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서평

‘사역을 시작하는 목회자에게’를 읽고

이창무 2015. 6. 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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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을 시작하는 목회자에게’를 읽고



사도 바울의 서신서 들 중에서 목회 서신이라고 부르는 서신서들이 있다. 디모데 전후선와 디도서가 바로 그것이다. 목회 서신은 사도 바울의 사랑하는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선배 목회자로서 조언과 충고를 담은 서신이다. ‘사역을 시작하는 목회자에게’도 이와 비슷하게 선배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에게 목회에 관한 조언과 충고를 담아 보낸 서신들의 모음집이다. 그런데 바울의 목회 서신서와는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로 바울은 당시 실존하는 인물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서신인 반면에서 이 책에 수신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고 당연히 편지도 정말로 보내졌던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편지의 수신자들이 가상 인물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모두 다 내 주변에서 언제인가 어디선가 보았고 만났던 인물인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현실감이 있다. 또 때로는 편지의 수신자가 처한 상황이나 문제들이 바로 내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나 문제들인데 하면서 무릎을 치면서 흥미를 유발시킨다. 아직 본격적인 목회의 길에 들어서지 않은 나로서는 이 책의 앞부분에 주로 등장하는 목회의 소명에 대한 편지들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목회를 이미 시작하고 좌충우돌하면서 시행 착오를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한 조언들이 많아진다. 물론 충분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일종의 예방 주사를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둘째로 이 책이 바울 서신과 다른 점은 바울의 서신은 성경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기에 당연히 성경의 특별한 영감으로 된 책이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점이 이 책의 가치를 전혀 떨어뜨리지 않는다. 바울의 목회 서신은 그 당시 디모데와 디도가 처했던 삶의 정황이 있었고 거기에 맞추어 서신이 작성되었을 것이다. 그 시점과 오늘의 목회 사이에는 물론 큰 틀에서 공통점과 일치점이 있겠으나 어쩔 수 없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차이점과 불일치점이 발생하는 부분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원리에 입각해서 현대의 상황에 풀어 목회적 권고를 해 주는 이 책의 가치는 신대원에 수학하며 목회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흔한 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고 좋을 수는 없는 법이며 내 나름대로 느꼈던 아쉬움도 몇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아쉬움은 내가 신약의 서신서들을 읽을 때 느꼈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였던 즉 서신서를 둘러 싼 역사적 정황을 추측해 내는 일의 어려움이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느꼈다. 물론 그 어려움의 정도는 이 책에서 훨씬 작은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어떤 편지에서는 수신자가 처한 어려움이나 문제가 무엇인지 알 듯 말 듯 모호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이유가 당연히 내가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아직 경험이 부족한 후배 목회자나 목회 후보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라면 편지 서두 부분에라도 짧은 나레이션으로 수신자가 처한 상황 등을 설명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종종 미국적 상황에 치우친 사례들도 있는 경우 더욱 더 배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사족으로 달아 본다.


이 책이 매우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주제를 통합하는 한 가지 핵심이 되는 주제를 선뜻 제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책을 덮은 후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여러 직업 중 하나의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목회는 직업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여러 가지 조언들은 만약 목회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주업으로 삼는 직장인들에게 했다가는 개념 없는 사람처럼 취급 받게 되기가 쉬울 것이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저자는 한 장에서 목회자의 휴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목회자가 휴가 중에 자기가 교회의 성도 가운데 일이 생긴다면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 저자는 휴가를 당장에 포기하고 당장 그 성도에게 달려가라고 충고한다. 만약 목회가 일반적인 직업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이런 충고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개인주의와 자기 권리에 민감하다는 미국의 목회자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강조점이 있는 것이다. 저자는 목회자는 휴가가 아니라 안식을 얻으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목회자의 삶은 삶의 모든 부분이 신학적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인식은 그의 글 모두에 배어 있다. 목회의 성공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마치 자기 직장이나 사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도 말한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소명이지 직업 선택이 아니라는 것, 목회적 수단을 성경적 영적인 기준에 합당한 것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 등을 강조하는 것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목회자가 목회를 그저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한 정도로 이해한다면 목회의 영광스러운 소명을 스스로 깎아 내리고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목회에는 보이는 것 이상이 있다. 보이는 것은 빙산의 솟아나온 작은 봉우리에 불과한 것이다. 참 목회의 보이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의 엄청난 크기와 깊이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초보 목회자가 보지 못하고 잘못 생각하거나 실수하는 부분들이 바로 그 수면 아래 잠긴 실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거기에는 성경과 신학과 경건이 있다.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공부가 과연 목회에 필요한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는 신대원 공부 없이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역사 속에는 스펄젼이나 로이드 존스 목사님 같이 신학교를 거치지 않은 훌륭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신학교의 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이지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신학교 과정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독서를 통해 깊이와 넓이를 확보했기 때문에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신학 공부 중에는 과연 이것을 배운다고 내가 목회에 직접 쓸모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닌데 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사실 그런 것들이 목회에서 중요한 것들이라는 배울 수 있었다. 목회자로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목회자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신학적인 관점을 잃지 않기 위해 그런 준비 과정과 공부가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과제와 시험으로 눌리고 불평하려고 하던 차에 또 다시 과제를 하려고 이 책을 들었으나 책을 덮고 나니 과제 때문이 아니라 내가 주께 쓰임 받는 목회지로 준비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불평 대신 감사를 주님께 올려 드릴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런 좋은 책을 소개해 주시면 김경진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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