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마가복음 26강 / 이창무
깨어 있으라
말씀 / 마가복음 13:1-37
요절 / 마가복음 13: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지난 주 목요일은 대입 수능 시험 날이었습니다. 제가 인공 지능에게 수능을 잘 보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지침을 알려 주었습니다. 첫째는 “계획대로, 꾸준하게, 시간을 지배하라!”, 둘째는 “기출 문제 분석은 필수, 반복 학습이 정답”, 셋째는 “체력과 멘탈도 실력, 건강이 곧 성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 종말의 날이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수능 시험 준비에 있어서 철저한 계획과 꾸준한 학습이 중요하듯, 예수님께서 종말의 때에 대해 주신 지침 또한 ‘깨어 준비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해 주십니다.
1. 겉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영적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
당시 성전은 완공에 이르기까지 84년이나 소요되었으며, 예루살렘 전체 면적의 1/6이나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기둥과 벽이 세워졌고, 천정과 문은 기부 받은 막대한 양의 금으로 입혔습니다. 여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눈이 부셔서 쳐다보기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위용에 놀라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와~! 기가 막히네요. 죽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런 들 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리라”(2)
예수님은 성전의 수많은 돌 중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언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전 내부의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지난 주 말씀에 나왔던 사두개인들이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현실의 부와 권력을 얻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을 비즈니스 모델로 이용하는 종교 자영업자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성전의 겉모습은 크고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썩을 대로 썩어 악취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 밖에 없음을 보고 계십니다.
유럽에는 엄청난 크기와 높이를 자랑하는 수많은 오래된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곳이 관광지로 전락했고, 최근에는 술집으로 개조되는 참담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신앙을 잃고 복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얼마든지 그 전철을 뒤따라갈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가장 큰 교회 50개 교회 중에 한국에 몇 개의 교회가 있을까요? 미국 크리스챤 월드 지의 발표에 따르면 23개가 한국에 있다고 합니다. 대망의 1위도 당연히 한국의 차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마냥 감탄하고 자부심을 가질 것만은 아닙니다. 과연 한국 교회는 그 화려함과 명성에 걸맞는 영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혹시 그 안에 참된 예수님의 제자보다는 현대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요? 진리의 복음보다는 값싼 위로와 평안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은 아닐까요? 만약 정말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한국 교회는 외형적인 화려함이 아닌, 진정한 영적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영적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바로 우리부터 말씀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개혁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시험과 환난의 때에 조심하고 끝까지 견뎌내야 합니다.
성전 멸망에 대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4)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성전 멸망의 세 가지 징조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인가를 알려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첫째,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하고 곳곳에 전쟁과 재난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멸망하는 AD 70년 이전에 많은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아르메니아, 북아프리카 등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또한 클라우디우스 황제 재위 시절에 대기근이 있었고 예루살렘 교회도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소아시아에서는 지진이 발생하여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도시들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큰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으로 무엇인가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바로 이 심리를 파고드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5-6)
그들은 바로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당시에 드다(A.D 40년 중반),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살해한 므나헴(66년), 시몬 바 기오라(68-70) 같은 사람들이 거짓 메시야로 등장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세상 종말이 올 것처럼 겁을 주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들에게 결코 속아 넘어 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아직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곳곳에 전쟁과 재난의 소식이 들립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2년 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은 중동 전역으로 확전될 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중국은 대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남북 대치 상황에 처해있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긴장 관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진과 기근도 계속되고 있습니다.요즘 일본은 100년만에 대지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정부의 경고에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로 인해 농수산물 작황에 비상이 걸리곤 합니다. 최근에는 스페인산 올리브유 생산이 급감하고 가격이 폭등해 파스타 집에서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불안해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 심리를 파고 드는 것이 바로 이단 사이비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50명의 재림 예수가 있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신천지의 이만희 교주가 있습니다. 그는 계시록을 자기 입맛대로 가르치면서 때가 임박했으니 어서 구원 받을 144,000 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미 등록 교인이 17만명이 넘어 수 만명은 짤리게 생겼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런 이단과 사이비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바꾸어 가며 사람들을 미혹하려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이 말씀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은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니라.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둘째,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집니다.
전쟁과 재난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임하는 환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오직 신자들에게만 임하는 환란이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박해가 있을 것을 예언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처음에는 유대인으로부터, 그 다음에는 헬라인, 그 다음에는 로마인들로부터 크고 작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박해가 심해지면 교인 들 가운데 배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배교에 그치지 않고 한때 함께 신앙 생활을 함께 했던 신자들을 밀고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그 밀고자들 중에는 가족도 포함됩니다. 이때 믿는 사람마저 ‘나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이쯤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다.’ 하면서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
견디는 것은 제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제자의 자리, 성도의 자리, 신자의 자리를 묵묵히 참고 지키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반드시 구원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왜 이런 박해를 주님께서 믿는 자들 가운데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10)
복음이 수평적으로는 더 먼 곳으로, 수직적으로 상류 사회까지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나자 성도들이 사방으로 다 흩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사마리아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복음을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발을 당해 재판을 받게 된 덕분에 총독과 임금과 마침내 로마 황제 앞에서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실제로 박해가 복음 전파의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학자인 앨런 크라이더는 초대 교회가 성장하게 된 원인을 연구하여 책을 내었는데 그 책의 제목은 ‘인내의 발효’였습니다. 불 같이 뜨거운 박해를 견뎌낸 성도들의 인내가 발효하여 마침내 로마 제국을 뒤엎어 버렸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 로마 제국의 박해는 불 같이 뜨거웠습니다. 실제로 신자들을 불로 태워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박해는 양상이 다릅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 문 앞에 군병이 서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현대의 박해는 얼음처럼 차갑고, 은밀하고, 교묘하게 다가옵니다. 사회적 압력, 세속적 가치관의 침투, 그리고 신앙을 조롱하는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차가운 박해를 경험합니다. 직장에서 신앙을 드러내기 힘들고, 기독교적 가르침은 ‘비과학적’, ‘비합리적’으로 치부되며 조롱받기도 합니다. 또한, 개인주의와 상대주의의 물결은 신앙의 절대성을 무너뜨리려 하고, 편리와 쾌락을 강조하는 세상 문화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타협하도록 유도합니다. 세상에 순응하게 만들며, 기도와 예배의 자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뜨거운 박해가 몸을 태웠다면, 차가운 박해는 마음과 영혼을 서서히 얼어붙게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보다 더 은밀하고 교묘한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불만이 차가운 박해를 녹여낼 수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학사를 위한 바이블 카페 “영혼의 힐링 콘서트”를, 그 다음 주 토요일은 전도 스페셜 데이 행사를 열고자 합니다. 우리 이런 시도와 몸부림이 차가움을 녹이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내년 전국 학생 수양회 가운데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멸망이 임박한 무렵에 극심한 환란이 일어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4)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이 가증한 것으로 모독을 당하는 일을 보거든 성전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실제 A.D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은 로마 황제의 초상과 독수리가 그려진 깃발을 성전에 갖다 꽂아 성전을 더렵혔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펠라’라는 이름의 산으로 도망쳤던 사람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의지해 그 안에 피신했던 유대인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때의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임신했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여인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또한 그 날이 피난이 어려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겠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는 끔찍하고 참혹한 환난조차 하나님의 계획과 통제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전문가, 석학, 미래학자들이 모여 급변하는 시대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석하며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모습을 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에 인류는 60년 안에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공 지능의 엄청난 발달로 인해 멀지 않은 시기에 인간이 인공 지능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와 더불어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등장과 장기적인 경제 대공황이 닥쳐올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과연 인류는 이런 위기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일론 머스크의 구상대로 화성으로 이주해 사는 것만이 해답일까요?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23)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의 진단이 이미 그 당시부터 정확했으며, 그 예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전문가들의 분석보다 더 정확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시대가 혼란스럽고 불확실할수록, 우리는 사람의 분석이나 지식에 의지하기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진정한 해답이 있고, 그분의 가르침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 있습니다. 세상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으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환난의 시기를 지나며 미혹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가려면, 우리는 오직 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3.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전의 멸망은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고편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면 본편은 어떻게 될까요?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24-26)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면 질서가 무너집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모든 사회 시스템이 뒤죽박죽이 되는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세상에 오실 때는 아기의 모습으로 마굿간 말구유에 조용히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때에는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십니다. 주님이 오셔서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이름도 부르실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가 될까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28-29)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게서 힌트를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5월부터 무화과나무에서 새로운 가지가 자라고 잎이 납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을 나타날 때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종말이 없었는데 설마 내가 살아 있을 때 종말이 올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류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은 반드시 있습니다.
단, 그 날과 그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33)
영적으로 풀어져서 죄의 잠에 빠져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주님이 언제 오실지, 내가 언제 주님 앞에 설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먼 나라로 떠나는 주인과 그 주인이 권한을 부여하고 일임한 종들, 그리고 문지기의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주인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저물 때일 수도, 밤중일 수도, 닭이 울 때일 수도, 새벽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잠도 자지 말고 일상생활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과 일상을 주인이 맡기고 간 사명과 돌아올 주인에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주인이 돌아올 것을 생각하며 주인이 맡긴 일을 변함없이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태도가 우리의 일상이 되면, 주인이 ‘홀연히’ 돌아오더라도 우리는 갑작스럽거나 당황하지 않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확실함을 믿고, 한결같이 복음 전파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자세’입니다. 종말의 때에는 미혹의 영이나 재난, 환난으로 인한 두려움이 우리의 일상을 흔들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아는 것은 그날까지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좁은 길을 걸어 간다면 우리의 여정 끝에서 영광의 주님이 우리를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기쁨으로 일어나 노래하며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시험이 오더라도 말씀으로 무장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 복음의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땅 덮을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영광 온땅 덮을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온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의 말씀을 통해 종말의 때를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할 우리의 자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요동치고,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 때에도 주님의 말씀 속에서 확고한 진리를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진정한 영적 본질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맡기신 사명에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끝까지 인내하며 환난과 시험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영광과 권능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3) | 2024.12.10 |
---|---|
이것은 내 몸이니라 (1) | 2024.12.07 |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11) | 2024.11.10 |
모퉁이의 머릿돌 (12) | 2024.11.03 |
나귀 타고 오시는 왕 (8) | 2024.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