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성탄절

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이창무 2020. 12. 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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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성탄 제 1 강

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말씀 / 누가복음 1:26-56
요절 / 누가복음 1: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 기간 집권했던 왕이 누구일까요? 바로 고구려 장수왕입니다. 98세를 살면서 78년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 지속되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바로 신라입니다. 1,000년에서 7년 모자라는 993년 지속했습니다. 이처럼 장수왕은 있는데 영원한 왕은 없었습니다. 천년왕국은 있는데 무궁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왕이 딱 한 분 계십니다. 또 무궁한 나라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영원한 왕이시며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무궁한 나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함께 묵상하며 성탄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엘리사벳이 수태한 지 여섯째 달에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셨습니다(26). 왜 그곳에 갔습니까? 처녀 마리아가 그 동네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였습니다(27). 마리아를 만난 천사 가브리엘의 첫 인사가 무엇이었습니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28)”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특별한 호의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이 인사말은 마리아에게 너무나 뜻 밖의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했습니다(29).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은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도대체 마리아가 어떤 은혜를 받았다는 말입니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1)”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곧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2,33)” 천사는 마리아가 낳을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격적으로도 가장 훌륭하며, 가르침도 가장 위대하며, 사역 면에서 가장 위대한 사역을 할 것이며, 그 생애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생애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본질적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그 나라는 영원무궁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천사 가브리엘이 한 말을 종합해 보면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복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이십니다. 또한 영원히 그들을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 되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인류 역사에 이보다 위대한 탄생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것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주 오래 전, 창세기 3장 아담이 범죄했을 때부터 여자의 후손 가운데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 왕에게는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이런 표현을 어떻게 감히 사람에게 쓸 수 있겠습니까? 이는 곧 하나님이 직접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한 아기로 오시겠다는 강력한 암시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바로 지금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그분을 통해 구원 역사를 완성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고하셨던 대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역사의 주인 되시는 분께서 이제 그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의 몸 안으로, 한 여자의 태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태아가 맨 처음에 생성되었을 때 그 크기가 3 m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성자 예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광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낱 점과 같은 작은 크기가 되어서 여자의 몸 안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엄마의 손길이 없으면 안 되는 한 연약한 아기가 되셨습니다. 이 일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우리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노예 상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공평과 정의, 사랑과 자비로 다스리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썩지도 쇠하지도 더럽혀지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모든 백성을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실 위대한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또 다른 크리스마스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처럼 지극히 위대하고 특별하신 분이 지극히 평범한 시골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입니다. 나사렛이라는 이름은 나사렛 대학, 나사렛 병원 등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지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단 한 번도 나사렛이란 지명이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나사렛은 무명의 산골 마을로 서울로 치면 제기동 같은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아 역시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처럼 예루살렘의 유력한 제사장 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약혼한 요셉 역시 다윗의 자손이라는 뼈대는 있었지만 오직 뼈대만 있었습니다. 현실은 그저 가난한 목수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대부분 유대 여자들이 만 13,14세 때 결혼을 했기 때문에 마리아도 그 정도 나이였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아침마다 길에서 흔히 만나는 교복 입은 여중생들 중 한 명입니다. 그 누구도 마리아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 스스로도 자신이 딱히 내세울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리아가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님을 잉태할 그릇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마리아가 이 은혜를 입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수의 아내로서 평생 톱밥이나 퍼 나르며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성모 마리아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얼마나 크고 엄청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은혜를 입었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28)”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30)” 우리도 은혜 입은 마리아를 사모하여 곽 마리아, 안 마리아, 서 마리아, 등등 마리아가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 뿐만 아니라 항상 은혜로 선택 받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홍수로부터 인류의 씨앗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사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한나에게 하나님은 사무엘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잘난 사람, 많이 가진 사람, 힘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택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곧 은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전혀 아닙니다. 마리아에게 무슨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까? 마리아가 유명한 사람이었습니까? 마리아는 탁월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령의 능력, 말씀의 능력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를 통해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죄 가운데 태어나 일생 하나님을 거역하고 또 자기 하나 감당할 수 없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만 가지고도 큰 은혜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고자 하십니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은혜를 입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가시는 역사에 감히 우리가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무 자격 없는 우리에게 임한 은혜 위의 은혜입니다. 올해는 우리를 포위하고 점점 목을 조여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계속 시달린 한 해였습니다. 3월만 해도 12월말까지 이렇게 다 마스크를 쓰고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성경 공부를 해야 할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지, 어떻게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합심 기도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막막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이 와중에 러너스 가운데 새롭게 찬양팀 하이예스가 탄생하여 신실하게 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소식지가 만들어져서 선교사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고 우리 상호간에 서로의 소식을 알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이 생겼습니다. 이외에도 작년 신년 말씀 보라 내가 새 일을 이루리라 말씀대로 하나님께 올해 우리 가운데 많은 새 일을 이루셨습니다. 코로나 가운데 올해도 여전히 복음은 전진하고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고 있습니다. 이는 누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능력을 나타내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마리아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38).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서 기꺼이 순종으로 반응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택하십니다. 그러나 억지로 강제로 쓰시지는 않습니다. 순종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 역사를 이루는 귀한 도구가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모습에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본이 됩니다. 마리아가 이 일로 인해 개인적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처녀로서 아이가 생깁니다. 그 다음 무슨 일이 생길까요? 아무리 열심히 그 기적을 설명하려고 애를 써도 그 진실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수군거림, 비웃음, 조롱이 그녀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약혼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약혼자인 요셉이 오해하지 않도록, 천사가 마리아를 안심시키면서 “요셉은 걱정 마! 내가 가서 이 사실을 자세히 알려 줄게” 이러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을 기꺼이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자의 합당한 반응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순종으로 반응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며, 그분이 뜻하신 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순종보다 더 앞서는 순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나요? 마리아의 순종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이분의 순종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의 순종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사람이 되어 한 아기로 태어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이 거절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가 왜 꼭 그래야 합니까?’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리아의 순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애초에 성탄절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죄사함도 없었을 것이고 영원무궁한 하나님 나라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셔서 한 아기로 탄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하며 성탄절을 기념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순종하셔서 친히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기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 역사에 쓰임 받는 오늘의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순종과 사람의 딸인 마리아의 순종이 만나는 순간 시가 탄생했습니다. 장엄하고 감격적인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46-55)” 성탄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큰 일을 행하셨는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가 묵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마리아처럼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을 힘있게 찬송하며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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