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찬양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찬양은 노래인가?
찬양은 노래만은 아닙니다. 찬양은 노래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이 곧 노래는 아닙니다. 찬양이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신 덕을 칭송하고 기리는 모든 피조물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찬양은 노래로 나타날 수 있고 시로써 나타날 수도 있고 몸짓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 외침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해와 달도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니 그들이 노래로 찬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 분의 성품과 덕과 능력에 경탄하며 반응하는 모든 것들이 찬양입니다. 찬양 중에서 특별히 노래라는 형식을 통해 나타낼 때 그것을 노래로 드리는 찬양(Praise in Songs)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찬양의 형식 중에서 노래라는 표현을 가장 선호하게 되므로 좁은 의미에서 찬양은 노래를 말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찬양은 노래를 포함하는 전인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는 노래로만 드려서는 안 됩니다. 진정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찬양하는 사람의 얼굴 표정, 목소리, 몸짓 하나 하나에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표현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복음성가나 CCM은 모두 찬양인가?
기독교적인 가사를 가진 노래라고 해서 다 찬양은 아닙니다. 찬양이 주제인 노래도 물론 많이 있지만 그 외에도 서로에 대한 권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 죄의 고백, 말씀 선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노래들도 이에 못지 않게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노래들을 다 뭉뚱그려서 찬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예수 믿으세요"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이 곡은 믿지 않는 불신자를 향해 믿음을 권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의 주제는 찬양이 아닙니다. 뭐 그렇게 일일히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르지만 곡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적절한 장소와 적절한 시간에서 합당한 자세로 불리워질 수 있기 때문에 구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수 믿으세요는 노방 전도할 때는 좋은 곡이겠지만 성도들이 모여 예배할 때는 그리 적절한 곡이 아니겠지요.
찬양은 젊은이들에게만 필요한가?
이 질문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찬양을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피조물의 올바른 반응이라고 본다면 주로 찬양은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는 표현이 얼마나 넌센스인가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 사역을 위해 찬양이 필요하다는 말을 가끔씩 듣습니다. 이런 말의 의미는 사실 CCM 노래들이 장년층과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젊은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은 CCM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있다 이런 식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가 담겨져 있다면 찬송가도 찬양이고 CCM도 찬양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든 피조물들의 의무이나 기쁨인 찬양이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깊이 있는 찬양은 신앙 연륜이 쌓여서 성숙해 질 때 나오게 되지 않을까요?
찬양의 목적은 마음 문을 열기 위함인가?
찬양은 사람의 만족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찬양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찬양은 존재합니다. 본 프로그램에 앞서 흥겨운 분위기를 유도해 내기 위해서 찬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이런 식으로 노래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아주 단순한 가사의 빠르고 경쾌한 곡을 무한 반복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에 부흥 강사가 등장하는 것이죠. 그런데 좀 심하게 말하면 이런 것은 약간은 이교적인 냄새가 납니다. 무당이 굿을 할 때도 보면 장구나 태평소를 든 악대가 옆에서 분위기를 고취하는 역할을 했었거든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분위기를 띄우고 마음 문을 열기 위해 찬양하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그 분의 이름이 아름다우시기에 찬송할 따름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편 135:3)
노래면 다 같은 노래아닌가? CCM은 뭐고 복음성가는 뭐고 워십곡은 뭔가?
노래라고 다 같은 노래는 아닙니다. 복음 성가는 주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하여 불신자를 대상으로 전도하면서 불리우졌던 노래를 말합니다.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약자로서 현대적인 혹은 동시대의 기독교 음악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내용을 담고 있되 그 시대의 대중 음악적 형식을 차용한 노래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목자님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워십곡에 대해서는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워십곡은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예배 중에 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을 말합니다. 워십곡은 회중이 예배 중에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대부분 간결한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단순한 화성을 사용합니다. 또한 주제 역시 예배에 맞게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경배 위주로 가사가 쓰여지고 공동체성을 강조합니다. 고 형원 전도사님이 지은 '부흥'이나 '물이 바다 덮음 같이' 같은 곡들이 대표적인 워십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CCM 곡들은 대부분 멜로디가 복잡하고 가사도 길고 개인적인 고백을 담은 곡들이 많습니다. 예배보다는 콘서트 때나 혼자서 음반을 감상할 때 듣기 좋은 곡들입니다.
찬송가에 비해 CCM의 곡조가 너무 세속적이지 않은가?
'찬송가는 경건하고 CCM은 너무 가요풍이라서 경건하지 못하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찬송가에 있는 많은 곡들이 처음 나올 당시에는 CCM(당시에는 그런 용어는 없었지만)이었습니다. 찬송가에 보면 아이작 왓츠가 지은 영감어린 찬송가들이 많이 있는데 이 분의 찬송가가 처음 나왔을 때 너무 세속적인 풍으로 작곡되었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서는 고전적인 찬송이 되었습니다. 찬송가 중에는 가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멜로디는 민요나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그대로 차용한 곡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도 가사는 존 뉴턴이 지었지만 곡조는 당시 널리 알려졌던 민요 곡조 그대로입니다. 지금 우리가 많이 듣는 CCM 곡들도 아마 백년이 지나면 클래식이 되어 있겠죠. 시대의 음악적인 흐름과 형식은 변하기 마련이고 어떤 그릇에 담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담긴 노래이면 큰 마음으로 수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CCM 가수들도 찬송가를 많이 부릅니다. 좋은 가사를 지닌 노래는 세월을 초월해서 사랑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저 역시 헤비 메탈이나 랩 음악 형식으로 된 CCM 곡에는 거부감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동시대의 음악 형식을 빌린다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찬양 사역의 영적인 위험성은 없는가?
찬양 사역에는 영적인 위험성이 참으로 많습니다. 도처에 폭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큰 위험성은 인간의 만족을 위한 사역으로 변질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예배가 아니라 인간의 감수성을 만족시키는 예배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배인가 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최악의 경우 회중이 음악과 분위기와 볼거리를 즐기고 마는 그런 예배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신앙 생활의 균형을 잃어 버리고 감정 위주의 신앙 생활을 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감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정만을 앞세우는 신앙 생활은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신비주의나 주관주의의 덫에 빠질 수 있습니다.감정과 함께 건전한 교리를 배우고 공부하여 지적으로도 성숙해 져야 하고 섬김의 실천을 통해 행하는 믿음을 배워야 하는데 찬양에 몰두하다가 감정 위주로 신앙으로 자칫 흘러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놓쳐 버리는 잘못을 범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피조물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스스로를 계시하신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하고서는 찬양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역으로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면 찬양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공부를 하지 않는 찬양 사역자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CCM 가수가 실족한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아예 찬양을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령 운동의 위험성 때문에 성령 하나님을 무시하면 안 되듯이 찬양 사역의 위험성 때문에 아예 찬양을 무시하는 것 또다른 영적 불균형을 낳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즉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의 말씀에서 드리는 찬양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1장 3절부터 6절까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