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예배와 설교

설교자의 교회 개척 / 김서택

이창무 2015. 5. 18. 20:16
반응형


설교자의 교회개척





김서택/대구동부교회 담임목사


목회자나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일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보통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개척교회의 이미지는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는 영광스러운 모습이기보다는 무엇인가 고생스럽고 빈약하다 못해 비참한 느낌이 드는 초라함이다. 보통 작은 상가의 지하나 2층에 조그만 사무실을 임대해 강대상과 장의자를 놓고 교인 몇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많이 연상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와 사모는 매일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나 신학생들은 자기는 개척교회라면 도저히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여러 사람들이 지금 개척교회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최근에 너무나도 많은 개척교회들이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나마 살아남는 교회마저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수년 째 정체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듣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어른이든지 한꺼번에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듯이 모든 교회도 작은 개척교회에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개척교회가 실패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 있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기독교계 전체가 노화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개척교회가 많이 생겨야 하고 이런 개척교회들이 건강하게 자라주어야 한다. 그러나 개척교회가 잘 안될 뿐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교회의 개척

한 명의 아기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아기를 키워야 한다. 어떤 경우 임산부들은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도 할 수 없다. 또 심지어는 유산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뱃속에서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를 분만할 때에 산모는 거의 한번 죽다가 다시 살아나는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아기를 낳고 난 후에도 젖을 먹이고 아기를 목욕시키고 기저귀를 빨아 준비를 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물론 아기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일을 통하여 한 생명이 태어나서 건강하게 자라는 기쁨과 보람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목회자는 거의 없다. 대개 열정 하나로 덤벼든다. 그러나 이미 개척하기 전에도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물론 어떤 목회자는 상당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개척할 지역을 돌아보기도 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조사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맨주먹으로 뛰어들다시피 교회가 없는 지역이거나 적당한 건물이나 공간이 있다고 생각되면 무턱대고 시작하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교회를 개척해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교회가 잘 자라지도 않고 부흥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더욱 힘든 문제는 개척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신앙적인 문제와 관련해, 특히 교회나 목회자와의 관계 속에서 마음속에 깊은 상처들을 가진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어쩌면 부부가 제대로 다 믿음을 가지고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보배처럼 보일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보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정이나 삶이 비정상적일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개인의 성격도 특이하고 유별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맞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교회를 떠날 때에는 그냥 곱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를 들쑤셔놓고 떠나기도 한다.


집사라고 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싸움질을 해서 경찰서에 붙들려 가는가 하면, 어떤 청년은 실연을 당해서 음독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또 자기 엄마가 귀신들렸다고 고쳐 달라고 하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교회가 자기 부인을 꾀어 헌금을 하게 한다며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는 남편들도 있다. 그래서 사실 개척교회는 하루 하루가 영적 전투의 현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몇몇 되지 않는 그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목회자 자신이 먼저 은혜 받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신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서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복된 일은 없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는 다양한 경우들

최근에 와서는 교회를 개척하는 양상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지만, 종래 교회 개척의 가장 많은 예는 교회가 없는 지역에 누군가가 선교의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서 교회를 세우는 경우였다.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교회 개척이다. 과거에는 목회자나 교인들에게 있어서 교회 개척의 사명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래서 큰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가 없는 지역에 교회를 새로 개척해야 되겠다고 생각이 되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 몇 가정이 협력하여 아예 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거기에 있는 가정을 빌려서 교회를 시작하곤 했다. 시골 같은 경우에는 먼 거리를 걸어서 교회를 다녀야 하는데 교인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면 떼어주든지, 아니면 스스로 분립하든지 해서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교회 없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는 정신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 도시화 현상이었다. 공업화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게 되자 이제는 교회가 없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있어도 교단이 다르면 얼마든지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교회가 스스로 분열해 각각 독립된 교회로 나누어지는 경우이다. 특히 우리나라 장로교의 경우에는 교단이 나누어지면서 교회까지 분열되는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독립해서 교회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투기와 다툼으로 하더라도 그리스도만 전파되면 좋은 일인 것처럼”(빌 1:17,18) 서로 다투는 바람에 교회가 분립된 경우도 많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다투어서 분립된 교회에 부임하는 목회자는 가장 먼저 교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며, 목회자와 성도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는 가정 교회나 소규모 그룹 성경 공부 모임이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전하는 경우이다. 어떻게 보면 그 전에도 교회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가정이나 직장에서 성경 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가 정식으로 교회의 이름을 표면에 드러내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구성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직장에서 성경 공부 형태로 모이다가 아예 하나의 교회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면 학교나 병원이나 심지어는 백화점 같은 데서 채플 형식으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건물을 따로 구하든지 지어서 대단히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처음 동질적인 집단의 성격을 띠고 있는 초창기의 구성원들의 특성을 어떻게 극복하여 교회를 보편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어떤 지역을 복음화할 목적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새로 건축되는 아파트 대단지에 중산층의 사람들을 복음화 할 목적으로 준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뛰어 들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이 교회에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하는 교회 개척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경우에는 목회자 자신이 상당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특정한 대상을 복음화할 수 있는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때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새로 이주한 이미 믿던 사람들을 다시 재교육해서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도와주고 자신의 은사를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형식이 될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교회 개척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나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물고기가 많은 곳에 어부들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목회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가게 되어 있고 거기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외국의 교민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사람이 모여지면 외국인 교회를 빌려서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교회에 갈 엄두를 내지도 않던 사람들이 한인 교회 모임을 통하여 전도를 받아서 예수를 믿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니까 외국의 한인 교회가 얼마나 많은 전도의 씨를 뿌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포 2세들이 외국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잘만 훈련되면 선교사 후보자로서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보게 된다.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교회가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개척교회는 아니지만 수십 년 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열 명 남짓 되지 않고 모든 형편이 너무나도 열악해서,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듯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교회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것들

전에 어떤 자매가 신학교의 숙제라고 하면서 필자에게 교회를 개척하는 데 들었던 비용을 적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숙제를 도와준 기억이 난다. 장소를 빌리는 데 보증금 얼마, 작은 강대상과 긴 의자와 마이크 시설과 피아노는 얼마, 그 중에서 헌물로 들어온 것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계산했던 적이 있다.


사실 요즘 교회를 하나 개척하려고 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의 비용이 든다. 왜냐하면 일단 사람이 모이려면 작은 홀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홀 하나를 빌리는 데만 해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우 신학교를 졸업했거나 아니면 이제 겨우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 신학생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를 개척하고 싶어도 장소를 얻을 수 있는 기초자본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적당한 장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개척에 뛰어들 목회자나 목회자 후보생들이 많이 있다는 말이 된다.


대개는 교회를 처음 개척하면 경제적으로 많은 고생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교인 수는 적은데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재정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목회자들은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 정도는 각오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교회를 개척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가장 어려운 문제가 초기 멤버를 확보하는 문제이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 편안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교회의 초창기의 멤버는 그 후에 교회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된다. 처음 시작할 때 젊은이들 중심으로 시작한 교회는 나중에도 젊은이 중심으로 모여들게 될 가능성이 많다. 더욱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회자 자신의 성향이 젊은이들에게 맞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맨 손으로 교회를 처음 개척하는 목회자에게 좋은 초창기 멤버를 얻는다고 하는 것은 거의 꿈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목회자의 비전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목회자의 비전대로 교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처음 교회를 개척하면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개성이 너무나도 다양한 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정상적인 사람이나 가정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깨어진 가정의 사람은 양호한 편이고, 도덕적으로도 거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때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 모난 성격의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는 목회자의 인격적인 성숙이다. 마치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회복중인 중환자를 다루듯이 모든 것을 참아야 하고, 모든 것을 믿어야 하고, 모든 것을 기다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목회를 가장 하기 어려운 규모의 교회는 100 명 이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에는 목회자 한 사람이 교인들의 모든 어려움을 직접 다 감당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교인들의 모든 어려움이 고스란히 목회자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모난 성격의 교인들을 잘 참고 감당할 수 있는 인격이 목회자에게 필요하다. 여기엔 오직 기도밖에 없다. 학벌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목회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잘 받아주고 언제나 자기에게 잘 대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조금만 섭섭하게 하면 교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교회를 떠나버린다. 그래서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에는 대략 세 번 정도는 교회가 깨어지는 듯한 큰 아픔이 있으리라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서, 잘 키워서 교인 구실을 할 정도가 되었는가 싶으면 무언가에 마음이 틀어져 다른 교인들까지 충동질해서 교회를 무더기로 떠나는 일이 세 번 정도는 일어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어려움이 무엇인가 하면 역시 설교의 문제이다. 물론 교인들이 초신자들이 대부분이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설교를 대충대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회가 초창기일수록 더욱 더 설교를 잘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사람들이 말씀을 먹고 잘 자라야 좋은 교회의 일꾼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설교를 잘 준비하는 일이 결국 설교자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개척 교회를 해 보면 알겠지만 요즘은 웬만해서는 사람들이 개척 교회를 잘 찾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다 얼마든지 더 좋은 시설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대형 교회가 있는데 굳이 작은 교회를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 근처의 백화점에 좋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친절한 점원들이 물건을 잘 팔고 있는데 아무 것도 없고 구질구질한 구멍가게를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구멍 가게를 찾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대형 백화점에 없는 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대개 많은 경우, 개척 교회는 신유의 은사를 많이 의지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몸에 병이 생기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어디에 가서든지 병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유만으로는 교회가 어느 이상 잘 부흥이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이다. 물론 처음에는 설교가 별로 교회 성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변화된 사람이 교회의 기초 멤버가 될 뿐 아니라 결국 말씀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한 사람 두 사람씩 교회에 오게 된다. 그래서 처음 개척교회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설교에 가장 큰 비중을 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를 위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설교 계획이 자신의 성장 계획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교인들이 이 신령한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개척에 실패하는 목회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로 목회자 자신이 설교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완전하게 준비된 설교자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일수록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많이 주어야 하는데 성경이 아닌 다른 것들을 자꾸 먹이게 되면 아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교회 자체가 병들 수밖에 없다.


둘째는 교회 개척을 통하여 욕심을 내는 것이다. 어른이 부모를 키우는 이유는 어린아이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부모는 어린아이들에게 온전히 헌신을 해야 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주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개척을 통하여 성공 신화를 남겨서 유명해지려고 한다면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회자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공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몇 명 되지 않는 교인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치기 위하여 개척을 하는 것이다.


개척교회 목회에 실패하는 세 번째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척 교회와 기존 교회는 구성원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기존 교회는 정말 헌신적이며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처음 교회를 개척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온다고 보아야 한다. 정신이 이상하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가 겨우 예수를 믿거나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들을 사랑하게 되기보다는 이런 사람들을 목회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교회가 자라지 않는다. 나의 작은 교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많고 아는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는 것을 내심 원치 않을 때도 있다.


개척에 실패하는 네 번째 이유는 끝까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절대로 한꺼번에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자라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집에서 아이를 키워보면 무려 15년을 키워도 아직 돈도 벌지 못하는 중학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교회가 비약적으로 자라서 자신이 성공한 목회자로 인정을 받으려고 할 때에는 결국 끝까지 인내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개척 목회에 실패를 하게 되는 것이다.


개척 교회 목회자가 가져야 할 신학

목회자는 교회를 개척하기 이전에 교회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면 성공한 목회자라는 헛된 허영심에 빠지게 되기 쉽다. 그러면 병원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자. 병원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이며 따라서 사람의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병을 진찰하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 지식이요 치료 능력이다. 그렇지 않고 단지 사람들만 많이 모이게 한다면 다른 여러 방법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병만 잘 치료한다면 종합 병원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개인 병원도 얼마든지 좋을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회는 단지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동창회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병든 영혼을 치료하며 살리는 영혼의 병원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긴급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고 살리는 일은 더 긴급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만일 이것이 준비되어 있다면 도시 교회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니고 시골 교회라고 해서 더 부족한 것도 아니며, 대형 교회라고 해서 더 능력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개척 교회라고 해서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어느 곳에든지 병원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있는 어느 곳에든지 교회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든 무식한 사람이든 모두 소중한 한 영혼인 것이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표현을 하고 있다. 사실 신부는 모두 다 아름답다. 대도시의 부잣집 신부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시골의 가난한 신부라고 해서 못생긴 것도 아니다. 물론 입은 옷은 다를 수 있지만 신부는 다 아름답고 신선한 것처럼 모든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복된 것이다.


사실 젊은이들은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을 굉장히 원할 것이다. 우리 나라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학교 같은 데서 공부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미국의 하바드 대학이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같은 것도 모두가 알아주는 최고의 대학이다. 그러나 그런 대학은 이 세상의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지식이 주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교회를 하바드 대학이나 옥스포드 대학 같은 것과 비교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마치 보화를 담고 있는 질그릇과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신적인 말씀이 있다. 그래서 교회는 절대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교회가 신실한 공동체냐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느냐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하워드 스나이더 박사가 아주 좋은 이론을 제시해주고 있다. 즉 그것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이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되면 반드시 예수 믿는 자가 생기게 되어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모이게 되어 있다. 물론 이 교회는 너무나도 어리기 때문에 아무 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고 또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른 말씀의 선포가 교회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해에 걸쳐서 서서히 교회는 결속되어지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흩어지기도 쉽고 또 왔다가 쉽게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생긴다. 그리고 어떤 선한 사업을 하려고 해도 사실 그 일을 맡아서 감당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마치 마른 땅에 오랫동안 물을 주면 서서히 땅이 옥토로 변하는 것처럼 교회도 신실한 공동체로 자라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개인의 은사도 키워줄 수가 없고 또 선교나 구제같은 부분에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어떤 분들은 처음부터 그런 부분에 방향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목회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황에서 한 가지 방향으로 목회가 치우치는 것도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좌우간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자라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교회도 어렸을 때에는 말씀을 충분히 먹고 잘 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어느 정도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대략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자라있는 것처럼 교회도 어느 순간부터 빠른 템포로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때에는 전도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도 있고 기도에 열심을 내기도 하고, 선교나 구제나 여러 가지 활동에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외부에서 들어오기도 하고 내부에서 자라기도 한다. 그때부터 교회는 부흥의 맛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임들을 만들어 주어서 기도하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봉사하게 하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선교를 위한 모임이라든지 찬양을 위한 모임이나 구제를 위한 모임같은 여러 모임들을 만들어 주면 교인들이 자신의 은사에 따라서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가 한꺼번에 성인처럼 모든 기능을 다 잘 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자라듯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린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거의 일반화되다시피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이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선교 단체에서 사용되던 것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인데 아주 훌륭한 목회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옛날에는 주로 교인들의 활동이 회의 중심이나 봉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니까 자주 논쟁적이 되고 따라서 파벌을 만드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다른 사람을 키워주는 분위기로 변하니까 교회의 토양이 변한 것 같다.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이 다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공동체 예배도 필요하지만 비슷한 연령끼리 모여서 자기 안에 있는 고민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소그룹 모임도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처음부터 많은 소그룹으로 만들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가 작을 때에는 모임에 올 수 있는 사람도 적을 뿐 아니라 지도할 수 있는 리더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모임에서부터 시작해서 자꾸 커지면 나누어주고 또 나누어주면 교회가 자람에 따라 많은 소그룹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인들을 먹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역시 설교이다. 개신교는 모든 모임이 예배 중심으로 되어 있고 그 예배의 중심에는 역시 설교가 있다. 그래서 목회자는 설교를 통하여 교인들을 치료하고 또 양육해야 한다. 어떤 분은 설교와 목회를 선택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선택의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래 우리나라에서 즐겨 사용되던 설교는 삼대지식의 설교였다. 이것은 설교 안에 세 개의 중요한 대지가 있고 그리고 적절한 예화로 설교를 채우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식의 설교가 유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설교는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강해설교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설교는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곤경과 하나님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을 전파하는 복음 설교가 있다.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복음 설교이다. 복음 설교를 하면 믿지 않던 자의 마음 속에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서 결국은 교회가 양적으로도 자라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의 진리는 어떤 내용이며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하는 교리적인 내용이 있다. 이런 내용을 계속 가르쳐야 교인들이 더 성숙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우리의 영성을 깊게 만드는 선지서의 글이라든지 시편같은 글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꾸준히 설교하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영성이 자라게 되어 있다.


김서택/ 서울대 공대와 대학원을 나와 총신대신대원(M. Div.)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대구동부교회 담임목사로 있으며, 계명대학교 강사로도 사역한다. 10권 짜리 창세기 강해서를 비롯해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고난의 시대에 찾아온 하나님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