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아가서

작은 여우를 잡으라

이창무 2023. 11. 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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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가을수양회

작은 여우를 잡으라

말씀 / 아가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 이라"

지하철이나 빈 건물의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연이어 옆 유리창도 깨지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이곳은 범죄의 온상이 됩니다. 인근에 크고 작은 범죄가 속출하면서 무법천지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을 소위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라고 합니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공동체 내의 사소한 무질서를 가볍게 여기다 보면 결국에는 사회 전체로 무질서가 확대되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조그만 불법이나 무질서라도 방치하지 말고 제대에 단속하고 조치를 취해야 하며, 사소한 실수라도 무시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원리는 대인 관계와 비즈니스 업무를 비롯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적용되어 직원 교육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원리가 일찍이 성경에도 쓰여져 있는데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아가서 2장 15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 이라"

오늘 말씀에는 포도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에 꽃이 피어 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제 얼마 지나서 않아 포도 열매가 맺힐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탐스럽고 굵은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원을 떠올려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모습입니까? 이런 결실의 때에 코 앞에 두고 꽃이 피기까지 농부는 또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습니까? 봄에 나와 씨를 뿌렸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포도원에 나와 포도나무에 거름도 주고 물도 주고 수시로 나와서 잡초를 뽑고 번거로운 가지치기도 부지런히 했습니다. 마침내 포도나무에 꽃이 만발했습니다. 조금 만 더 기다리면 기쁨으로 거둘 수 있습니다. 벌써부터 농부의 마음은 설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농부가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호랑이나 사자, 곰과 같은 맹수들을 쳐들어올 것을 걱정해야 할까요? 갑자기 태풍이 불어와서 꽃이 다 떨어질 것을 염려해야 할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가서는 이런 크고 무시무시한 것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의외로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합니다. 여우 자체가 큰 짐승도 아닌데 작은 여우라고 했으니 강아지나 고양이만한 여우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작은 여우 정도는 그냥 개무시해도 좋지 않을까요? 조그마한 녀석이 해코지를 해 봐야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했다가 큰 코를 다치게 됩니다. 작은 여우는 포도원의 후미진 구석에 굴을 파고 삽니다. 인기척이 없을 때 조용히 나와서 포도나무의 뿌리와 줄기와 싹과 꽃 등을 갉아먹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면서 포도나무를 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포도 농장은 해마다 여우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에서 여우는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활한 꾀를 부려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한다고 해서 암몬 족속을 가리켜 늘 여우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분봉왕이었던 헤롯 왕을 가리켜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포도원이 이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작다고 만만히 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여우는 잘 숨기 때문에 보이면 잡지 이런 식으로 한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숨었는지 적극적으로 찾아서 합니다. 그리고 찾는 족족 잡아야 합니다. 작은 여우는 작은 대신 몸이 매우 빠르고 민첩합니다. 그래서 설렁설렁 대충 잡으려 하면 여우를 놓치지 십상입니다. 작은 여우를 잡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것도 여럿이 힘을 합쳐야 겨우 가능합니다. 이렇게 작은 여우를 잡다 보면 어느새 포도나무에 과즙이 팡팡 터지는 포도 송이가 맺히게 됩니다. 포도를 추수한 후 함께 기뻐하는 파티가 벌어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포도원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오늘 본문이 아가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본문 속 포도원은 일차적으로 가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28편 3절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키워 결실해야 할 가정이 허물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가정이 큰 시련이 닥쳤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명백한 시련이 다가올 경우 도리어 남편과 아내가 이를 계기로 힘을 모으게 되면서 서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거센 바람이 나무를 튼튼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사건 사고 등이 좋은 열매를 맺는 일에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 큰 일보다는 사소한 일 때문에 생긴 말다툼이 원인이 경우가 많습니다. 말다툼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새 관계에 금이 가고 멍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길게 카톡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알겠어’ 하고 간단히 답장만 그것도 한참 후에 했을 때 엄청 맘이 상할 수 있습니다. 이걸 문제 삼으면 ‘바쁘면 그럴 수 있지, 왜 그렇게 쪼잔하게 잘 삐치냐?’ 며 박대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양말을 뒤집어서 아무데나 던져 놓은 것,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무시하고 또 그런 것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서로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듭니다. 이런 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사소하게 취급하지 말고 신경 쓰고 또 그때그때 잘 소화해야 부부 간의 사랑의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의미를 조금 더 확정해 보면 교회가 포도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장 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이처럼 구약에도 이스라엘이라는 신앙 공동체를 자주 포도원으로 비유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의 씨를 심으시고 성령의 물을 주어 자라게 하시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라는 포도원에서 좋은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열매들이 있을까요? 먼저 영혼 구원의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구원 받는 것만큼 값어치 있는 열매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제자 양성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고 배운 사람이 빚어지는 것, 정말 귀한 열매입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섬김이 풍성해지는 것, 거룩하고 순결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모든 것이 탐스러운 포도 열매와 같이 주님이 기뻐하실 열매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 23절에서 교회라는 포도원 안에서 맺히게 될 성령의 열매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런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고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작은 여우들이 있습니다. 무엇이 교회를 망치는 작은 여우일까요? 믿는 사람 중에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남의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거나,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를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큰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정작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작고 사소한 것들입니다. 작은 욕심, 사소한 영적 게으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분노와 혈기, 부정적인 말과 행동 등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의 작은 여우가 될 수 있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별로 대수롭게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고 공동체의 기초가 서서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이 당장 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조그마한 못이 타이어의 바람을 서서히 빠지게 하듯이, 이런 작은 여우 때문에 예수님이 친히 심으시고 양육하시고 아름답게 가꾸어 오신 포도원의 담장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망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포도원이 있습니까? 교회 전체는 물론이고 우리 각 사람이 속해 있는 팀이 우리의 포도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포도원인 팀을 위해 지금까지 많은 수고를 해왔습니다. 특히 포도원지기인 팀 리더 목자님들이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팀 모임을 인도하시고 팀원들을 챙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팀을 가꾸기 위해 여러 역할을 담당하셨습니다. 음식 준비를 해 오고 자리를 마련하고 서로를 위해 간절히 중보 기도의 노동을 감당하셨습니다. 귀 기울여 고민과 아픔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습니다. 팀원 중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팔 걷어 부치고 나선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팀 모임에서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격려를 얻기도 합니다. 기도 응답을 받으면 함께 즐거워합니다. 다른 팀원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신 것을 보고 함께 기뻐합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팀별로 가을 수양회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숲처럼 가까운 곳으로 간 팀도 있고 멀리는 경상북도까지 간 팀도 있습니다.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니 모두 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신 것 같습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도서 말씀처럼 먹고 마시고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포도원 가운데 꽃이 핀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우리 팀에 꽃 향기가 진동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기서 조금 더 잘 가꾸면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고 사랑과 섬김이 충만한 공동체가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왜나하면 포도원을 망치려는 작은 여우는 언제나 출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여우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일 수 있습니다. 슬그머니 우리 사이에 들어올 수 있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적인 생각, 정욕이나 물질에 대한 탐심일 수 있습니다.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냥 막연히 어떻게 잘 되겠지 내버려 두고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 전체를 허물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허무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작은 여우를 부지런히 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 포도원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풍성히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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