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전혀 뜻 밖의 장소에서 만난 일용할 양식

이창무 2017. 12. 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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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8일 저는 6주간 신병 훈련을 마치고 배치 받은 자대로 향하는 군용 트럭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리가 가는 부대가 어디인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솔자가 갑자기 밖을 보라고 했습니다. 

38선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전방을 향해 가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다들 한숨을 쉬며 얼굴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찌푸린 하늘보다 더 짙은 잿빛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저는 평안했습니다. 

왜냐하면 군대가 내 운명을 결정하지만 그 군대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굳게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런 믿음이 어떻게 제게 생겼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영적 수준을 생각해 볼 때 참 기특하고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저를 인솔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 보았습니다.


자대에 도착해 여느 이등병의 첫날처럼 저는 내무반 벽을 향해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무반 책꽂이에 어디서 많이 보던 책자들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열권 남짓 되는 UBF 일용할 양식 책자였습니다.

저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일용할 양식 책자를 만나게 되라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질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용할 양식 책자에는 이동철이라는 이름이 써 있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현재 종로 센터에 스텝 목자님으로 계신 '이 스펄젼 목자님'이셨습니다.

이 양식 책자들은 스펄젼 목자님이 그 내무반에서 제가 전입해 오기 일주일 전에 전역하면서 남겨 두신 것들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수많은 부대가 있고 그 부대 안에도 많은 내무반이 있는데 어떻게 저는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까요?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스펄젼 목자님은 내무반 고참들에게 목자가 군대에서 신앙 생활하기 위해 어떤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가를 완벽하게 훈련시켜 놓고 가셨습니다.

고참들은 제가 신앙 생활하는 것을 전혀 터치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보초 근무에 걸려서 예배를 갈 수 없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고참들이 알아서 근무 시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이등병 때부터 수요예배, 주일오전예배, 주일저녁예배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군에서 일주일에 세번씩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가 군에 입대하면서 제가 서원 기도했던 딱 바로 그 기도 제목대로였습니다. 


저는 이때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군에 들어가 보니 처음에는 너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군대 안의 권세자들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앞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를 믿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저를 가장 베스트의 부대로 인도하셨습니다.

대대장님과 그분의 사모님도 믿음이 신실하신 분이셔서 언제나 든든했습니다.

여러 캠퍼스 선교 단체 출신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도 하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살다 보면 힘 센 사람들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릴 때가 있습니다.

좋든 싫든 모든 국민들은 5년 동안 대통령의 통치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 가면 직속 상사가 왕입니다. 

상사는 날마다 야근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말에도 부릅니다. 

피곤하고 쉬고 싶어도 부르면 가야 합니다. 

대학원생은 교수님 눈 밖에 나면 끝장입니다. 

힘 있는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이런 저런 일들을 꾸밉니다. 

힘없는 사람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치사하고 서럽고 원통한 일을 겪기도 합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자는 이런 힘 있는 권세자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우리는 보이는 권세자보다 더 위에 계신 보이지 않으신 권세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권세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행한 모든 일들은, 그것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요 과정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때로는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방향으로 전진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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