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나를 안위할 것이 무엇인가

이창무 2022. 6. 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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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기도회

나를 안위할 것이 무엇인가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어제 밤에 한 목자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참 능력이 많은 한 형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허약해서 뭔가 집중해서 일을 하면 그 다음 며칠은 끙끙 않아 누워 버립니다. 뭘 하려고만 하면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그 브레이크 덕분에 지금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쯤 훨훨 날아 먼 나라로 갔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악셀레이터는 없어도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브레이크가 없다면 그런 차를 탈 수 있겠습니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양을 칠 때 목자들은 양을 한 곳에 계속 머무르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양들이 한 곳에서 오래 풀을 먹다 보면 풀 뿌리까지 먹게 되는데 이것이 양의 위를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식으로 다 먹어 치우면 푸른 풀밭이 금방 황무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양을 데리고 이곳 저곳으로 이동시키면서 신선한 풀을 먹이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이동할 때 늘 평탄한 길만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된 위험한 길을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양들이 목자가 알고 있는 안전한 길, 옳은 길로만 가야 합니다. 만약 목자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 모릅니다. 아니면 가시덤불에 걸려 옴짝달싹 하지 못하다가 낙오될 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런 양은 맹수의 아주 좋은 먹이감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목자는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합니다. 지팡이는 끝이 구부린 모양으로 되어 있는 긴 막대기입니다. 막대기는 길이 짧은 곤봉 같은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이 말씀을 배울 때 지팡이는 목자가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 올릴 때, 그리고 막대기는 험한 짐승을 물리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그렇게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끔씩 벌어지는 위급하고 긴급한 상황에서의 용도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평상 시에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지팡이와 막대기의 주된 용도는 따로 있습니다. 목자는 양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지팡이로 바닥을 쳐서 위협을 하거나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막대기로 때려서 바른 길을 가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과 파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럴 때 양은 이유 없이 목자에게 맞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목자가 나에게 왜 이러나? 왜 내가 가려는 길에 브레이크를 거나?’ 싶어 야속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자는 양을 살리고 지키기 위해서 오해를 감수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무사히 빠져나온 후가 되어서야 뒤늦게 양은 목자의 저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살렸구나 하는 것을 깨닫을 지 모릅니다. 아니면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맞은 것만 기억하고 계속 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나를 외부의 위험을 막아주신다는 의미만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잘못된 길을 가거나 위험에 빠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때리기까지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을 쓴 다윗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하는 그것이 사실은 나를 보호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리켜 형벌의 도구라 부르지 않고 나를 안위하시는 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습니다. 온갖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재물이라는 이름의 우상이 마치 행복과 평안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말하여 자기에게 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쾌락의 신은 재미난 일, 짜릿한 일들이 여기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 만족, 자아 성취를 이루는 것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세속주의 인본주의의 음성이 또한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혹에 넋이 나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옳은 길, 진리의 길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질을 쫓다가 인생의 낭떠러지에 추락하게 될 지 모릅니다. 쾌락의 덫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지 모릅니다. 말씀 없이 살다가 열매 없는 인생의 허무에 울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한 사실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주님께서 지팡이를 한 번 쾅 내리치셔서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하십니다. 주의 사람들의 조언이나 들은 말씀을 통해서 책망하시고 경고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움찔 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경고의 음성을 무시하고 자기 길을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께서 막대기를 드십니다. 여러 다양한 사건 사고를 통해 우리가 가려는 길을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대개 양처럼 어리석어서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왜 내가 가려는 길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왜 가로 막으시냐며 항의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입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줍니다.

패망의 길인줄도 모르고 가속 페달만 밟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 브레이크가 나를 살리는 줄도 모르고 원망만 일삼는 어리석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길을 지나는 우리를 안위하시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나를 아프게 하신 것은 결코 미워서가 아니라 생명 주시고자 하는 사랑에 나왔음을 신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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