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성벽 위에 파수꾼

이창무 2015. 12. 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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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 파수꾼


말씀 : 사62:6-12

요절 : 사62:6,7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우리는 지난 주일 말씀에서 마태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 족보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지는데 그 중에 마지막 세 번째가 바벨론 포로 이후 예수님 탄생까지의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족보를 보시면서 앞의 두 시기와 다른 점을 발견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이 점을 발견했습니다. 앞의 두 시기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 반면에 마지막 시기에는 유명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첫 시기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들이 나옵니다. 두 번째 시기에는 다윗을 비롯한 유다의 왕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시기에는 유명인이 없습니다. 굳이 꼽자면 유다 총독으로 부임했던 스룹바벨 정도이고 그 외는 없습니다. 왜 유명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이 시기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어떤 역사적 사건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과 같은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에 연이어 짓밟힌 역사였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사백년 동안 침묵하셨다고 합니다. 신구약 중간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로 기억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 쉬고 계셨거나 주무시고 계셨던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럴 때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쉬시는 것 같으니 나도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저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견디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어두움의 시기, 칠흙같은 밤을 보내는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일까요?


첫째,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파수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날의 파수꾼은 수위, 보초, 경계 근무자를 뜻합니다. 파수꾼은 두 가지 임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벽 위에 서서 적이 쳐들어 오는지 여부를 계속 감시해야 합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자세히 관찰해야 합니다. 또한 낮이든 밤이든 졸거나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군대에 가면 종종 듣게 되는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 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 받을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사병들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서 배식에 실패한 군인도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실제로 로마 시대에 보초 근무를 소홀히 한 사병이 발각되면 그 즉시 사형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파수를 잘못하면 적의 기습 공격을 받아 도시가 전멸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사가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둘째 임무는 변동 사항이나 특이 사항을 즉시 즉시 본부에 알리는 일입니다. 파수꾼은 작은 일이라도 놓치지 말고 철저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보고를 해야 지휘관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보고서도 잠잠히 있는 것은 파수꾼의 직무 유기입니다. 저도 군대에서 위병소 근무를 설 때 부대 앞으로 개 한 마리가 지나가도 상황실로 보고하라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파수꾼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기도에 헌신한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깨어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통해 볼 때 기도하는 사람은 파수꾼의 임무를 맡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인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양들을 삼켜 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가정을 무너뜨리려 하고 교회를 공격하고 나라를 혼란과 무질서로 몰아가려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성벽 위에 파수꾼처럼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을 세우십니다. 바로 우리들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이든 밤이든 육신의 정욕에 취해 졸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양들의 상황, 가정의 필요, 교회 공동체의 기도 제목, 나라의 형편에 예의 주시하면서 끊임 없이 우리의 헤드쿼터에 해당하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 보고를 해야 합니다. '한 형제님이 정욕의 뿔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 자녀들이 세상 유혹에 휩쓸려 가지 않게 지켜 주세요." "우리 모임에 인본주의와 불신앙이 틈타지 못하게 보호해 주세요"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 주세요" 나중에 우리가 파수꾼의 임무를 마치고 우리의 대장되시는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옵니다. 그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너에게 맡겨 준 캠퍼스와 안암센터와 한국에 대해 주야로 잠잠하지 않게 보고를 잘해 주었구나" 우리가 주님께 이런 칭찬 받는 종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깨어 기도하여 파수꾼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 무엇을 근거로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6절 하반절과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여기서 파수꾼을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왕이 중요한 약속이나, 해야 할 일을 기억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신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가리켜서 기억하게 하는 자, 기록자(recorder)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왕이 약속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가 시시때때로 그 약속을 상기시켜 지키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본문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기초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표현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쉬지 못하도록 계속 약속을 상기시켜서 들들 볶으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보통 사람에게 이렇게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알았다고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하면서 대개 짜증을 내거나 버럭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짜증내시거나 화내시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근거로 기도할 때 꼼짝없이 들어주실 수 밖에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약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막연히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항상 성경에 기록된 언약을 기초로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기꺼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은 어떤 일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까?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원수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하십니다. 인생은 수고의 연속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땀을 흘리고 노고를 거듭하여 겨우 양식과 포도주를 얻습니다. 그런데 그 양식과 포도주를 원수가 빼앗아 가면 얼마나 분하고 허탈하겠습니까? 이처럼 죄의 종, 사탄의 종된 인생은 수고는 하나 남는 것이 없는 허망한 인생입니다. 이것이 죄 범한 모든 인간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죽음의 세력을 박살내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과 해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 구원과 해방은 결정적인 성취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두 번째 일이 무엇입니까? 둘째, 성문으로 나아가 복음의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성문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나가서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만민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울퉁불틍한 길은 평탄하게 만들고 좁은 길은 넓히라 하십니다. 돌은 제거하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깃발을 높이 들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만민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몰려드는 것을 대비하여 준비를 해야 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들에게 구원이 시온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만민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방에서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가리켜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고 부를 것이라 하십니다. 한 때 잃어 버리고 버림 받은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의 백성의 명예를 회복하게 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우리가 최근 공부한 사도행전과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그 성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으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자 만민들이 예수님께로 달려 왔습니다. 세계 각지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돌와왔고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에디오피아 내시를 통해 아프리카에도 복음의 씨가 뿌렸습니다. 이제 앞으로 배울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날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신구약 중간기에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앞에 서두에서 신구약 중간기에도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셨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헬라어가 만국 공용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헬라어만 배우면 어디든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 성경을 가리켜 칠십인역이라고 합니다. 또 로마에 의해 곳곳에 길이 닦이고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우는 정치의 안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정치가 안정되지 못했다면 바울의 전도여행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해 곳곳에 회당이 생기고 구약에 관심을 갖는 이방인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전도에 가장 먼저 빠르게 반응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가장 어두웠던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으시고 복음이 온 세계로 펴져나갈 모든 준비를 다 빠짐없이 하나씩 하나씩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긴긴 밤은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날 준비를 하던 시기였던 셈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두워 보인다 하더라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길을 닦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10절에서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성문으로 나아가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 기치는 깃발을 뜻합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깃발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복음의 깃발입니다. 만민들이 다 보고 거기로 모여들 수 있도록 높이 힘차게 복음의 깃발을 펄럭여야 합니다. 이제 전국 학생 수양회가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수차례 전국학생수양회를 참석해 본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이 수양회는 세상을 향해 복음의 깃발을 힘차게 흔드는 수양회라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깃발을 흔들어도 모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 실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동서남북에서 이 깃발을 보고 몰려 오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 하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돌아오게 되는 알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청년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길을 준비하면서 복음의 기치를 힘차게 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기도하는 성벽 위에 파수꾼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 기초해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문에 나가 복음의 기치를 높게 드는 하나님 나라의 기수들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예수님 탄생 전까지 그 추운 겨울 같은 시기에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셨듯이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언약의 성취와 완성을 향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깨어 기도하며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면서 지금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 가운데 죄의 종된 자들이 해방되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귀하게 쓰임 받는 날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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