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이창무 2024. 3. 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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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고난주간 특강 / 이창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말씀 / 이사야 53:1-12
요절 /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겉으로 드러난 십자가만 보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 십자가에 못 박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령께서 십자가에 감추어진 놀라운 비밀을 그에게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전 700년경에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일어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어떤 비밀을 발견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1)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팔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2)

사람들은 메시야는 키가 너무나 커서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나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옷 매무새를 고치게 되는 나무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들의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그분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았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 방 한 칸이 없어 말구유 위에 누이셨습니다. 평범한 나사렛 마을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제자인 나다나엘로부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냐?’며 무시를 받았습니다.

한때 무리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시고 떡을 주시자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잠깐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로 가려하자 그들은 돌변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아 영문 밖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모두 비웃었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구원하겠느냐”며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비난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본래 모습은 전혀 이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 가운데 계시던 분이셨습니다. 만국 백성들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왜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연약한 우리를 이해하고 친히 공감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오시기 위해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내려 놓으셨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셨습니다. 누가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습니까? 친구와 가족이 노력은 하지만 잘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십니다. 버림 받는 상처이 얼마나 큰 지 잘 아십니다. 가난의 고통, 사랑 받지 못하는 슬픔, 못난 자들의 서러움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시고 공감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이 모든 일들을 온 몸으로 친히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낮아지시고,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 그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
세상이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모든 만물 창조하셨네

모든 나라와 모든 보좌 이 세상 모든 경이로움 보다
이 세상 모든 값진 보물 보다 더욱 귀하신 나의 주님

십자가 고통 당하사 버림받고 외면당하셨네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네 나의 주

십자가 고통 당하사 버림받고 외면당하셨네
짓밟힌 장미꽃처럼 나를 위해 죽으셨네 나의 주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버림 받으시고 고난 당하실 때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4b)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고난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은 정말 누구 때문에 죽으셨나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4a,5)

우리의 질고! 우리의 슬픔!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전부 본래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질고가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도 마음이 아픈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도무지 걷히지 않는 슬픔이 있습니다. 실패 때문에 슬프고 이별 때문에 슬프고 죽음 때문에 슬프고 온통 슬픈 것 투성이입니다. 우리에게는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는 허물이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늘 한참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씻으려 해도 씻겨지지 않는 죄악이 있습니다. 욕망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또 저지르고 맙니다.

그런데 본래 질고와 슬픔과는 아무 상관도 없으신 그분께서 우리 대신해 이 모든 것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나를 치유하시려고 대신 질고의 십자가를 그 어깨에 짊어지셨습니다. 나에게 기쁨을 주시려고 대신 슬픔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아무 허물도 죄악도 저지른 적이 없으신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나의 교만, 나의 위선, 나의 시기심 때문에 가시에 머리가 찔리시고 두 손과 두 발에 대못이 박히셨습니다. 나의 혈기, 나의 음란, 나의 이기심 때문에 채찍에 맞으시고 온 몸이 찢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분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주님이 못 박히신 그 자리가 사실 내가 못 박혀야 할 자리였다는 것을 봅니다. 그 순간 나의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그 동안 죄를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죄를 지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그와 더불어 나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합니다. 세상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 죽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내가 뭐라고? 왜 날 이렇게까지 사랑하실까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사랑입니다. 그저 놀라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이 희생과 사랑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과거 하나님의 원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영혼을 짓누르는 죄책감과 죄의식에 시달리지 않았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나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가 남겼던 상처가 치유되고 그 자리에서 새살이 돋아났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시고, 아름다우신 그분이 스스로 누추하게 되시고, 강하신 그분이 약하게 되시고, 죄 없으신 그 분이 고난 받으시고 홀로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걸으신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고치시고 살리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잊을 수 없네 하나님의 사랑 날 살리시려고 주신 생명
내 십자가 지고 오르신 갈보리 언덕 날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나는 보았네 피 묻은 십자가 날 구하시려고 흘린 사랑 
나를 바라보시며 흘리신 용서의 눈물 날 향한 사랑 때문에

우리 때문에 생명 주셨고 우리 때문에 고통 당하셨네
우리 때문에 갈보리 오르셨네 무지한 우리 때문에

셋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고난을 어떠한 자세로 감당하셨습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7)

예수님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잠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강포를 행한 적도 없고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나는 결코 악인이 아니라고 왜 변명하지 않으셨을까요?  내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는 것은 바로 당신들의 죄와 허물 때문이라고 왜 주장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뒤집어쓰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심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의 죄값을 남김 없이 다 치러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어야만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를, 그 수치와 모욕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참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그 대상만 생각합니다.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사랑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구구절절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랑을 완성하셨고,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랑하셔서 오시었네 말씀하신 대로 본이 되신 예수
얼마나 아프실까 갈보리 언덕 그 십자가

피 흘림 없인 이룰 수 없네 고난 받을 이유 없으신 주
순종하셨네 그 십자가 지셨네 우릴 위해

아버지의 뜻 이루소서 저며오는 아픔 모두 거두시리
얼마나 아프실까 처절한 고통 그 십자가

피 흘림 없인 이룰 수 없네 고난 받을 이유 없으신 주
순종하셨네 그 십자가 지셨네 우릴 위해

넷째로, 예수님은 자기 몸을 버리시어 우리를 생명의 열매로 거두셨습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11)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결과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고난 받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은 삼 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세력에게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입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신 예수님께서 맺으신 생명의 열매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시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예수님의 이 마음이 다음과 같을 것이라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b)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늘 기억합시다. 우리를 이해하시고 공감하시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는 언제나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는 부끄러움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사가 동시에 솟구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묵묵히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됩니다. 자기 몸을 버리시어 우리를 생명의 열매로 거두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 끝에 얻게 될 승리에 대한 소망을 바라봅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늘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하여금 주 안에서, 주를 위해 살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그의 희생 기억할 때 자기 몸 버려 죽으신 주
나 항상 생명 주신 그 은혜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마음에 새겨봅니다

이제는 저 높은 곳에 앉으신 하늘과 땅의 왕 되신 주
나 이제 놀라운 구원의 은혜 높여 찬양하리라 높여 찬양하리라

주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주님의 자비 내 마음을 겸손케 해
주께 감사하며 내 생명 주께 드리네

감사드리리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되신 주
감사드리리 주의 십자가 나의 친구되신 주

주 달리신 십자가를 내가 볼 때 주님의 자비 내 마음을 겸손케 해
주께 감사하며 내 생명 주께 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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