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2017가정교회

가정교회 말씀 공부 제 5 강 교회와 가정

이창무 2017. 9.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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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 말씀 공부 제 5 강
말씀/ 로마서 16:3-5a
요절/ 로마서 16:5a

교회와 가정

  • 성경적 가정 교회의 모델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
  • 우리 모임의 가정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 본문은 로마서 16장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속에서 나온다. 사도행전 기록과 병행해 가면서 모범적인 가정 교회였던 브리스길라 아굴라 가정 교회를 그려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적용할 길을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자.

1. 바울이 먼저 누구에게 문안인사를 하였습니까(3)?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자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은 어떻게 바울과 동역하였습니까(행 18:1-3,18-19)?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행18: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 문안하라는 말은 자기의 문안 인사를 전해 달라는 말이다. 바울이 문안 인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이들은 바울과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에 있거나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긴 사람들이다. 문안 인사를 부탁하는 내용이 16절까지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먼저 문안하도록 요청한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이다.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천막을 제조해서 파는 사람들이었다. 당시 천막은 로마 군대의 숙소, 건설 노동자들의 거처, 상인들의 가게 등에 많이 쓰였다고 한다. 천막 제조는 아굴라가 하고 브리스길라는 마케팅, 영업을 했을 것이다. 원래는 로마에 살고 있었다. 이때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런데 주후49년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에 의해 쫓겨나 고린도에 와서 머물게 되었다. 거기에서 바울을 만나게 된다. 고린도에서 바울과 같이 천막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바울의 사역을 크게 돕고 바울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왔을 때 외로웠고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돈도 없었다. 동역자도 없었다. 이런 바울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지지를 해 준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부였다. 고린도에서 오래 머물며 큰 사역을 이룬 것에서는 이 부부의 동역의 힘이 컸다. 그들은 바울이 헬라의 고린도를 떠나서 소아시아의 에베소로 갈 때에 함께 동행하기도 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터전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바울과 동역을 위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서도 함께 동역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이 부부의 선한 영향력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주후 54년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유대인 추방령이 해제되었을 때 다시 로마로 돌아가게 되어 현재는 로마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  브리스가는 브리스길라의 애칭이다. 바울 뿐 아니라 사도행전에서도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아굴라의 이름보다 앞에 나온다. 총 일곱번 언급되는데 그 중 다섯번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온다. 당시 사회의 관례를 어긋난다. 이에 대해 브리스길라가 남편보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로마의 귀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는 브리스길라가 남편 아굴라보다 선교에 대한 참여와 헌신 정도가 더 깊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로마서 16장에 총 28명의 동역자들이 언급되는데 그 중 9명이 자매님들이다. 가정교회의 열쇠며 원동력은 믿음의 여인들이다. 바울이 여기서 애칭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친밀했음을 말해준다. 남편 아굴라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른다. 동역자란 함께 일하고 협력한 사람, 일을 촉진시키고 도와주었던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울이 동역자라고 부른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디모데, 디도, 마가, 아리스다고, 누가,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전부이다. 나의 동역자라고 부른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를 오해하면 안 된다. 바울의 똘마니였다 이런 식으로 보면 안 된다. 사적인 관계가 핵심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바울은 말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과 동역한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에 나타내기 위한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부는 그러므로 바울의 동역자이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동역자였다.
  • 말하자면 바울은 풀타임 사역자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평신도 사역자였다.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와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또는 스텝 목자와 평신도 목자와의 관계하고도 비슷하다. 복음 역사를 섬기기 위해서는 이 둘의 동역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양들이 잘 자랄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이 삐걱거리거나 파열음을 낼 때도 있다. 서로 비난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싸우고 갈라서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될까? 이 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의 말씀에 기초해서 기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을 통해 영적인 관계성을 맺으며 동역해야 한다. 인간적인 관계를 앞세워서 이런 관계성을 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호 인정, 상호 존중, 신뢰하고 감당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동역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의 사역을 도왔다 이렇게만 보면 안 된다.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사역을 도운 것도 맞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떠났다. 그리고 그 교회를 유지하고 경영하고 돌볼 사람들은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같은 평신도 사역자들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풀타임 목자가 사역을 독점해서도 안 되고 또 풀타임 사역자의 고유한 영역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바울이 겸손했지만 복음 진리의 세우는 면에서, 말씀의 종으로서 권위에 대해서는 단호했음을 기억하라.

2. 바울이 그들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기억하였습니까(4a)?  어떻게 이런 헌신적인 동역이 가능했을까요? 그들은 다른 가정 교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습니까(4b)?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생명을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이 말을 두 가지 시각에서 보는 견해가 있다. 하나는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쓸 정도로 매우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바울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실제 처형 당할 위험에 있었던 것으로 가리키는 사실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베소에서 있었던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소요 사태와 관련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이들은 바울의 선교 역사를 헌신적으로 동역하였다.
  •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게 바울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들도 계속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한 이유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바울의 생명을 구해주었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감사하느니라는 말이 현재형으로 쓰여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감사한다는 뜻이다. 그들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헌신이 교회에 적지 않은 은혜를 끼쳤을 것이다. 영육 간에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소식이 이방인의 여려 교회에 널리 알려졌다. 그들은 영향력 있는 평신도 가정이었다.
  • 우리 모임의 선교 역사는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것처럼 헌신적이었던 가정들이 이루어 온 역사였다. 가정을 이룰 때부터 선교를 위해 헌신한 가정으로서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 각처에 나간 선교 가정들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개척 역사를 일구어 왔다. 예를 들어보자. 모스크바 , 인도네시아, 멕시코 곳곳에 계신 선교사님들이 다 그렇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은지 모른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헌신적인 가정이 지금도 있는가? 눈에 보이는 본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 한 두 가정이라도 본이 되고 모델이 되면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이런 가정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3. 사도행전 18장 24절에서 26절을 읽어 보시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아볼로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매맺는 복음의 동역자가 되도록 어떻게 도왔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가정교회 역사의 주요기능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행18: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주님의 교회 역사에 헌신하고 바울과 동역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대도서관으로 널리 알려졌던 곳으로 학문의 도시였다. 여기 출신인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였다. 언변이 좋다는 말은 당시 수사학에 능했다는 말이다. 그는 예수님에 관해 열심해 배웠다. 또 가르치는 은사, 말씀 전하는 은사가 있었다. 회당에서 아볼로의 설교를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것은 성령 세례를 알지 못했다는 말이다. 곧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무지했다. 회개는 열심히 하고 의지적인 투쟁을 열섬히 하기는 했지만 복음을 잘 알지 못했다.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데려왔다고 했다. 어디로 데려왔을까? 자기들의 집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말하자면 집에서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해 준 셈이다. 
  • 그 결과 아볼로는 복음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원래 은사가 있던 사람이 복음의 이해가 깊어지니 아주 빼어난 성경 선생이 되었다. 아볼로는 에베소 교회에 큰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고 후에는 고린도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가 되었다. 아볼로 같은 큰 일꾼을 키운 사람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였다. 그들은 제자양성가요 성경선생이었다.

4. 로마의 성도들은 어디에서 모였습니까(5a)?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이 어떻게 교회의 역할을 감당했을까요?  우리가 그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 저의 집에 있는 교회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자신들의 가옥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친교, 또 선교의 장소로 제공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이 부부의 집을 집회 장소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위한 따로 구분된 독립 건물이 없었다. 예배와 모임은 모두 개인 소유의 집에서 가졌다. 빌립보 성의 루디아도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작은 가정 교회들에서 규칙적인 예배와 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있던 이런 가정 교회들이 연합하여 전체 교회로서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였다고 한다. 로마 교회 안에서는 이런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가정 교회 같은 교회가 여럿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적어도 주후 3세기까지 계속되었다. 
  •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본래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모이는 대중 집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구약에서 종교적 목적을 갖는 총회, 집회를 뜻하는 말에 맞닿아 있다. 이 단어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기초해서 탄생한 성도의 교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대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사람이다. 마르틴 루터는 그래서 교회라는 단어를 독일어 공동체 회중을 뜻하는 단어로 번역했다.
  •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있는 교회란 요회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구성원 수가 많아지면 상호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이 약해지고 공동체성을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소그룹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공동체의 초대부터의 모델이 가정 교회이다. 집이라는 곳만이 줄 수 있는 가족과 같은 보살핌과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사실 상 교회의 기능을 수행했다. 예배도 드리고 성경 공부도 했다. 전도하여 양을 초대하여 식탁 교제를 나누며 복음을 전했다. 교제만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정 교회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역에 있는 전체 교회와 긴밀히 연합하였다.
  • 우리는 자비량 선교사를 양성하여 파송하는 방식으로 세계 선교를 감당해 왔다.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지닌 강점이 크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각 가정이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대부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 양육, 교제 등등이다. 선교지에는 한 두 가정이 나가서 개척하는 곳도 많다. 그렇다면 가정 교회가 되어야 하고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2대 8 법칙이 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2대8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섬기는 공동체가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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