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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및 나눔 219

류호준 교수님의 클린조크: "덮어놓고"

"덮어놓고" 학기말이 되면 교수들에겐 학생들이 제출한 페이퍼를 읽고 채점하는 고난의 행군이 있습니다. 어제 늦은 밤 시간까지 게슴츠레한 눈을 다독이며 비몽사몽간에 백여 개의 페이퍼를 읽고 있던 중 갑작스레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한 학생이 쓴 페이퍼 안에 들어 있는 한 줄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성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베드로는 일관성 있게 일관성 없는 사람이다.” 으악! 헐, 야, 이 인간아, 도대체 누구 것을 덮어놓고 베꼈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 인물이고 베드로는 1세기 인물이거덩! **** [팩트 체크] 아래는 카톡으로 주고받은 내용들입니다. “일관성 있게 일관성 없는”(consistently inconsistent) 이란 표현은 아리스토텔레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앞에서 항복하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 앞에서 항복하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저는 1969년 서울에서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났을 때 집안의 첫 손주를 본 할아버지께서 기쁜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저를 보자 마자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바로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두 아이를 잃어봐서 아는데 저 녀석은 오래 못 살 거다.” 그러나 숱한 잔병치레를 하긴 했지만 저는 할아버지의 예언과 달리 살아남았습니다. 동네에서 놀다 보면 튼튼한 친구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무슨 게임을 하든 항상 제가 술래가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동생들이 ‘형! 형은 깍두기 시켜줄께’ 라고 말했을 때 고맙기 보다는 ..

묵상 및 나눔 2020.06.29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29~34(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부활 복음은 삶과 무관한 교리나 이론이 아닙니다. 부활 복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도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

고린도전서 15:1~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교회 안에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복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였습니다. 이미 받은 바 사도적인 복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길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마가복음 5:1~20(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참 자아와 거짓 자아를 분리해 내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치유가 시작됩니다. 예수의 이름 안에 거짓 자아를 몰아낼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거짓 자아에 의해 조종 당하는 사람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될 소망이 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마가복음 4:35~41(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바람을 만드시고 바다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귀향

작은 아들의 머리를 보라. 집을 떠날 때 휘날리던 긴 머리는 어디로 갔는가? 죄수처럼 삭발을 했다. 작은 아들이 입은 옷을 보라. 겉옷은 어디로 가고 속옷만 남았다. 깡마른 몸을 겨우 가리고 있다. 작은 아들의 신발을 보라. 오른 쪽 신발의 발뒤축은 거의 닿아 없어졌다. 왼쪽 신발은 아버지 품에 안기다가 벗겨졌다. 아버지의 눈을 보라. 오른 쪽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고 왼쪽 눈은 거의 감겨 있다. 너무 마음 아파 돌아 온 아들의 비참한 몰골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아버지의 오른 손과 왼 손을 보라. 오른 손은 어머니의 손이다. 탕자의 등을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왼 손은 아버지의 손이다. 다시는 너를 잃지 않겠다는 듯이 움켜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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