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묵상하는 자의 복

이창무 2018. 5. 22.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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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 자의 복


말씀 / 시편 1:1-6

요절 /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편 말씀은 원문으로 보면 복이 있도다 이 사람은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행복에 겨워 감탄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일까요? 복 있는 사람의 사람의 조건에 대해 시편 기자는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을 하나씩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소극적 측면으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면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을 말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말씀 없이 사는 세속주의자의 삶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세상과 벗하는 삶이 하나님의 원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속주의의 대표적인 양태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돈을 얻기 위해서 악행을 서슴치 않고 일삼습니다. 돈돈돈 하다가 죄인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일단 돈을 벌고 나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탐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세상 사람들 모습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중에도 이런 모습이 들어와 있습니다. 성공하고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을 욕망하며 이런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온갖 꾀를 내고 이모저모를 도모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은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믿는 자는 특별히 세속주의가 내 안에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세상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꾀를 내어 이리 저리 사람들을 속이고 빠르게 보이는 지름길을 가기 위해 반칙을 저지르기도 하고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세상적인 방식에 익숙해 지게 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세속적인 욕망들을 부추기게 됩니다. 나도 저 세상 사람들처럼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에는 그 길을 따르게 됩니다. 물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깊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국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잘한 가십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해야 할 일을 놓쳐버리기 때문입니다. 


둘째 적극적 측면으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오직이라는 표현은 강조의 표현입니다.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날마다 말씀의 꿀맛을 맛보는 삶입니다. 날마다 말씀에서부터 보화를 캐내는 삶입니다. 신앙 생활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한 삶입니다. 이런 즐거움은 어디에서 옵니까? 바로 말씀을 깨달을 때 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한다는 말은 우리 말로 흔히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생각하는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원문의 의미는 중얼중얼 소리를 내며 읽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눈으로 볼 뿐 아니라 소리를 내어 읽으며 이것이 내 귀에 다시 들리게 됩니다. 이렇게 오감이 다 말씀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읽다보면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 과정 중에 말씀 속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이 바로 기쁨의 순간입니다. 그 기쁨을 알기 때문에 더욱 더 말씀 묵상에 힘을 쏟을 동력이 생깁니다. 그 결과 더 큰 기쁨을 깨닫게 되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얻은 즐거움만으로도 우리 삶에 복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3절에 보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형통한다는 말은 번성한다, 번영한다, 발전한다, 열매를 맺는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형통한다니 더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전혀 어려움이 없는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은 더 큰 번성과 열매를 위한 디딤돌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것을 디딤돌로 여기고 감사히 여기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다윗처럼 연전연승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 축복 받은 삶이 됩니다.


그런데 악인의 삶, 세속주의자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4절 악인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인들은 아무리 모양이 그럴듯 해도 결국 겨에 불과합니다. 안에 든 것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쓸모 없어져 불에 던져지는 쭉정이 신세가 되고 맙니다. 6절에 보면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의 삶에 선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반면 6절에서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세속주의자의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즐겁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도 말씀이 없으면 세속주의가 들어옵니다. 갖가지 계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모임이 되고 서로의 욕심과 이해관계 부딛쳐 충돌하여 쨍그랑 깨지는 소리를 내며 시끄럽습니다.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바람 한 번에 모든 것이 날라갑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는 공동체, 말씀을 사랑하는 공동체는 조용한 가운데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고 기쁨이 흐르는 모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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