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골로새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이창무 2021. 1. 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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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년 제 1 강 / 이창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말씀 / 골로새서 1:1-14
요절 / 골로새서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올해 우리는 1, 2월에 골로새서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A.D. 61년 경 로마의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던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거듭 난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골로새부터 로마까지 거리는 1,600 킬로미터 정도였습니다. 에바브라는 이 먼 거리를 달려와서 골로새 교회에 이단 세력이 침투하여 교회를 흔들고 있다는 소식을 바울에게 전했습니다. 이단 세력의 정체는 유대의 율법주의와 헬라의 영지주의가 뒤섞인 혼합주의였습니다. 바울이 이에 대해 답변을 적어서 보낸 서신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두 달 동안 배우게 될 골로새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역시 물질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 등등 다양한 사상들이 마구 뒤섞인 혼합주의가 교회 안에 침투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 신자들도 헷갈려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골로새서를 통해서 시대 정신에 물들지 않은 참된 복음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더 깊이 더 풍성하게 깨닫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2)” 골로새서의 인사말입니다. 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사도 바울과 디모데가 언급되어 있지만 사실상 바울이 다 썼습니다. 디모데를 끼워 준 이유는 디모데가 바울을 이어 차세대 리더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에게 ‘형제들’이라는 친밀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요? 이는 바울이나 골로새 성도들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하늘에 계신 한 아버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비록 얼굴 한 번 본 적조차 없어도 얼마든지 서로 형제 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코로나에 감염된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우리가 파송하지 않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만나 본 적도 없고 얼굴을 전혀 모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한 이유는 우리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역시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골로새 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수시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골로새 성도들을 떠올릴 때마다 바울은 어떤 마음이 먼저 들었을까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3)” 바울은 항상 먼저 감사했습니다. 감사가 앞선 이유가 무엇일까요? 골로새 교회가 완벽하게 훌륭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달려와 상담을 청할 만큼 문제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오로지 이 문제에만 집중했다면 감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핀잔을 주고 탄식부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좋은 점, 훌륭한 점, 긍정적인 면에 먼저 주목했습니다. 여기만 아니라 항상 바울은 어떤 공동체나 사람을 떠올릴 때 긍정적인 면을 보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 점은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워야 할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기 쉽습니다. ‘너는 왜 맨날 그 모양 그 꼴이냐?’ 하면서 타박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급급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공동체나 사람과의 관계성이 깨어지기 쉬습니다. 특히 사람을 돕고자 할 때 먼저 상대방의 훌륭한 점, 좋은 점, 잘 하고 있는 점을 찾아서 언급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마음 문을 열어 부족한 부분도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사람과의 관계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면을 먼저 찾는다는 것은 인간의 부패와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은혜의 역사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골로새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요절 심포지움을 쓰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때 자칫하면 한 해 동안 잘 못한 점, 부족한 점, 실패한 것들만 떠올리며 자책에 빠지기 쉽습니다. 분명히 그런 점들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온통 나쁜 일 밖에 없었다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우리 가운데 이루신 선한 일이 있었습니다. 요절 심포지움을 쓰는 이유는 이 선한 일들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씨를 뿌리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셨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요절 심포지움을 통해 지난 한 해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루신 선한 일들을 발견하고 서로 나눔으로 감사가 충만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4)” 바울의 첫번째 감사 제목은 바로 골로새 성도들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두번째 감사 제목은 그들에게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로 인해 감사가 넘쳤듯이 지난 해 안암1부를 생각하면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지난 해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온 나라가 이 때문에 방역의 위기, 경제의 위기 더 나아가 심리적인 위기까지 겪고 있습니다. 교회도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교회가 마치 집단 감염의 온상처럼 여겨지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전도에 막대한 제약을 받고 있으며 정상적인 예배와 성경 공부와 교제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믿는 사람들도 위축되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안암1부는 거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대면 예배이든 비대면 예배이든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자 힘을 썼습니다. 처음에 낯설기는 했지만 이제는 줌을 비롯한 온라인 도구에 적응하여 성경 공부를 큰 지장 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365일 일용할 양식 하신 분도 예년에 비해 두 배나 늘었고 이번 호 JBF 양식에는 우리 2세들의 글이 세 편이나 실렸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깊이 뿌리내린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가운데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음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터지자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이때 목자님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코로나로 어려움에 처한 선교지를 돕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대륙별 코디네이터 목자님들은 선교사님들과 연락하여 현지 사정을 듣고 기도 제목을 모아 공유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물질과 기도로 도울 수 있었습니다. 질병 가운데 고통받는 선교사님들이나 동역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꾸준히 기도해 오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실제적인 수고와 섬김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각자 자기 코가 석자이지만 성도를 향한 사랑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길, 사랑의 길을 걸어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과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5a)” 믿음과 사랑은 하늘 소망으로부터 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 보면 현실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나누어 주고 퍼주는 인생을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땅에 소망을 둔 사람이 이런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잠깐 동안은 그렇게 살 수 있지만 결국에는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현실적인 유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믿음의 길, 사랑의 길에서 이탈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쌓아 둔 사람은 믿음으로 살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더 큰 상급이 쌓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나누어 주어도 아깝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더 큰 보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우리 안암1부 목자님들이 믿음과 사랑의 길을 갈 수 있는 힘도 바로 이 하늘 소망에서부터 나옵니다. 2020년 우리 사회는 주식 광풍, 부동산 광풍이 몰아쳤었습니다. 만나면 너도 나도 주식과 아파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자님들은 만나서 마태복음 말씀에서 발견한 천국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위의 것을 바라며 하늘에 소망을 쌓고 있는 공동체를 요즘 시대 어디서 쉽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큰 감사 제목입니다.

그러면 이런 믿음, 사랑, 소망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 있을 수 있을까요?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5b)”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들음에서 소망이 나오고 소망에서부터 믿음과 사랑이 나옵니다. 그러면 골로새 성도들이 어떻게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6)” 복음 진리가 골로새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사람들 중에 그 복음을 귀 기울여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첫번째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일입니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복음은 반드시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믿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 소망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발이 없어서 스스로 걸어갈 수 없습니다. 복음 자체에는 입이 없어서 스스로 들려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복음을 들고 가서 전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골로새 교회에서 그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7)” 바로 에바브라였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는 책임감 있는 목자였다는 뜻입니다. 그가 책임감 있는 목자였음을 나타내 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8)” 에바브라는 거짓 사상에 흔들리는 골로새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1,600 킬로미터를 달려와 바울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투철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이런 에바브라 목자가 믿음직스럽게 서 있었기 때문에 골로새 교회에 믿음, 사랑, 소망의 열매가 맺힐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이 자라서 믿음, 사랑, 소망의 열매가 맺히게 된 것 역시 그 뒤에 책임감 있는 목자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모님이 먼 곳에 집이 있는 양을 매주 찾아가서 말씀 공부를 해 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목자님은 양이 몇 번씩 시간을 옮겨도 묵묵히 다 들어주면서 어떻게 하든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주 2세 교육을 섬기시는 교사 목자님들의 수고, 각 요회의 요회 목자님들과 부장단 목자님들의 헌신, 사모님들의 기도와 섬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우리 가운데 복음이 자라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2020년은 러너스 가운데도 이런 책임감 있는 목자들이 성장했던 한 해였습니다. 지난 해 러너스는 러너스 찬양팀인 하이예스가 출범했다는 것과 오후 3시에 러너스 독립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 이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가지 다 꾸준히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각 팀마다 러너스 리더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섬겨주었습니다. 또 후배들을 얼마나 잘 챙겨주는지 옆에서 볼 때 제가 다 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에바브라와 같이 책임감 있는 복음의 일꾼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계시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복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골로새 교회에는 부족한 점, 아쉬운 점이 없었을까요?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바울의 기도 제목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9-12)” 바울의 이 기도 제목에는 복음이 어떻게 성장해서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우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성장의 출발점입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를 위협했던 혼합주의 이단은 율법적인 행위와 신비적인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위와 체험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경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율법적 행위와 신비한 체험에 치중하게 되면 신앙이 병들기 쉽습니다. 병든 신앙에서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 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행에 힘쓰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는 것에 기초해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다 보면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는 내면이 강해져서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면 어떻게 됩니까? 이에 대해 용비어천가 서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아지고 열매가 많아지니” 뿌리 깊은 나무의 특징은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내적으로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풍파가 몰아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잠시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복음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한 사람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외적으로는 점점 더 부드러워지는데 내면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점점 더 강해집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어떤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도 결코 내적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묵묵히 참고 견디어 냅니다. 이 모습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성도의 기업 즉 하나님 나라를 받기에 합당한 모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흑암의 권세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13a).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13b).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14).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신분 세탁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속은 이렇게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바뀌었지만 아직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바뀌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로 빚어 가십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은 뿌리 깊은 나무의 모습입니다.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제목은 2021년을 막 시작한 우리들에게도 우리가 어떤 기도 제목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어떤 내적인 방향을 가지고 한 해를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는 시사점이 큽니다. 
첫째, 올해 우리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우리 안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기본적인 성경 공부는 물론이요 교리나 교회사 공부 등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더욱 풍성하게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르게 알고 또 행하는 것이 성장과 성숙의 지름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내면이 강해져서 견디고 오래 참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1년 우리 앞에 무슨 일들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난 해 코로나로 충분히 괴로웠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코로나보다 더한 것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없애 주는 대신 그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코로나를 통과하면서 그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그 능력으로 2021년에도 함께 모든 환란과 어려움 속에서 인내하며 승리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복음에 깊이 뿌리내서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2021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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