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이창무 2017. 12. 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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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중에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어떤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단순한 말이지만 살면서 우리는 이 말이 참 맞는 말이구나 싶은 경험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보통 대형 마트에 가기 전에 이번에 구입해야 할 물건 목록을 미리 생각하고 갑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올 때 보면 사기로 했던 품목 외에도 훨씬 더 많은 물건들을 구입한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요? 뒤늦게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면서 후회를 해 보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입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하면 우리가 그 물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 보일 때가 필요가 없었는데 보고 나면 달라집니다. 보고 나면 저 물건이 꼭 필요해 보이고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보는 것과 욕망하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보는 것은 곧 욕망하는 것입니다.


혹시 부부가 서로 닮는다는 말을 안 들어 보신 분은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이 말은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는 잘 해당이 되질 않습니다. 보통 결혼한 지 수십 년이 된 오래된 부부에게 잘 들어맞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연구 결과 실제로도 결혼 생활을 오래 한 부부는 서로 닮게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거울 효과라는 것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보고 있는 대상의 표정을 따라하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웃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됩니다. 만약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경직된 표정을 짓게 됩니다. 부부는 일생에 걸쳐 서로 가장 많이 쳐다보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아내의 얼굴 표정을 따라하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의 얼굴 표정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래 되다 보면 얼굴 근육 자체가 변해서 서로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닮은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내가 누구를 보느냐 하는 것이 내가 누구를 닮아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은 곧 닮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에서도 본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주의 영광을 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듭 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주의 영광을 보질 못합니다. 앞을 못 보는 맹인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없습니다.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수건을 덮은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성령에 의해 거듭나는 순간은 우리 영혼은 눈을 뜨게 됩니다. 덮였던 수건이 사라지고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 경험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힘든 황홀한 경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사실 어제까지 세상이 오늘 갑자기 아름답게 변했을 리는 없습니다. 거듭나 주의 영광을 보고 나니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는 것은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았느냐에 따라 바라는 것과 닮아가는 것이 달라집니다.


주의 영광을 본 사람은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됩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한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우리 안의 하나님의 형상이 다 망가져 버렸습니다. 우그러뜨린 종이컵처럼 되어서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의 영광은 보이질 않고 대신 세상의 헛된 우상들만 보입니다. 우상들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면 그 우상들을 닮아가게 됩니다. 소처럼 생긴 우상을 자꾸만 보면 사람이 소처럼 변합니다. 늘 돈만 쳐다보면 사람이 인간성을 잃고 돈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권력을 바라보면 권력에 미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본 주님의 형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영광스럽기 때문에 주님을 닮고 싶은 소원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게 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점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주의 영광을 본 사람은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앞의 영광은 거듭난 자에게 처음부터 주어지는 영광을 말합니다. 우리가 거듭나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곧바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는 인정을 받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또 거듭난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 이동을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얻습니다. 이 또한 큰 영광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뒤의 영광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누리게 될 영광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 받게 됩니다. 죄의 몸을 벗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그러면 그 중간 과정에는 영광이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조금씩 더 닮아가며 거룩해져 가는 것, 이것이 또한 영광입니다. 결국 주의 영광을 본 사람은 사람의 본래적인 영광을 회복하게 됩니다.


종합해 보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계속해서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소원이 생길 것입니다. 주의 형상을 닮고자 애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주의 영광을 바라보지 않으면 열정도 식고 소원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에 있어서 진보가 나타나질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주님의 영광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화려한 모습입니까? 우리를 도우시는 주의 영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점점 주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변화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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