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고린도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이창무 2022. 6. 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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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 근심과 걱정은 항상 멀리해야 할 것처럼 생각됩니다. 얼굴이 어두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받기 쉽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얼굴이 시커멓다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원래부터 얼굴색이 까무잡잡했던 저는 이런 표현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었습니다. 저는 얼굴색만 까무잡잡했던 것이 아니라 표정도 어둡고 침울하긴 했었습니다. 사실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서나 밝고 명랑한 사람이 환영을 받지 근심 있는 얼굴은 환영 받기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죽음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근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일말의 근심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항상 밝은 표정, 환한 얼굴을 띠고 있어야 믿음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두 가지 종류의 근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는 말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또 이것이 세상 근심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근심이란 슬픔 또는 아픔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슬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겪게 되는 아픔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을 함께 슬퍼하고 하나님이 아파하시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에 슬퍼하시고 아파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 슬퍼하십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해 아파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 우리의 허물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아파하는 것입니다.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이런 근심이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구원은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는 칭의의 구원과 더불어 죄를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성화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의 죄를 짓고 남편인 우리야를 사지를 몰아 넣어 죽게 만드는 살인 교사죄를 범했습니다. 이런 심각한 죄를 저지르고도 다윗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별일이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즐겁게 살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다윗은 사울 왕처럼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옵니다. 나단은 준엄하게 다윗을 꾸짖고 책망합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이 책망을 듣고 다윗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식하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윗처럼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가인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근심하기는 커녕 도리어 분노하여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끝까지 거절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을 향해 갔습니다. 안타깝게도 책망을 들었을 때 죄에 대해서 아파하고 슬퍼하기보다는 회개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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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세상 근심은 무엇일까요? 세상 근심이란 하나님의 뜻과 마음과는 아무 상관 없는 슬픔이요 아픔입니다. 자신의 안위 때문에 인간적인 야망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세상 근심은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믿음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맞습니다. 근심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의 대상은 바로 이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에는 내 꿈이 좌절되는 아픔은 있을지언정 하나님과 연결되는 지점이 없습니다. 세상 근심에는 후회는 있을지언정 회개가 없습니다. 

이런 세상 근심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가인이나 가룟 유다의 사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 근심에 사로 잡히면 모든 에너지가 근심 걱정에 소모되면서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룰 수 없습니다. 결국 영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근심하는 모습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을 무조건 피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나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했다면 그 사람을 이유 불문하고 미워하곤 합니다. 책망을 들으면 그 책망이 옳은 말인지 여부를 헤아려 보기에 앞서 일단 반발하고 봅니다. 나의 감정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근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된 일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근심 중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쳐야 할 것은 세상 근심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치열하게 근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도 근심하게 해야 합니다. 근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근심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통해서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근심이 나를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합니다. 근심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은 본래 근심의 연속입니다. 저 하늘 나라 갈 때까지 어차피 근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왕 근심할 것이라면 제대로 된 근심을 합시다. 쓸데 없는 세상 근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근심을 지금 당장 그만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해야 하겠습니다. 죄를 슬퍼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살지 못했음을 돌아보며 아파해야 하겠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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