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이창무 2015. 5. 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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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시인 랭보의 시 중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정말 상처 없는 영혼은 한 사람도 없는 듯 합니다. 저마다 다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 갑니다. 마음의 상처는 고통을 주고 큰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에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쓰는 이 마음의 상처라는 말이 정말 올바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한 번 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라는 개념이 과연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돌아보면 성경은 의외로 마음의 상처라는 주제에 대해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마음의 상처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반역 곧 죄 문제를 근본적인 문제로 봅니다. 마음의 상처라는 개념은 사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입니다. '트라우마'라고도 하는 정신적인 외상이 사람의 심리 상태를 결정짓는다는 이론입니다. 심리학 책을 읽다보면 현재 우리들의 성격과 심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영향 , 특히 부모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 인성과 성품과 운명이 모두 결정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또 현재 마음에 행복이 없는 이유는 과거의 상처 때문이고 이 상처를 상담 등을 통해 치유한다고 말합니다. 그 상담의 내용이라는 것이 주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들어 주고, '당신은 소중한 존재이다', '당신의 잠재력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가져라', '정신 건강에 해로운 죄책감을 버려라' 이런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심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형들이 심리 상담을 받았다면 어떤 상담을 받았을까요? 아마 상담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을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요셉과는 다른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상처받은 당신이 요셉을 애굽에 판 것은 어쩌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다 지난 과거의 일로 그렇게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책감을 버리시고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 나가세요.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상처를 받아 인생을 자포자기해야 마땅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이야말로 믿었던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동생과 헤어지고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야 했으니 트라우마도 보통 큰 트라우마가 아닙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치명적인 상처를 받아 폐인이 되어야 마땅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요셉은 폐인이 되기는 커녕 반듯하게 자라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형들에 대한 악감정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혹시 감옥에서 심리 치료사의 도움이라도 받았던 것일까요?


자기 중심성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는 현대 사조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는 너무 쉽게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상처 받았다', '나는 치유받아야 할 불행한 존재다' '내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다 아버지 때문이다' 등등...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을 보면 극도로 자존심이 강하고 과도한 자존감에 사로 잡힌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상처를 대증 요법으로 치유할 것이 것이 아니라 더욱 깨어져서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는 편이 근본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에 '마음이 상한 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해 애통해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내가 받은 상처가 무엇인지 세어 볼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죄인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상처의 치유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상처에 집착한다고 치유되지는 않습니다. 저도 과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에 매달려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내 죄를 회개하고 눈을 들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아나가면서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거룩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때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처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짊어지신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에 의해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생명이 내 속에 넘쳐 날 때 모든 상처는 아물고 내 영혼은 건강함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던 자에 대해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가 맹인된 것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맹인된 그의 처지에 주목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내 마음의 상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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