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캠퍼스 선교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이창무 2023. 7. 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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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러너스 캠프 특강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말씀 / 사도행전 12:1-17
요절 / 사도행전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예전에 제가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지인에게 병문안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 환자분에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병실을 떠나기 직전에 제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그냥 기도라도 해 드릴께요.” 그러자 그분이 정색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기도라도’ 라니요? 저에게는 기도가 가장 큰 힘이고 가장 큰 도움입니다. 제가 낫게 된다면 그건 기도 덕분이에요.” 그 순간 저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했습니다. 제가 기도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러너스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요? 카카오톡 선물인가요? 그것도 좋지만 한 번의 간절한 기도가 아닐까요? 오늘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중요성, 특히 공동체의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1,2) 

본문의 헤롯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서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헤롯 왕가는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출신이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왕궁 앞에서 날마다 헤롯왕 퇴진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촛불 시위가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있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교회라는 곳이 급성장을 하고 있는데, 유대인들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첩보를 입수합니다. 헤롯은 이것이 유대인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합니다. 일단 맛보기로 사도 야고보를 잡아 칼로 죽이고 유대인들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대인들은 이 일을 크게 기뻐합니다. 헤롯은 이 일에 크게 고무됩니다. 내친 김에 사도 베드로까지 체포해 죽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압승은 따논 당상일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전에도 탈옥한 전과가 있습니다. 헤롯은 그래서 이번에는 16명의 군인을 네 명씩 4개조로 나누어 24시간 지키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의 온 몸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 놓습니다. 상식적으로 베드로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단 1퍼센트도 없습니다. 때마침 유대인의 명절이라 집행을 미루었을 뿐, 이대로 가면 베드로는 며칠 후 사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고 슬픔이겠습니까? 만약 베드로가 죽는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예루살렘 교회는 구심점을 잃고 성도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버릴지 모릅니다. 헤롯의 칼날이 그 다음에는 누구의 목을 노릴지 알 수 없습니다. 막강한 정치 세력에 의한 기독교 탄압으로 교회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상황입니다.

이처럼 헤롯에게는 권력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군대를 동원할 수 있고 언제든지 칼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습니까? 아무 힘이 없습니다. 칼도 없고 군대도 없습니다. 만약 돈이라도 많이 있었다면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쳐서라도 베드로를 빼내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머릿수를 따져 봐도 교회는 소수이고 헤롯 편에 선 유대인들은 다수입니다. 거대한 세상의 힘 앞에서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독재자 헤롯은 베드로를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왕궁 앞에서 시위라도 할까요? 아니면 더 늦기 전에 각자 살 길을 찾아 도망을 쳐야 할까요?

이 때 예루살렘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5)

교회는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알고보니 교회가 가진 강력한 무기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세상이 알 수도 없고 가질 수 없는 비밀의 무기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혹시 힘없는 실패자들의 자기 위로이자 희망 고문이 아닐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 4절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견고한 마귀의 진을 파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말이 기도 자체가 무슨 마술적인 능력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도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기도를 들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권세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기도의 주체를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말은 믿는 자들이 각자 알아서 여기저기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모여 공통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합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12절에 보면 여러 성도들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 밤늦은 시간까지 기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저녁 때부터 모여서 밤을 새워 철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서 '간절히'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뜨겁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온 교회는 너나 할 것이 없이 베드로를 위해서 뜨겁게, 열정적으로, 큰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골방에 들어가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되지 꼭 나와서 함께 기도해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골방에서 드리는 개인 기도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만 몇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함께 드리는 기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 기도가 소총을 한 발 한 발 탕 탕 쏘는 것과 같다면 여럿이 함께 모여 드리는 기도는 미사일과 같습니다. 사탄의 견고한 진은 개인 기도만으로는 파괴시키기 어렵습니다. 교회가 기도의 미사일을 퍼부어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교회의 합심 기도가 이처럼 강력한 이유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8-20)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에 빠르게 응답하십니다.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시되 합심 기도에 가장 우선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 러너스가 기도의 능력을 믿고 모여 함께 뜨겁게 기도하는 러너스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가 합심 기도한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때는 유월절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곧 날이 밝으면 베드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행 집행 시간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베드로는 쿨쿨 잠을 자고 있습니다. 원래 잠이 많은 것인지 믿음이 좋은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때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어둡던 감옥 안에 밝은 빛이 비춥니다. 이 정도면 웬만해서는 스스로 일어날 법도 한데 베드로는 계속 잡니다. 천사는 발로 베드로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합니다. "급히 일어나라"

그러자 신기하게도 베드로를 꽁꽁 묶어 두었던 쇠사슬이 스르르 풀립니다. 천사는 베드로에게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천사를 따라 파수를 서던 군인들 곁을 지나쳐 가는데도 아무런 제지를 당하지 않습니다. 시내로 가는 쇠문이 굳게 잠겨 있었으나 베드로가 앞에 서자 자동문처럼 스르르 열립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시내와 나오자 서늘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때서야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11)

오늘 본문에서 1절부터 4절까지는 분위기가 우울합니다. 어둡고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6절부터 분위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밝고 희망적입니다. 조마조마하면서도 짜릿한 승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반전을 일으킨 결정적인 모멘텀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5절에 나오는 교회의 합심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곧바로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구출해 내심으로 합심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도 합심 기도를 통하여 옥에 갇혔던 베드로처럼 절망적인 한계 상황에 갇힌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들의 합심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이라는 옥에 갇혀 절망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치쳐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하여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기도해 왔지만,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기적과 같은 일이 그분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육신적인 병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빠져서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심한 중독증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또한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늪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취업과 시험이라는 감옥에 갇힌 분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지쳐 낙심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고 시험에 들어서 "영혼이 옥에 갇혀 있는" 러너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침체에 빠진 지체들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합심 기도는 교회인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뜨겁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한계상황에 갇힌 분들을 도우시고 그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주 중에 여러 기도 모임에 참석해서 합심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 모임에서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을 들어 보니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때로 기도가 응답 받았는 소식을 듣고 함께 기도한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뛸 듯이 기뻐하기도 합니다.

기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당사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까? 물론 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물론 그 중에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는 것을 제가 알고 기억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를 위해서 합심 기도한 분들이 무척 많았으리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까? 내가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있을 때 누가 기도해주었습니까? 목자님 또는 부모님이 기도해 주었습니다. 교회가 기도해주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드리는 러너스들이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기도에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할 준비가 되어있는 기도 지원 부대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 교회와 동역자들에게 보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기도 응답으로 감옥을 나오게 된 베드로는 이후 어떻게 됩니까?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12)

탈옥한 베드로는 마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으로 갑니다. 거기에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목소리를 높여 기도하는지 기도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립니다. "주님! 우리 베드로 사도님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감옥에서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는 자신이 깊은 감옥에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교회의 합심 기도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어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어 대문을 두드립니다. '로데'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가 문을 열어주러 나옵니다. '누구세요'라고 묻자 '나야 나'라고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로데는 베드로의 목소리임을 직감합니다. 너무 기뻐 깡충깡충 뛰며 베드로의 생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문 열어 주는 것을 깜빡하고 맙니다. "베드로 사도님이 지금 대문 밖에 와 계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로데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네가 미쳤구나. 사도님을 너무 보고 싶어서 그만 헛것을 본거야” 이 상황에서 제일 황당한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슬슬 화가 나려고 합니다. "쾅쾅쾅" 계속 문을 두드립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문을 열어줍니다. 진짜 베드로가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성도들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정말 그 기도가 이렇게 빨리 응답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 가뭄이 들어 많은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비를 주시도록 특별 기도회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정말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잠시 후 장대비가 주룩주룩 쏟아졌습니다. 어른들은 기뻐하면서도 이제 어떻게 집에 가냐고 걱정을 했습니다. 이때 작은 꼬마 아이 하나가 혼자서 우산을 펴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들은 왜 비가 올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우산을 준비해 오지 않으셨어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시골의 어른들이나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하던 성도들 모두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정말 하나님께서 기도한 대로 이루실 줄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믿음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자란 믿음, 부끄러운 믿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부족한 믿음으로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기도를 잘 못해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기도는 너무 어려워요. 저는 믿음이 별로 없어서 제 기도는 별 소용이 없을거에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실 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가 낯설고 어눌해도 괜찮습니다. 일단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부족한 기도라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은 정말 신비로운 일이고 또한 큰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 크던지 작던지 어떤 모양으로든지 합심 기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체험하고 믿음이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러너스는 그 동안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교제하는 일에 힘을 써 왔습니다. 여기에 멈추지 말고 오늘 우리가 들은 이 말씀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러너스가 합심 기도에 힘 쓰는 러너스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러너스 각 팀이 기도하기 위해 모인 둥근 원이 하늘을 향한 기도의 안테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로서 기도하는 러너스를 통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감옥과 같은 한계 상황에 갇힌 사람들을 꺼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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