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창무 2022. 10. 31. 18:04
반응형

2022년 가을 수양회 주제 강의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말씀 / 시편 84:1-12
요절 / 시편 84: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행복의 조건으로 꼽은 것의 1위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2위는 ‘건강하게 사는 것’, 3위는 ‘돈과 명성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들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부의 조건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고 근원적인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시편 84년은 성전에 사는 자의 복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고라 자손의 시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울며 피난길에 올랐던 때에 지은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에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전 예배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잃은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이었나 깨달은 시인의 고백으로,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지난 3년 가까이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 없이 숨 쉬는 것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고, 목소리 높여 마음껏 찬양하는 것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으며, 성전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우리가 자유롭게 드리는 예배의 소중함과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은 자들인가 깨달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 

하나님의 백성이 만군의 여호와를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서 하나님을 만날 곳을 지정하셨습니다. 그곳은 언약궤가 있는 주의 장막입니다(출5:22). 하지만, 시인은 지금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피난길에 오를 때 다윗과 같이 성전을 떠났고, 지금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버티고 있어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그리워하며 마음속에 주의 장막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원어로 ‘물을 끓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물이 끓는 것을 보면 용솟음치는 열망이 떠오릅니다. 그 정도로 시인은 주의 장막을 간절하게 그리워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2)”

시인은 하나님의 전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내 마음과 육체와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힘을 다해 사랑한 나머지 기력을 다 소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궁정을 너무 사모하여 상사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궁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너무 힘이 듭니다. 탄식하며 몸과 마음이 여호와의 궁정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3)”

시인은 내가 만난 나의 하나님, 주의 제단에서 나의 죄를 모두 사하신 그 하나님이 계신 곳,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갈 수 없어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 제단에서 하찮은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습니다. 시인은 이 참새와 제비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내가 참새와 제비가 되어 주의 제단에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가 새삼 알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4)”

그는 주의 장막에서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보니, 주의 집 사는 자들이 얼마나 복 받은 자인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주의 집에 사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참새와 제비와 같이 성전에 가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일까요? 우리 안암 센터 옥상에서는 태양광이 있어 집을 짓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의 집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고라 자손이 성가대가 되어 하나님께 이 시편 84편을 찬양으로 올려드렸듯이 목소리 높여 하나님께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게 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기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주의 집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성도 간에 교제하는 것입니다. 서로 반갑게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봐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며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같이 음식을 나누며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어려움이 있는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위로하며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넘치는 교회, 서로를 돌아보는 아름다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집에 살 때 천성을 향해 가다가 험한 길을 만나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동역자가 있기에 능히 이겨내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2년 이상 코로나19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성전에 모일 수가 없었습니다. 줌으로 드릴 때는 찬송 없이 예배도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같이 부를 수 없었습니다.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할까 봐 마음껏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줌으로 드리는 예배에도 은혜로운 말씀은 있었지만, 뭔가 2%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마음껏 찬양할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약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희미하고, 성도 간의 교제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중에 서로가 서로를 붙들어 주기가 힘들었습니다. 홀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줌에서 같이 만나나 외로웠고, 힘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빨리 대면 예배가 회복되길 소망하였습니다. 시편 기자가 제단에 사는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하면서 간절히 성전 예배를 사모했듯이 우리도 대면 예배의 회복을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하나님의 전에서 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같이 목소리 높여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사모님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처음 대면 예배와 와서 찬송을 부르는데, 온몸에 전기가 오는 것과 같은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말씀을 현장에서 들으니 가슴 깊이 와 닿았고, 심령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족했던 2%가 채워질 때 느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러너스의 한 형제는 한 주 동안 학교에 다니며 힘들고 지쳐 있다가 성전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은혜로 한 주를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에 와서 러너스들과 교제하고, 같이 찬양하고, 하나님을 역사를 섬기며 피곤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더 큰 힘을 덧입는다고 했습니다. 이 힘으로 다음 한 주를 다시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제야 하나님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사모하고 부르짖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께 더욱 온 마음으로 집중해서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예배를 드려야 함을 깨닫습니다. 저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기를 사모하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영혼 깊은 곳에서 영접하며 경배하고 찬송하기를 기도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복이 있나이다(5)”

‘주께 힘을 얻는다.’는 것은 ‘주님 안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에서 힘을 얻고자 할까요? 어떤 사람은 돈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권력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힘을 얻고자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독수리와 매와 같이 자기의 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새와 제비와 같이 스스로에게는 힘이 없음을 알고, 주님 밖에는 아무 것도 나의 힘이 될 수 없음을 깊이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께 힘을 얻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다는 것은 유월절과 같은 절기에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기 위해 주의 장막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 주일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배의 처소로 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자 하는 자는 예배를 사모하고, 주님께 나가는 것을 소망하고, 갈급한 심령으로 예배드리기 위해 달려갑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시온의 대로를 가진 것 자체가 이미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우리가 시온을 향해 가다가 통과해야 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6)”

시온의 대로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물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누구나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린 시절에 지나기도 하고, 중년에 지나기도 하고, 노년에 지나기도 합니다. 그 종류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건강으로, 어떤 사람은 가족으로, 어떤 사람은 입시와 취업 등으로 인해 눈물 골짜기를 지납니다. 물론 눈물의 양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몇 방울, 어떤 사람은 눈물의 바다에서 헤엄을 쳐야 하고 죽을 것 같은 경지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때 어떤 사람들은 운명의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독수리인 줄 알았는데 참새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주께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 사람에게 눈물 골짜기는 고통스럽지만,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주님께 달려가는 사람으로 빚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가 있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올해 우리에게도 눈물 골짜기를 통과 중인 분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2월에 갑자기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권희 레베카 선교사님 가족은 집과 양들과 친척을 두고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 오셔야 했습니다. 금방 전쟁이 끝나길 기대했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더욱 험악해 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또한 우리 가운데 오래 동안 함께 했던 한 목자님의 갑작스러운 소천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 코로나에 한 번씩 걸려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볍게 지나간 사람도 있지만 어떤 분은 심하게 앓고 그 후에 잔기침 등 후유증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또 한 사모님은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오래 시간 동안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아무리 약을 써도 듣지 않고 아파서 잠도 못 자고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의 긴긴 터널을 지나야 했습니다.

이것 뿐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오랫동안 취업에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습니다. 자녀 문제로 괴로워하는 분, 시험에 대한 부담으로 눌리는 분, 직장에서 사람과의 갈등으로 하루하루가 가시밭길 같은 분 등등 많은 분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눈물 골짜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는 힘든 우리를 위해 많은 샘을 준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다 보면 눈물이 마르고, 잠이 마르고, 입이 마르고, 감정이 마르기도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말씀의 샘을 터뜨려 주십니다. 평상시는 말씀을 들어도 한 쪽 귀로 들어왔다가 다른 쪽 귀로 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면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말씀이 심령 깊이 들어와 나의 살이 되고 힘이 되고 방향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샘에서 힘을 덧입고 조금 걸어가다가 다시 힘들 때가 되면, 이제는 기도의 샘을 터뜨려 주십니다. 너무 괴로워 잠을 이룰 수 없어, 일찍 깨어 주의 전에 달려가 엎드리면 주님은 그 기도를 통해 나와 씨름해 주시고, 나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시고 위로하여 주십니다. 희미하게 보이던 주의 뜻을 알게 하시고, 말씀을 가리던 안개가 걷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보게 하십니다.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또 조금 가다가 힘이 빠지면 이제는 사랑의 샘을 터뜨려 주십니다. 동역자님들이나 가족들의 기도 지원과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통해 사랑과 관심을 체험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느끼게 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른 비, 성령님을 보내 주십니다. 팔레스타인의 여름은 뜨겁고 건조합니다. 대지가 바싹 바르게 됩니다.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다가 이른 비인 가을비가 내리면 메마른 대지가 촉촉이 적셔지고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를 통해 식물도 살고 동물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든 메마른 시기를 지날 때, 이른 비를 내려서 우리의 마음을 적셔주십니다. 광야 길을 갈 때, 성령으로 동행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여 탄식할 때도 친히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여 주십니다.(롬8:26) 우리의 심령을 성령의 단비로 적셔주시고 다시금 살아갈 힘을 주시며,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대지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올해 누가복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의 샘에서 생명과 은혜를 퍼올리게 하셨습니다. 마태 게루스 목자님의 대장 종양을 발견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낫게 해 주셨습니다. 전쟁 덕분에 오히려 조기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통증 가운데 고통하던 사모님도 기도 덕분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샘이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는 길에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또 여름 수양회를 통해서 더욱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열 아홉의 소감을 통해서 또 여섯 분의 메시지를 통해서 새 힘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단비와 같이 메마른 우리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시지 않고, 눈물 골짜기를 지날 때, 많은 샘과 늦은 비를 주셔서, 힘을 얻고 더 얻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하십니다.(7절) 우리의 인생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기쁨으로 만나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우리 중에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분이 있으십니까? 뜨겁고 메마른 광야 길을 가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많은 샘들과 늦은 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힘을 얻고 더 얻으시길 기도합니다. 시온의 대로를 통해 하나님께 나가시고 시온에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8,9)”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 사는 자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나가는 자의 복을 말하고 나니, 다시 그 성전에서의 예배가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서 기름 부으신 자 다윗의 왕위가 회복되게 하시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배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다(10,11)”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보니 다른 곳에서 아무리 잘 지내는 천 날을 보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한 날을 보내는 것이 더 좋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해를 비춰 주셔서 모든 어둠을 물리쳐 주시고,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시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있을 때, 하나님의 품 안에서만 평안히 쉴 수 있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제 결론을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12)”

앞에서 언급한 복 있는 사람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주의 집에 사는 자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의 대로가 있는 자들, 이런 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들은 모두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에게 소망이 없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주께만 소망을 두고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기뻐하십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기꺼이 되어 주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들에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친히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마도 올해는 많이 힘든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세계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고, 물가는 계속 상승 중이며 무역 적자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에 이어 계속 대만 쪽에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내적으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고, 영적으로도 사람들이 완악해져서 이단이 판을 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대놓고 활개를 치는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진리와 구원에 관심이 없고 더욱 더 돈을 사랑하고 인심마저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의 집에서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 견고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천성까지 실족하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안에서 힘을 얻고, 늘 주님께 달려가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눈물 골짜기와 메마른 광야를 지날지라도 주께서 허락하신 많은 샘과 성령의 단비를 체험하며 힘을 얻고 더 얻어 주님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나의 힘이 아닌, 주를 의지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복 있는 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주의 집을 사모하고, 그 집에 사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전에서의 예배를 사모하여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나와 주를 예배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도 간에 교제를 즐거워하고 힘쓰며, 적극적으로 섬기는 가운데 견고한 사랑의 공동체를 내가 앞장서서 이룰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독수리인 척하지 않고 내가 참새임을 인식하고 주를 힘써 의지하는 가운데 독수리 날개 침 같은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복 있는 자의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반응형

'설교 >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안위할 것이 무엇인가  (0) 2022.06.04
묵상하는 자의 복  (0) 2018.05.22
여호와께 감사하라  (1) 2017.11.20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  (0) 2016.12.14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0) 201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