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너희에게 희년이니

by 목자 이창무 2026. 1. 4.
반응형

2026년 신년 1 강 / 이창무

너희에게 희년이니

말씀/ 레위기 25:8-12
요절/ 레위기 25: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서론 : 50년, 희년을 맞이하는 우리

다가오는 2026년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해입니다. 바로 이곳 안암골에 복음의 씨앗을 심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50년이라는 시간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거의 온전히 담길 수 있는 시간이자, 한 세대가 지나고 새로운 세대로 전환이 일어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50주년을 맞이하고, 새로운 50년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나눌 레위기 25장 말씀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50번째 해를 희년이라 부르며, 이를 거룩하게 구별된 특별한 시간으로 선포합니다. 희년이야말로 50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열어갈 성경적 시야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희년의 본래 의미를 탐구해 가면서 50주년이 되는 해의 첫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

희년의 정의 : 거룩하게 구별된 시간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8)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입니다. 안식년은 칠 년마다 땅과 사람이 쉬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안식년을 완전수인 일곱 번이나 거듭한 후 맞이하는 50년째 해는 말 그대로 가장 큰 안식년입니다. 안식의 의미가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입니다.

이는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거룩한 리듬을 부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무심코 시간을 흘러보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숫자를 카운트하면서 이 날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는 50년이라는 시간의 단위를 통해 공동체 전체에 특별한 전환과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희년의 선포 : 죄사함으로부터 시작하라

희년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9)

희년의 선포 방식에는 두 가지 핵심적인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모든 회복은 용서에서부터 비롯됩니다.

희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은 다름 아닌 대속죄일입니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1년 동안 지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는 날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희년의 출발점을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날로 정하셨을까요?

이는 모든 회복의 근원이 하나님의 용서에 있음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희년의 핵심 중 하나는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채권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순종은 어디에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그 해답을 줍니다. 왕에게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신에게 고작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했을 때 왕은 진노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큰 죄의 빚을 탕감받았는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다른 이의 빚을 탕감해 주는 희년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50주년을 맞는 우리의 첫번째 과제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받은 이 놀라운 사죄의 은혜와 감격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은 죄인인지 깨닫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의 희년이 시작됩니다.

둘째, 모두를 은혜의 자리에 초대해야 합니다.

희년은 뿔나팔을 크게 불어 온 땅에 알리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뿔나팔은 주로 전쟁터에서 모든 병사에게 지휘관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먼 곳까지, 시끄러운 전쟁의 소음을 뚫고 뿔나팔 소리가 퍼져나갔습니다.

이처럼 희년의 시작을 뿔나팔로 알린 이유는, 공동체의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희년의 은혜를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누군가 희년이 선포된 것을 모르고 여전히 노예로, 빚진 자로 남아 있다면 그에게 희년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를 위한 것이기에 그 시작 또한 모두에게 알려져야만 했습니다.

이는 5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50주년 기념은 특정한 사람이나 소수만의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멀리 흩어져 계신 선교사님들까지 모두가 희년의 잔치에 참여하고 그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50년을 감히 꿈꿀 수 있는 것은 척박했던 안암골에 복음의 씨앗을 심고 눈물로 물을 주신 수많은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쥐가 출몰하는 장막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도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다는 소식에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며 청춘을 불사르던 선배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새벽까지 문자 그대로 삽질을 하던 그 자리에 지금 이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분들의 머리에 내려앉은 백설과 눈가의 깊은 주름은 일생을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삶을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훈장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지금까지 견뎌낸 희생의 무게가 있었기에 우리는 비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만한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에게 희년의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무거운 짐은 후배들에게 맡겨 주시고 안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보여주신 그 신실한 뒷모습을 이정표 삼아, 우리는 이제 감사와 기쁨으로 다음 50년의 길을 내딛겠습니다.”

희년의 실천 : 제 자리로 돌아가라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0)

희년의 첫번째 실천은 자유의 선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단순히 빚이나 노예 상태에서의 해방이라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는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가 그곳을 벗어나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듯,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개념입니다.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 때 가장 새다운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때 가장 인간다울 수 있습니다.

자유의 선포는 구체적으로 두 가지 돌아감을 통해 실현됩니다.

첫째, 자기 소유지로 돌아가라 입니다.
희년에는 가난 때문에 팔았던 토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원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이는 실패한 사람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이 끝장 나서는 안 되며, 누구에게나 재기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파격적인 명령의 기초에는 모든 땅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는 땅의 소유주가 아니라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고백 위에서만 이 명령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입니다.
희년에는 빚 때문에, 혹은 다른 여러 이유 때문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야 했습니다. 이것은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다 보면 가족 안에서 알게 모르게 쌓인 오해와 상처, 서먹해진 관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희년은 이 모든 앙금을 용서와 화해로 씻어내고, 처음 만났던 그 순수한 관계로 돌아갈 것을 명령합니다.

50년이라는 세월은 한 공동체가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인 동시에, 본질을 가로막는 "전통의 퇴적물"이 쌓이기에도 충분한 시간입니다. 이 시점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쌓인 익숙한 것들을 도려내고, 다시 태어날 용기가 있는가?”

우리 공동체는 "훈련"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자도를 배우고 전 세계 곳곳에 파송된 자비량 선교사를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 상처가 앙금처럼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보곤 합니다. 혹은 훈련을 통해 형성된 프라이드가 너무 지나쳐 동역을 해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지 오래 되었지만 과거에는 벽면에 그래프가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일대일을 몇 팀이나 했는지, 일용할 양식을 몇 번이나 먹었는지 빨간색 그래프의 높이로 한 눈에 비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결과 만으로 평가 받는 성과 중심주의로 흐른 측면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결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복음의 자유와 기쁨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지 않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탕감은 우리가 여러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의 직시로부터 시작됩니다. 희년의 근본 정신은 리셋,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시 출발선 위에 놓고 복음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리셋은 지난 50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숭고한 헌신이 자칫 화석이 되어 굳어지지 않도록 다시 생명력을 불어 넣고자 하는 것입니다.

희년의 정신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11-12)

하나님은 희년이 되면 농사를 멈추고 밭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소출만 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내 힘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산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희년은 49년째 되는 해, 즉 일곱 번째 안식년 바로 다음에 옵니다. 안식년에도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사실상 2년 연속으로 땅을 쉬게 하고 파종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굶어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2년을 쉬는 동안에 남들이 앞서 나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이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굶기지 않으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과 , 더 많이 거두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자기 부인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불안에 사로잡혀 결국 다시 내 힘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2년 간의 멈춤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훈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희년의 순종 끝에 마주하게 되는 진리는 모든 것이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내 손으로 씨를 뿌리지도 않았고 땀 흘려 가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탁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비로소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내 삶이 내 유능함이나 성실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급하심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처럼 희년은 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년이라는 공백을 신실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속도에 쫓기지 않으며, 소유의 많고 적음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정직한 고백이 바로 희년의 진정한 정신입니다. 나에게 몰입했던 시선을 돌려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지난 안암골 50년의 모든 성취와 열매는 누구의 공로입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특정한 어떤 사람이 혹은 다수의 사람들이 헌신하고 수고한 결과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생각을 경계하라고 희년이 있는 것입니다. 희년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라 말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의 역사에 동참하는 특권을 누렸을 뿐입니다. 안암골의 주인은 하나님이셨고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50주년이 사람의 업적을 기념하는 해가 아니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그분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희년의 완성자 : 예수 그리스도

혹시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19세기 말, 덴마크의 외딴 해안 마을이 배경입니다. 율법적인 분위기의 마을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죄로 여기며 평생 소금에 절인 생선과 빵죽만 먹고 삽니다. 어느날 이 마을에 프랑스 내전에서 가족을 잃은 바베트라는 여인이 도망쳐 옵니다. 이후 묵묵히 요리사 일만 하며 14년 동안 숨죽여 지냅니다. 바로 그때 바베트에게 프랑스에서 보낸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상금은 무려 일만 프랑으로 당시로서는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는 거금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바베트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바베트는 떠나기 전 진짜 프랑스식 만찬을 온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말합니다. 파리에서부터 최고의 식재료와 포도주가 공수되어 옵니다. 흑백 요리사에서나 맛볼 수 있는 산해진미가 끊이지 않고 식탁에 오릅니다. 오랜 세월 엄격한 율법 아래 살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과 과거의 상처를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베트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굳게 닫혔던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만찬이 끝날 무렵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찬송가를 함께 부르며 화해합니다.

만찬이 끝난 후 사람들은 바베트가 이제 프랑스로 돌아가 부자로 살 것이라 믿으며 작별 인사를 건네려 합니다. 하지만 바베트는 두 가지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먼저는 자신이 과거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인 "카페 앙글레"의 수석 요리사였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돌아가지 않아요. 돈은 한 푼도 남지 않았어요. 이 만찬에 일만 프랑 전부를 다 썼거든요.”

바베트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 전부를 해체하여 이웃들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희생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를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죄와 율법 아래에서 소금에 절인 생선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우리 인생에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바베트가 일만 프랑을 아낌없이 썼을 때 마을에 진정한 축제가 시작되었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다 지불하셨을 때 우리에게는 비로소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화목, 이웃과의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만찬의 자리는 구약이 예표했던 진정한 희년의 성취입니다. 희년은 빚진 자가 탕감 받고 슬픈 자가 위로를 얻으며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는 해입니다. 서로 정죄하며 미워했던 마을 사람들이 바베트가 차린 은혜의 식탁 앞에서 서로 손을 잡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삶에 찾아오셔서 정죄의 사슬을 끊으시고 진정한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스스로 가난해지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고,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천국 잔치의 주인공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상처나 정죄 의식 속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이미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와서 먹으라"고 초청하십니다. 이 거저 주시는 은혜 앞에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고, 미움을 사랑으로, 절망을 찬송으로 바꾸시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희년의 축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결론 : 우리의 희년, 2026년을 향한 부르심

지난 50년 동안 안암골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실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적이었습니다. 척박한 땅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자라 열방으로 가지를 뻗었고,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생명의 역사를 우리는 목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50주년을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기념하는 해로만 끝낸다면 희년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어깨에 지워졌던 무거운 짐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희년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순수한 복음의 자리, 그 뜨거웠던 첫사랑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2026년 한 해 동안 이곳이 우리 안에 상처 입은 자가 치유되고, 관계가 깨어진 곳에 화해가 일어나며, 복음의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이 다시금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는 축제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2026년을 가득 채우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삶의 주인이시며 희년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50년, 그 은혜의 항해를 출발하며 새해를 기쁨과 감사로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