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목회 현장

국내 선교 단체와 제자 훈련의 문제점

이창무 2016. 12. 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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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권영문(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성경적 기독교와 엉터리 기독교> 저자) 컬럼니스트가  쓰신 국내 선교 단체와 제자 훈련의 문제점에 관한 글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는 최초의 선교하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2명의 선교사인 바울과 바나바를 외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파송하였다. 여기서 선교사란 새로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지역 교회에 속한 은사자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의 선교 단체들은 이러한 성경적인 선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국내의 적지 않은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제자 훈련 프로그램도 성경과는 동떨어진 면이 많다. 여기서는 이러한 국내 선교 단체와 제자 훈련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선교에 관한 모본을 알아본 후에 이와 대조하면서 국내 선교 단체들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신약성경에는 모두 30개가 넘는 지역 교회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들은 거의가 다 교회 개척을 위한 순회 사역자들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거나, 또 세워지고 나서 그런 사역자들에 의해 도움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바울과 그의 동역자, 바나바, 실라, 디모데, 디도, 에바브라 등이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일했으며,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유기적 교회 세우기>, 프랭크 바이올라, 대장간, 143쪽).

 

상기에서 순회 사역자란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바와 같이 전체 교회를 세우는 은사자들을 말한다. 이러한 은사자들은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도자들, 목자들(목사는 오역), 교사들' 등 다섯 가지 유형의 은사자들이다(엡 4:11). 이 은사자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며 장로들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은사는 지속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에 한 지역 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으로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 교회가 스스로 자립할 정도가 되면, 또 다른 지역으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다.

 

상기의 은사자들 가운데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에베소서 2장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엡 2:20)"라고 쓰인 것처럼, 이들은 기독교의 기초를 놓았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임무는 교회의 기초가 놓이고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끝났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머지 '복음 전도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은 영구적인 은사자들로서 예나 지금이나 순회 사역자들, 즉 선교사들로서 전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은사자들이다(<무질서한 은사주의>, 존 맥아더, 부흥과 개혁사, 316쪽).

 

서두에 언급했듯이 사도행전 13장에 안디옥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제1차 선교 여행을 위해 타 지역으로 파송하였다(행 13:2). 그 후에도 그들은 다른 동역자들과 선교 여행을 제2, 3차로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지역 교회가 세워졌으며, 그 후 이들은 그 모임들을 재방문하여 성도들을 굳건히 해 주고 격려해 주었고, 또 지역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장로들을 임명했다(행 14:23). 선교 여행 기간 동안 사도들과 그 동역자들은 때로는 자비량했고(행 18:3), 때로는 교회와 개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빌 4:10).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필요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동역자들을 위해서 일했다(행 20:34). 그들은 비록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 교회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지역 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을지라도 지역 교회의 통제는 받지 않았다. 선교 여행을 마쳤을 때 그들은 자신을 파송한 지역 교회로 돌아와 주님께서 선교지에서 자신들을 통해 일하신 내용을 보고하였다(행 14:26, 18:22). 이 같은 원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지역 교회가 따라야 할 선교 사역의 훌륭한 모본이 된다(<사도행전 강해>, 윌리암 맥도날드, 전도출판사, 209쪽).

 

상술한 바와 같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신약성경에 기초를 둔 교회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교회 개척 원리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새로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려면 성경적인 방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복음 전도자나 교사나 목자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지역 교회의 파송을 받아 동역자들과 함께 새로운 지역에 복음을 전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 후 새 신자들을 돌보고 교회의 교리를 가르치고, 후에 장로들이 생겨날 때쯤이면 이 순회 사역자들은 또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떠난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방식이 안디옥 교회의 모델이며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은사자들의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술한 내용들을 선교와 관련하여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1) 선교사는 지역 교회에서 파송한다.

 

(2) 선교사는 복음 전도자, 목자, 교사의 은사를 가진 자라야 한다.

 

(3)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고 장로들을 세운다.

 

(4)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한 후 정착하지 않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5) 선교사는 파송한 교회로 돌아온 후 선교 보고를 한 뒤 또 떠난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선교 대국으로, 세계 약 170 개국에 약 2만 2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파송 교단으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세계선교부와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선교국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해외선교회 등이 있다. 또한 파송 단체로는 한국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와 국제대학선교협의회(CMI)와 예수전도단(YWAM)과 대학생 선교회(CCC)와 네비게이토 선교회(Navigators) 등 100개 이상의 단체가 있다. 이처럼 국내에는 수많은 선교 단체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단체에서 외국에 선교사를 파송한다(<크리스천투데이>, 2011.9.7).

 

여기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경적인 선교와 상기의 한국교회와 한국 선교 단체의 비성경적인 선교의 차이점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5가지를 대조하며 살펴보자.

 

(1) 선교사는 지역 교회에서 파송한다.

 

신약성경에서 안디옥교회는 1세기에 로마 최대의 국도(國道)상의 시리아의 안디옥에 있는 지역 교회였다. 이 교회에는 최소한 5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인 바울과 바나바가 지역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고 선교 여행을 떠났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이러한 성경의 모본을 따라 지역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는 것이 성경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의 선교사들은 지역 교회의 파송을 받고 선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상술했듯이 자기네 교회 교단의 선교부나 선교회를 통하거나 혹은 교회가 아닌 선교 단체 등을 통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지 않는 어떠한 교단이나 선교 단체 등도 비성경적인 집단이므로 이러한 단체를 통해 선교사를 파송해서는 안 되며, 성경적인 지역 교회를 통해 파송하는 것이 성경적인 방식인 것이다.

 

(2) 선교사는 복음 전도자, 목자, 교사의 은사를 가진 자라야 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 개척을 위한 사람들(복음 전도자, 목자, 교사)을 은사자들로 부르셨다. 그리하여 복음 전도자들은 복음을 전해 구원받은 자들을 지역 교회로 인도하고, 목자는 그들을 돌보며, 교사는 그들에게 성경의 교리를 가르친다. 이러한 은사를 주신 분은 승천하신 예수님이다(엡 4:8~11).

 

그러나 오늘날 국내의 선교사들은 교회 교단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고시를 합격한 자들 중에 선교 목사의 칭호를 부여하여 교단의 총회에서 자격을 준다. 그리고 교회 교단이 아닌 선교 단체들은 성직자인 목사가 아닌 일반 신자들 중에서 선교 훈련을 시켜, 소위 평신도 선교사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지 않는 교단 신학교나 선교 단체의 훈련원 등은 비성경적인 기관이므로 이러한 기관이나 훈련원을 통해 선교사를 만들어서는 안 되며, 예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고 지역 교회의 인도자들(교사나 장로들)에게 인정받은 자들이라야 성경적인 은사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고 장로들을 세운다.

 

사도행전 14장에 "두 사도는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선임하고(행 14:23)"라고 쓰여 있다. 이처럼 바울과 바나바의 두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고 나서 장로들을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이방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받게 한 뒤 신자들의 모임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이지 교회당을 짓거나 마련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교단 총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은 교회 개척을 교회당부터 짓거나 마련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국내 교회들도 초창기부터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당부터 먼저 마련하고 나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을 우선시해 왔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선교 단체의 평신도 선교사들은 교회의 진리를 제대로 몰라 복음을 전하고 나서 그들을 제자 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지역 모임을 이루게 하고 장로를 세우는 것과는 무관한 단체에 불과하다.

 

(4)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한 후 정착하지 않고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성경에 나오는 선교사들인 순회 사역자들은 교회를 개척한 후에 한평생 그곳에 뼈를 묻기 위해 정착하지 않고, 또 다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계속 떠났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교회 개척을 위한 은사자들로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은사자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교단 총회에서 파송된 선교 목사들은 계속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순회 사역을 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무르기 일쑤다. 그리고 국내 목사들도 대부분 혼자서 고생고생하며 교회 개척을 하면서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목숨을 건다. 하지만 요즘은 교회 개척이 쉽지 않아 십중팔구 실패하여 문을 닫는 실정이다. 외국 선교도 국내와 상황이 비슷하여 미국에만 지금도 만 명 정도의 한국인 목사와 전도사가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아버지와 아들>, 옥성호, 부흥과개혁사, 104쪽).

 

(5) 선교사는 파송한 교회로 돌아온 후 선교 보고를 한 뒤 또 떠난다.

 

성경에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을 마친 후에는 그들을 파송한 지역 교회로 되돌아와 선교지에서 행한 사역들의 내용을 보고했음을 알 수 있다(행 14:26, 18:22). 이처럼 교회 개척은 반드시 지역 교회의 파송을 받아야 하며, 또한 그 결과를 파송받은 지역 교회에 돌아와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교단에서 파송받은 선교사들은 성경에 나오는 모본대로 자신들의 지역교회에 돌아와 선교 보고를 한 뒤 또 다른 타국으로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교회가 아닌 선교 단체에서 파송받은 평신도 선교사들은 지역 교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과는 거리가 먼 집단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 교회와 선교 단체의 선교와 관련된 여러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럼 이제 국내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행하고 있는, 이른바 '제자 훈련'에 대해 알아보자. 거기에 앞서 먼저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르치는 자(롬 12:7)' 곧 '교사(행 13:1, 고전 12:28, 엡 4:11)'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자.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교회에는 교사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교사인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교사였다. 지역 교회에서 교사의 은사는 신자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가르치고 또 교회의 교리(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지역 교회의 교사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고, 에베소서 4장에서는 전체 교회를 개척하는 은사자로서의 교사를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로마서 12장에서는 교사의 은사를 가르치는 자의 은사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는 지역 교회에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고 또 교회의 교리를 올바로 가르치는 교사의 은사자가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지역 교회에는 이러한 교사의 은사자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 2장에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고 쓰여 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교사의 은사를 가진 디모데에게 신자들을 가르칠 것을 명하고 있다. 교사의 은사자들은 지역 교회에서 공적인 말씀 집회에서 교회 진리를 가르치며, 또한 상기처럼 별도로 신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교사의 은사를 가진 신뢰할 만한 자들에게 자신이 가르친 교회의 진리를 맡기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 교회에는 교사의 은사자가 아닌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다. 장로와 집사는 은사(자)가 아니라 직분(자)이다(빌 1:1). 지역 교회에서 신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은 교사들 외에 또 장로들이 있다. 장로들의 자격에서도 "장로는 가르치기를 잘하고(딤전 3:2)"라고 쓰여 있고, 또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장로들을 존경하라(딤전 5:17)"고 쓰여 있다. 이처럼 장로들 역시 교사들처럼 신자들에게 공적인 말씀 집회에서 성경과 교회의 교리(진리)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상술한 것처럼 성경에 지역 교회에서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교사들과 교회의 직분자인 장로들이 성도들에게 성경의 내용과 교리를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은 공적인 말씀 집회 외에 또 디모데와 같은 교사를 통해 별도의 신실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르침(딤후 2:2)일 수도 있다.

 

한편, 마태복음 28장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쓰여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으로서 제자들에게 주신 교회의 사명이다. 이 말씀에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라'는 말씀은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침례를 주라'는 말씀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라는 말씀이다(<교회에 관한 진리와 원칙들>, 프랭클린 퍼거슨, 전도출판사, 32쪽).

 

상기한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초기 교회의 사도들와 선지자들과 복음 전도자들과 목자들과 교사들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즉시 침례를 행하고 모임으로 인도하여 교회의 교리를 가르쳤다. 또한 마가복음 16장에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함을 받으리라(막 16:15~16)"고 쓰여 있다.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은 자들에게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다.

 

상술한 내용들을 "가르치는 자의 은사, 즉 교사의 은사"와 관련하여 요약해 보자.

 

(요약) "지역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성경과 교회의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가르치는 자의 은사를 가진 교사의 은사자들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에는 수많은 선교 단체에서 '제자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개신교회에서도 선교 단체처럼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사의 은사'와 오늘날 국내의 선교 단체나 개신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비성경적인 '제자 훈련'과의 차이점에 대해 위에서 요약한 내용을 대조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안디옥교회에서 신자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행 13:1). 사도바울과 함께 동역자로 일했던 디모데도 교회 개척을 위한 순회 사역자였으며, 교사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딤후 2:2). 이러한 교사들은 지역 교회에서 신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의 선교 단체나 개신교회들은 상기와 같이 교사의 은사자들이 지역 교회에서 단순히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이를테면 소위 '제자 훈련'이라는 것을 행하고 있다. 그럼 이제 국내의 선교 단체와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제자 훈련'에 대해 그 유래와 또 그들이 내세우는 성경적인 근거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제자 훈련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자.

 

한국의 개신교회는 1960년에 들어서면서 크게 성장했고, 그와 함께 늘어난 기독 청년들은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초교파적 성격을 띤 대학생 선교 단체가 많이 생겨났다. 그러한 단체들은 성경 공부, 개인 전도, 제자 훈련 등과 같은 프로그램에 폭발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많은 청년에게 큰 도움과 도전을 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초교파 학생 선교 단체가 한국교회 안에서 그 위상을 갖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일부 학생 단체들은 그들이 전도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 힘들게 되자 스스로 주일 공동체의 역할까지 겸하게 되면서, 기존 교회와 갈등 관계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대학생 선교 단체가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끼친 영향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학생 선교 단체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대학가의 관심사가 취업, 성공 등으로 바뀌었고, 진리에 대한 탐구나 학문성 성취보다는 상업주의와 쾌락주의의 실험장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학생 선교 단체들이 차츰 영향력을 잃어 가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도 이전에 대학생 선교 단체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많은 프로그램들이 교회로 이전되면서, 기존의 기독 청년들이 굳이 대학생 선교 단체의 모임에 가야 할 매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최근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반성과 평가를 한 대학생 선교 단체들은 다시 새로운 사역 패러다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전도한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부분은 일반 교회 청년부가 전략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인데, 대학생 선교 단체들이 활약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기독신문>, 2008.7.15).

 

상기와 같이 오늘날 대학생 선교 단체들과 수많은 교회는 소그룹 모임을 지칭하는, 이른바 '순(筍)이나 셀(cell)'같은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제자 훈련'을 실행하고 있다. 제자 훈련이란 선교 단체의 지도자나 교회의 목사가 소수의 신실한 자들을 가르치며 훈련시켜 제자로 삼고, 또 제자 된 그들이 나중에 소그룹의 순장이나 목자가 되어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제자 훈련'이란 그 집단(선교 단체든 교회든)에 적합한 사람을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니, 예수님의 제자니, 작은 예수니' 하는 말들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일 뿐이다. 어느 단체나 교회든지 그 조직을 이끌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내세운 목표에 맞춘 사람을 양성하기 마련이다. 상기와 같이 제자 훈련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제자 훈련은 적지 않은 문제점과 부작용이 드러났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알아보자.

 

다음으로 국내의 선교 단체와 교회들이 주장하는 제자 훈련의 성경적인 근거에 대해 살펴보자.

 

이들은 제자 훈련의 근거를 특히 예수님의 지상 명령인 마태복음 28장과 디모데후서 2장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마태복음 28장부터 살펴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라고 쓰인 말씀이 그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명령했으니 우리도 신자들을 상대로 '제자 훈련'을 시키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어 성경을 오역함으로써 발생한 그릇된 주장이다. 그러니까 국내의 킹제임스 성경 번역본들 외의 성경들, 이를테면 한글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 표준새번역, 현대인의성경, 공동번역성서 등은 모두 마태복음 28장 19절을 오역한 성경들이다. 단지 킹제임스 영어성경만이 '헬라어 원어성경'을 올바로 번역했다. 그리하여 국내의 한글 킹제임스성경 가운데 세 종류의 성경인, 한글킹제임스성경(말씀보존학회, 1994),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그리스도예수안에, 2000), KJV성경전서(한국킹제임스성서협회, 2008)는 킹제임스 영어성경과 같이 올바르게 번역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헬라어 원어성경(마태복음 28:19)

 

"poreuqevnte" ou\n maqhteuvsate pavnta ta; e[qnh, baptivzonte" aujtou;" eij" to; o[noma tou' patro;" kai; tou' uiJou' kai; tou' aJgivou pneuvmato."

 

킹제임스 영어성경(마태복음 28:19)

 

"Go ye therefore, and teach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한글킹제임스성경, 킹제임스 흠정역성경, KJV성경전서(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상기의 성경들은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로 쓰인 것처럼 '제자로 삼아'가 아니라, '가르치고'로 번역했다.

 

그러나 나머지 국내 성경들, 즉 한글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 표준새번역, 현대인의성경, 공동번역성서 등은 모두 마태복음 28장 19절을 오역했는데 다음과 같다.

 

한글개역성경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개역개정성경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현대인의성경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상기의 성경들은 모두 '가르치고'로 번역하지 않고 '제자로 삼아'로 오역했다. 그러므로 이들 성경은 헬라어 원어성경을 제대로 번역한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따르지 않고, 변개된 영어 성경인, 영어 개역본 RV, 새미국표준역본, 새국제표준역본 NIV 등의 성경을 번역한 것들이다. 예컨대 새국제표준역본 NIV는 다음과 같이 오역하였다.

 

새국제표준역본 NIV -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상기에서 새국제표준역본 NIV는 'make disciples(제자를 삼고)'라고 오역하였다. 그리하여 국내의 대부분의 한글 성경들도 새국제표준역본과 같은, 변개된 영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제자를 삼고(make disciples)'라고 번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상술했듯이 헬라어 원문성경을, 'make disciples(제자를 삼고)'라고 오역하지 않고, 올바로 'teach(가르치고)'라고 번역하였다(<교회에 관한 진리와 원칙들>, 32쪽 /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2010년 7월호, 13쪽). 그리고 이 같은 내용의 표현은 사도행전 14장 21절에도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사도행전 14장 21절도, 국내 한글 킹제임스 성경 외에, 한글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 현대인의 성경 등 한글 번역본들은 모두 다 "복음을 그 성에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 14:21)"라고 오역하였다. 그러나 한글 킹제임스 성경들은 모두 "그 도시에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행 14:21)"로 올바로 번역하였다.

 

다음으로 디모데후서 2장에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고 쓰여 있다. 국내의 선교 단체와 교회들은 이 말씀에 근거해서도 '제자 훈련'을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내용은 사도바울이 교사의 은사를 가진 디모데에게, 지역 교회 내에서 교사의 은사가 보이는 신실한 신도들을 대상으로 교회의 교리를 가르치고 맡길 것을 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선교 단체들은 지역 교회가 아니며, 바울과 디모데와 같이 교사의 은사를 가진 자가 아닌 그 단체의 지도자나 리더가 가르치며, 교회에서도 성경적인 교사의 은사자가 아닌 목사(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에서 에베소서 4장 11절에 나오는 교회를 세우는 은사자 중에 하나인 '목자'를 의도적으로 오역시켜 만든 단어이며, 헬라어 원어인 ποιμην은 목사가 아닌 목자임)가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제자 훈련은 성경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의 여러 교파나 선교 단체에서 행하고 있는 '제자 훈련이라는 용어나 프로그램'이 생겨난 유래와 또 그 근거를 주장하는 성경 구절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약성경에는 지역 교회에서 교사의 은사자들이 신자들에게 교회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 여러 교파나 선교 단체에서 행하는 '제자 훈련'은 비성경적인 것으로서 적지 않은 문제점과 부작용을 야기했는데, 이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국내 선교 단체들의 제자 훈련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부작용들을 살펴보자.

 

(1) 이들 단체의 회원들은 선교 단체의 창시자나 지도자의 사상을 따라간다.

 

(2) 이들은 지역 교회의 생활은 등한시하거나 포기하고 선교 단체에 헌신한다.

 

(3) 이들 선교 단체는 자체적으로 채플을 만들어 기성 교회와 같이 주일예배나 기타 예배를 드린다.

 

(4) 기존 교회의 성찬식과 세례식을 거부하며, 장로와 집사 직분을 인정하지 않으며, 목사라는 말을 혐오한다.

 

(5) 이들은 지도자나 리더에게 일대일로 제자 훈련을 받는다.

 

(6) 이들은 지도자나 리더의 말에 절대 순종함으로써 사람의 종이 된다.

 

(7)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선교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다.

 

다음으로 국내 여러 교파들의 제자 훈련에 관한 문제점과 부작용들을 살펴보자.

 

(1) 기존의 강단 설교 중심과 구역 집회로는 중·대형 교회를 계속 유지해 나가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2) 선교 단체처럼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시행하면 교회의 양적 성장이 활성화된다고 믿는다.

 

(3) 서구의 교회들이 몰락하게 된 원인도 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셀 교회나 가정 교회 등을 만들어 제자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 서울에 있는 사랑의교회가 대학생 선교 단체들과 같은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실행함으로써 평신도 제자화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수만 명의 교인수를 가진 초대형 교회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5) 담임목사가 직접 나서서 자기네 교인들에게 제자 훈련을 시킴으로써 평신도들을 전부 담임목사의 말에 절대 순종하는 제자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국내 선교 단체와 제자 훈련의 문제점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다. 이것들을 정리해 보면, 국내외의 선교 단체들은 지역 교회가 아니며, 성경에 나오지 않는 집단으로서 선교 단체의 창시자들이 자신들의 사상과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든 단체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지역 교회 외에 이러한 비성경적인 집단은 불필요하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파송하는 선교사들도 지역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파송하는 것이 아니라 교단의 총회선교부나 본부선교국 등에서 파송하며, 또 성경적인 은사자인 복음 전도자·목자·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지 않는 선교 목사나 전도사 등을 파송하는 것이므로 이런 것도 선교 단체처럼 성경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자 훈련에 있어, 성경에는 선교 단체의 지도자나 담임목사에 의한 제자 훈련 사역이나 프로그램 등은 나오지 않으며, 성경에는 단지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교사의 은사자가 지역 교회에서 공적으로 또는 신실한 신도들을 대상으로 교회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또 변개된 성경의 오역으로 인해 제자 훈련을 정당화시킨 것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비성경적인 사역이나 프로그램은 국내외 교회를 막론하고 하루속히 사라져야 하며, 안디옥교회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교사의 은사자가 교회의 교리를 신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안디옥교회처럼 5명 정도의 은사자들이 지역 교회를 인도할 경우, 3명의 은사자들이 지역 교회를 맡아 인도할 수 있고, 나머지 두 명의 은사자인 바울과 바나바는 외국 선교를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지역 교회들도 교회 내에 성경적인 은사자인 교사들과 직분자인 장로들을 합해 5명 정도의 인도자들이 있을 경우, 성경에 나오는 모본인 안디옥교회처럼 3명이 남아 지역 교회를 인도하고 나머지 2명은 타 지역에 교회 개척을 위해 파송하는 것이 성경의 모본을 실행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국내의 수많은 교회가 개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그릇된 교회들은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교회를 모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 개척을 위해 타 지역에 은사자들을 파송해야 하며 개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위해 교회 내에 은사자들과 직분자들이 남아돌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교 단체의 회원들은 자신들의 단체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비성경적인 기관임을 인식하고, 성경적인 지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지역 교회 외에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본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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