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장의 비자를 발급한 영사
1939년 9월1일 독일 전차들이 폴란드 국경을 넘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되었습니다. 나치독일의 기세는 대단했습니다. 무수한 나라들이 나치의 군화에 짓밟히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자비한 폭압에 항거하던 사람들, 피점령국가의 왕족들, 대학교수, 언론인, 공산주의자 그리고 집시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물론 목숨의 위협을 느낀 유대인들이 가장 다급했습니다.
난민들은 중립을 선언한 포르투갈과 에스빠냐로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중립국임을 선언하였으면서도 히틀러의 환심을 사고 싶었던 포르투갈의 수상 살라자르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난민들에게 포르투갈 비자를 내주지 말 것을 지시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주재 포르투갈 영사관의 주인 아리스티데스 데 소사 멘데스 영사는 깊은 고민에 사로잡혔습니다. 본국의 명령을 따를 것이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살릴 것이냐.
결국 멘데스 영사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나는 국적과 민족과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비자를 발급하겠습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멘데스 영사로부터 포르투갈 비자를 받으려고 세계 각국의 난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습니다. 멘데스 영사와 직원, 그리고 영사의 가족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긴박한 비자발급 신청을 접수, 처리하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영사의 사인이 든 비자 한 장에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었기에 그는 쉴 사이 없이 비자에 사인을 해주었고, 비자발급에 따른 수수료를 청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멘데스 영사는 본국으로부터 명령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지고 파면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명예회복이 되지 않았고, 노후에는 파산까지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본국의 명을 어긴 외교관의 최후가 어떨지 알면서도 그가 발급한 비자는 모두 3만 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자만이 영웅은 아닙니다. “한 생명을 구했다면 그것은 온 세상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탈무드의 격언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3만 장의 비자에 서명을 한 멘데스 영사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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