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목회 현장

한인 교회의 영적 학대

이창무 2016. 12. 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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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이자 목사인 서이식 박사님이 쓰신 한인 교회에서 영적 학대 문제에 관한 글입니다.



1.영적 학대란 무엇인가?


정신과에서 모든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IV)에 의하면

학대나 방치와 연관되는 문제로 임상적 관심의 초점에 따라

육체적 학대, 감정적 학대, 정신적 학대, 성적학대, 아동학대, 또는 노인학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학대이든 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에 그것을 학대라고 합니다.

육체적 학대는 물리적 힘을 사용하여 육체적 상처를 입혔을 때를 말하며,

감정적 학대는 감정적 힘을 사용하여 감정적 상처를 입혔을 때를 말하며,

정신적 학대는 정신적 힘을 사용하여 정신적 상처를 입혔을 때를 말하며,

성적 학대는 성적 힘을 사용하여 성적 상처를 입혔을 때를 말 합니다.


이와 같이 영적학대는 영적지도자가 영적권위와 그 직책을 사용해서 신뢰와 존경을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조정하고, 착취하여 실제로는 자신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따르게 하여

영적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학대 대상으로 보면

 

일년에 3백만 건 이상 발생하고 있는 아동학대,

65세 이상 되는 노인 증 10% 이상이 시달리고 있는 노인 학대,

8백만 건 이상 되는 배우자 학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학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없으나,

우리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신성한 권위에 근거한

소위 신성한 영적지도자들에 의하여 교묘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은패 되는 경우가 많으며,

많은 영적피해자들의 무지와 그 사실을 인정치 않으려는 부정(denial)적 태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심하게 영적학대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듯이 이제 학대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이 영적학대에 대하여 알고 이해함으로서

이 영적학대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또 영적학대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on Enroth 라고 하는 신학자에 의하면,

"육체적인 학대가 종종 육체에 상처를 남기는 것과는 달리 영적 학대와 목회적 학대는 영혼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종교 지도자와 영적 권위자들의 역할의 고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들에 의하여 가해진다.

 그들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둔 권위에 기초를 두고 있으 며, 그들 스스로 신성한 신뢰를 지닌 목사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이 신뢰를 깨뜨리거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남용할 때

 그리고 회중을 통제하고 조종하기 위하여 성직의 힘을 잘못 사용할 때, 그 결과는 비극적일 수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50세의 Mr. Kim(가명)이라고 하는 분이 심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하면서 치료를 받기위하여 저를 찾아 왔습니다.

미국에 온지 20년이 되며 그 동안 믿음을 찾아 살아보려고 이 교회 저 교회로 다녀보았고

많은 상처와 실망을 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찾은 교회에서 마저 목회자에 대하여 실망을 경험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목사인데, 기름부음을 받은 종인데, 하나님께서 치리하실 일이지 하면서 믿음을 지켜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의 부조리한 태도와 리더십에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 졌다고 합니다.

거의 한달 동안 슬픔과 비통함에 일도 손에 안 잡히고 혐오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 목회자와 하나님에 까지 미치는 증오감과 악몽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고

가정도 질서를 잃어가고 부부 관계도 의견 충돌로 인해 이혼직전까지 왔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죽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영적 마음에 심한 상처를 받았을 때 그 나타나는 영향은

육체적인 면, 정신적인 면, 정서적인 면, 또 사회적인 면에 걸쳐 엄청난 장애를 초래하게 됩니다.

혼란과 혼돈 속에서 괴로워하고 상처 속에서 분노와 싸웁니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당했다는 기분에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지어

자기학대에 빠지기가 쉽고, 심지어는 학대자 증오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에게 까지 증오가 뻗치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과 죄책감과 증오와 하나님의 치유로부터의 단절로 인해 무기력하게 되고, 좌절과 실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심리적으로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외 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육체적으로는 혈압상승, 피로함과 식욕부진, 수면장애 등 몸의 불균형을 초래함으로 많은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C. S. Lewis는  "모든 악한 사람들 중에 영적박해자야말로 종교적으로 가장 악한 사람들이다." 라고 했고,

 

예수님은 누가12;10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영적학대는 우리의 가장 내적 생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적 핵심을 파괴함으로서 성령의 능력을 제제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 모독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학대하는 지도자들은 대단히 합리화를 잘하며 매우 방어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영적학대는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고

어떤 성취와 만족을 위해 미리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획된 "강력한 욕망"에 의해서 자행되기 때문입니다. 



2. 영적학대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가? 



육체적 학대이건, 정신적 학대 이건, 정서적 학대이건, 또는 성적학대 이건,

그 학대자는 거의 모두가 자아의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인생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발달장애 내지는 학대경험에 의한 정신학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학대 지도자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결함을 찾아볼 수가 있으며, 가장 뚜렷한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갔습니다. 



첫째, 권위의식(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겁니다.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나에게 순종해야 하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협박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와 강요는 진실된 종의 지도력이나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호칭, 지위, 학위와 같은 전통적이고 세속적인 허세에 의한 것으로 심히 잘못된 것이라고

신학자 켄 블루는 영적학대의 치유라는 저서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방어 기전(Defense Mechanism)은 자신들의 직책이나 권위를 방어하기 위해

우리는 유일한 능력을 부여받고, 하늘로부터 매우 소중한 소명을 받고 또 특별한 계시를 받은 자로 부각시키면서

학대의 성벽을 보호 증축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나는 "주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으로 특별한 택함과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왕과 예언자와 제사장들에게 부여했던 "영적 기름부음"은 신약에 와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졌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소중한 사명과 예언을 받은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2:9 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라고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는 어떤 것에 질문을 한다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고 의심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며 믿음이 부족한 자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이나 대응을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지도자가 잘못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루실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료적인 관습과 규정과 법규 또한 전통적 관습에 얽매어 있게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이미지(Image) 집착에 전념을 기우린 다는 겁니다.


지도자의 성품의 결여와 잘못된 판단이 있어도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인정을 안 한다든지 또는 은폐를 한다는 겁니다.

 

여러 생각과 행동의 높은 수준을 설정해서 그것을 지킬 것을 강요하며, 그렇게 따르거나 지키지 못하는 경우는 지도자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여 절대복종의 필요성을 강요합니다. 높은 단상과 호화로운 가운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셋째.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완벽주의를 강요한다는 겁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노력해서 벌어야 하고 적어도 그것을 위해서 많은 봉사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축복은 영적 요구들을 철저하게 수행함으로써 온다고 가르침으로 무거운 부담과 짐을 지우고.

이런 속에서 추종자들은 해야 할 일들을 못 했을 경우는 좌절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이들은 점점 더 학대의 그늘로 접어들게 되어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릇된 은혜주의와 의견의 일치, 또는 침묵주의를 강요하게 되고

이 차적인 것을 일 차적인 것으로 부각시킴으로

진리를 왜곡하여 심각한 영적피해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에 그 어느 것을 첨가시키는 것은 복음을 모독 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본데란 이라는 신학자에 의하면

영적으로 학대하는 체계 하에서는 세속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했고,

켄 블루는 목회의 초점이 목회적 필요에 의해서 종교의식과 프로그램과 예산으로 옮겨가면

그것은 잠재적으로 학대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면죄부로 바꿔버렸기 때문이 아닙니까? 



네 번째는, 정신 분열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타인을 믿지 못하는 피해망상증세가 나타나며, 영웅의식에 집착한 과대망상증에 의해서 영적학대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박해지도자는 어떤 교리나 교회정책 규정 절차들을 비밀에 부치게 됩니다.

특히 많은 비밀을 갖고 있는데, 믿지 못하고 비밀에 두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에 망상증에 기인되는데

Belief System에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조사를 받는 것을 주저하고 견디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상을 비우지 못한다든지, 휴가, 세미나, 교육을 위해서 목회지를 떠나지 못한다든지,

일을 분담 못 한다든지, 교회 모든 일을 간섭 한다든지, 심지어는 모든 재정을 주관한다던지 하는 행위가 여기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엄청난 물질적 성과와 성취를 하여

하나님에 대한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맛보고자 하여 더욱 더 학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진리를 아주 교묘하게 왜곡한다는 사실입니다.

 


박해지도자들은 특별하게 나타내고 싶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임을 과시하려고 하는 과대망상증 같은 것 때문에.

사소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양들을 섬기는 목자가 아니라 양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건물 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키우고 양육하는 데에 투자를 게을리 하고 교회건물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교회에 와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함으로서 병적 교인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하면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권위와 부에 중독이 되어 간다는 겁니다.


영적공백을 채우기 위해 권위와 부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나, 표현의 자유가 허락이 안 되고, 어떠한 질문도 수용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더욱 더 심각한 파괴적인 학대체재로 몰고 갑니다.

 

예를 들면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자를 치료하기 힘든 이유를 보면 자신이 중독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을 안 하고, 대화가 안 되고,

합리적인 거짓말을 많이 하며 더욱 더 중독으로 빠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정신학자 칼 융은 "모든 중독은 생명을 파괴하는 매우 위험 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학대에 저항 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테팬 아터번(Stephen Arterbum)과 잭 펠톤( Jack Felton)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를 용기를 가져야 하며, 조직과 같은 체제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뒤바꿔 놓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학대 앞에서 아무 소리 없는 순종은 그 학대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남겨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가하면 데이비드 씨맨즈(David Seamands)는 "악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선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다.

만일 당신이 악을 미워할 수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의를 사랑하고 있는지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라 고 했습니다. 



젊은 바이올린니스트(violinist)가 리사이틀을 마쳤습니다.

많은 청중들이 환호와 박수를 치며 열광 속에 축하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이올린니스트는 그렇게도 열광적인 축하도 아랑곳 없이 슬픔에 쌓여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친구들이 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야! 저 환호하는 청중을 보아라." 청중들이 계속해서 발까지 치면서 환성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순간은 너에게 얼마나 영광스런 순간이냐?"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야! 다시 나가서 저 청중들에게 인사도하고 또 하나의 연주를 해서 보답해야지 않겠느냐"고도 말했습니다.

 

violinist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습니다.

"저 중간에 근심스럽고 슬픔에 쌓여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 있는 한 사람 보았느냐?"

친구들은 "야! 그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울고 있느냐? 그 한 사람, 신경 쓰지 말라" 고 야단법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violinist는 "나는 그 사람을 무시할 수 없고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의 violin 선생님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만은 내가 얼마나 많은 노트를 빠뜨리고 또 얼마나 많은 잘 못을 했는지 알고 있다고 하면서 흐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설령 무지하고 천진한 많은 교인이 따른다 하드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했을 때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 이 시카고 한 민족 사회에 영적학대 자가 있다고 하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알고 다시 재청 박수에 응하지도 못하고 그 영광에 대한 욕심과 유혹을 접고 퇴장하여 흐느끼는 violinist 처럼,

이제 스스로의 실수와 과오를 느끼고 또 인정하면서 섬기는 사역장을 미련 없이 버리고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마치는

믿음과 지혜를 보여 줌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온 이 시카고에 정의와 평화가 풍성하게 임하길 빕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영적학대 자라고 단정 짓는 것이 아니고 저도 영적학대 자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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