 한 해,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거대한 벽 앞에서 혼자 울지 말고, 그 벽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을 잡으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한 층, 한 층 쌓여갈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적의 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쌓여 기적을 이루게 하소서." 이 고백이 관념이 아닌 러너스 여러분들의 실제 삶의 간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설교 >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잃어버린 아들들: 자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 (2) | 2025.11.02 |
|---|---|
|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0) | 2023.02.19 |
|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2) | 2023.01.23 |
|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0) | 2023.01.15 |
|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0) | 2023.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