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창무 2023. 1. 1.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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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신년 특강 / 이창무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 / 이사야 43:1-21
요절 /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빨강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애니는 앤의 수많은 명대사로 유명한데 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걸요.” 새해 세상이 우리 생각대로 될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분명 기대에 못 미치는 일, 실망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것 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새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은혜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새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새해를 밝고 희망차게 출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

하나님께서 당시 바벨론에 끌려와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을 뒤집으면 현재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아예 소멸되어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끌려온 지 수십년이 흐르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겨났습니다. 자녀들은 히브리어를 잃어버리고 바벨론 사람들의 말인 아람어 밖에는 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대대로 우상을 숭배해 온 바벨론 사람들과 결혼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던 장엄한 예배를 경험했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바벨론 제국의 위세는 더 강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아예 바벨론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신분 세탁을 하여 그곳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 둘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이 추세대로 간다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은 서서히 쪼그라들다가 이 땅에서 아예 사라질 것이 뻔해 보였습니다. 신앙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며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여러 면에서 오버랩 됩니다. 한창 젊은 시절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전도하고 양을 치던 목자님들이 나이가 들어갑니다. 의욕은 있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제는 배가, 오늘은 허리가, 여기 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기억력도 감퇴되어 둘 씩 기도할 때 앞에 계신 분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난감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젊은 세대가 나를 부담스러 하고 꼰대 취급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 더 좋아질 리는 없고 나빠질 것은 확실합니다. 새해가 되어 기쁜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것이 우울하고 두렵습니다.

젊은 세대 역시 이유는 다르지만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취업의 문은 너무나 좁고 집 값은 너무 비쌉니다. 모든 곳에서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여기서 낙오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부모 세대보다 자신들이 더 못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 이것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많은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마치 일종의 사치품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탄 전야 예배 때 이광호 목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스텝 목자님들의 평균 연령이 57세입니다. 54세인 제가 나타나면 젊은 목자가 왔다고 합니다. 가장 젊은 목자님이 41세이고 20대, 30대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목자가 은퇴할 나이가 되었을 때 계승할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재수 삼수해서 들어가던 총신대 신대원에서 이번에 사상 최초로 미달 사태가 벌어져 교계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통계들이 개신교의 뚜렷한 쇠퇴 상황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희망이 있을까요?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이 배를 계속 타고 있다가 함께 침몰해 버리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배로 갈아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한 때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돌아섰던 이들이 그때 상황에서는 일본이 영원히 안 망할 줄 알았다고, 우리 나라가 독립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역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얼마든지 변절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복음 운동은 끝났어. 꿈 깨. 바벨론 제국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앞에 그냥 항복해 버려. 그러면 얼마나 속 편한 줄 알아?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줄 뻔히 알면서 왜 말씀 중심의 삶을 미련하게 고집하는 거야?” 이런 속삭임에 끌려 들어가기 쉽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 있으려면 내면의 두려움을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서 저절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십니다. 구속하다는 ‘값을 치르고 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값을 치르셨습니까? 우리를 위해 하나 뿐인 아들을 보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 대신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내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는 똑 같은 죄인인데 왜 나를 지명하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일방적인 은혜임을 알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것이다. 네가 잘 났으나 못 났으나 넌 내 것이다.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책임진다. 절대 망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네가 불 속에 있건 물 속에 있건 어디에 있건 나는 너와 함께 하겠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위로해 주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 3절부터 7절을 보면, 바벨론 포로기 시절 하나님은 회복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최적의 타이밍을 바벨론에서 바사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로 잡으셨습니다. 북아프리카 지역(애굽, 구스, 스바)까지 진출하려는 바사 왕 고레스의 야심을 이용하여 귀환 명령을 내려지도록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결과 제국의 동서남북으로부터 백성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이것을 안다면 백성들이 절망할 이유도 두려움에 빠질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계획을 세우신 데에는 단지 자기 백성들에게서 두려움을 없애시려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회복의 과정을 통해 바벨론 땅에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 번 택하신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불 속에서도 물 속에서도 함께 하시고 우리를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을 향해 ‘다른 신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주님이시다’라는 생생한 증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예수님의 복음을 계승할 다음 세대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다음 세대 중에 빼어난 말씀의 종, 예수님을 닮은 선한 목자가 나오게 하실 것입니다. 캠퍼스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우리 나라가 전 세계를 향한 제사장 나라가 되는 날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고 자기 소유 삼으신 하나님께서 분명 회복의 플랜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 플랜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느 때에 어떤 방법으로 누구를 통해서 이루실 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경험하게 하실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압니다. 장차 우리 입술을 통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제가 제 삶으로 그분을 경험했습니다.’라고 증언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나를 구원하시고 자기 소유 삼으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은 믿고 현재의 두려움을 이기고, 미래의 회복에 대한 소망과 비전을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에 자신이 행하신 일 한 가지를 상기시키십니다. 어떤 일입니까?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16,17)”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사건, 그 중에서도 특히 홍해 사건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적에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셔서 바다 한 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그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딛고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반면 추격하던 애굽 군대가 들어오자 다시 물로 덮어 그들 모두를 수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 출바벨론의 역사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당시 애굽의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이나 현재 바벨론의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매우 흡사합니다. 당시 애굽이나 현재 바벨론이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패권을 휘두르는 강대국이라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권능으로 애굽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 바벨론을 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한번 더 행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한 번 하셨는데 두 번을 못 하시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도 이 사실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12절에서 여호와께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것을 잊지 말라 명하십니다. 시편 105편은 전체가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과거 우리 가운데 베푸신 능하신 일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 은혜의 역사들을 계속 기억해야 합니다. 그 기억이 우리가 현재 당하고 있는 환란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18)”

아니! 기억하라 하실 때는 언제고, 하나님은 왜 이제 와서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도 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변덕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이 늘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기억이라고 하면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제 동생은 원래는 계란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계란을 먹고 심한 복통을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숨도 못 자고 밤새도록 토를 했었습니다. 이후로 계란을 먹지 못합니다. 삶은 달걀이나 프라이 뿐만 아니라 김밥을 먹을 때도 계란을 먼저 쏙 빼 놓은 다음에야 먹습니다. 이 정도 트라우마는 가벼운 것입니다. 훨씬 더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릴 적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억하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기억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라는 이전 일, 옛날 일은 안 좋은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좋았던 일, 신났던 일, 즐거웠던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들조차 기억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첫째, 기억이 우리를 과거에만 머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사람이 그 성공의 기억을 회상하며 거기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잘 쓰는 표현이 “왕년에 내가 얼마나 잘 나갔는 줄 아느냐” 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또 그 놈의 왕년 타령이냐고” 타박을 주어도 아무도 말릴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참 놀라운 일들을 많이 행하셨는데 …’ 라는 생각을 하지만 현재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무시고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젊은 때 힘이 넘치고 피부에 윤기가 돌던 시절을 디폴트 값으로 두고 현재를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은 힘도 없고 머리카락 빠지고 주름만 많아졌습니다. 우울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젊은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학생은 ‘그래도 중고등교 시절이 좋았다’고 하고 중고등학생은 ‘초등학생 때가 좋았다’고 하고 초등학생은 ‘유치원 시절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복음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안암의 1진, 2진 여름 수양회 참석자를 총 집계한 적이 있는데 구백 몇 십 명대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조금만 더 갔으면 천 명을 넘을 수 있었는데 하면서 무척 아쉬워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고 현재를 바라보면 어떻겠습니까? 완전히 쫄딱 망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으시고 버리신 것입니까? 과거를 추억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둘째, 기억이 우리의 세계를 아주 좁은 세계 속으로 가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성공을 경험한 사람은 자기가 했던 방식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고 오직 이 길만이 해답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면 전부 다 잘못된 길이라 섣부르게 판단하고 아예 배척해 버립니다. 이렇게 될 경우 더 이상 창조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맙니다. 옛날부터 해 오던 길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 반복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은 내가 알던 길, 내게 익숙한 길로만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이상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시는 창조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대일 성경 공부, 소감 쓰기, 요회, 일용할 양식 등등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없었던 것들인데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께서 대학생들에게 선교하고 그들을 제자 양성하기 위해 고안해 내신 것들입니다. 기존 교회에서 볼 수 없던 창의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그것이 주효해서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이번 겨울 방학 동안에 양식 챌린지, 소감 챌린지를 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해 오던 대로만 해라.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마라.’ 이렇게 가는 것만이 정답일까요? 기왕 과거를 고수하려면 20세기 초 평양 대부흥 운동 때의 모습이나 15세기 종교 개혁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편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하십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19)”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새 일을 행하십니까?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일은 홍해 사건을 정확하게 정반대로 뒤집으시는 일입니다. 홍해 사건 때는 길이 없던 바다에 길을 내셨지만 앞으로는 길이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홍해 사건 때는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 한 가운데 마른 땅이 드러나게 하셨지만 앞으로는 메마른 사막 한 가운데 물이 흐르는 강물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출애굽이나 출바벨론이나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지만 그 방식은 정반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마치 ‘너희는 왜 이렇게 상상력이 없느냐? 너희는 왜 이렇게 과거의 한계에 갇혀 있느냐? 너희는 왜 내가 하려는 일을 너희의 경험 안에 가두려 하느냐?’라고 묻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의 몸을 이 세상에 오실 줄 알았겠습니까? 그 누가 저주와 수치의 상징인 십자가로 인간을 구원하실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 누가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민족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하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교회가 세워질 줄 알았겠습니까? 그분의 생각은 셀 수 없고 그분의 자비는 무궁하며 그분의 성실은 날마다 새롭고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몇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 역사 속에만 계신 하나님, 기록물 속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현재도 역사하십니다. 다만 침묵하실 때가 있을 뿐입니다. 왜 침묵하시는지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안에 죄의 찌꺼기가 다 빠질 때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르고 열매가 충분히 맺힐 때를 가늠하고 계신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철저히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놀라운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본질은 같지만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와 그의 군대를 수장시키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지만 바벨론에서 나올 때는 오히려 이방 왕의 도움을 받아 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빨강머리 앤처럼 늘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람의 경험과 기대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시면 현재의 형편이나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구속 역사에 대해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어떤 상황에서도 새 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지난 2022년 한국에서 유행했던 여러 말들 중에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 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표현입니다. 본래 롤(LOL)이라는 게임을 통해서 알려진 말인데 이번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응원 문구로 유명해졌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 팀이 포르투갈 전 마지막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2023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 역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요? 불 같은 시련이 찾아와도 꺾이지 않는 마음, 넘치는 파도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 이런 마음을 지켜낼 수 있다면 우리에게 2023년은 승리의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꺾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나를 구속하시고 소유 삼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전 일들을 기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시고 차근차근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붙들고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들고 힘차게 새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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