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예배와 설교

설날 가정 예배 샘플 (2)

이창무 2017. 1. 2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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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날 가정예배 순서.hwp



설날 가정예배 순서


묵상기도 다 같 이


신앙고백 사도신경 다 같 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찬송552장(통358장) 다 같 이

1.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 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2.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 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3. 한번가면 안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4. 밤 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후렴)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아멘


기 도 가 족 중


성경봉독 슥8:19 인 도 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말 씀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리니" 인도자(읽기)


나 눔 새해 소망을 나누는 시간 다 같 이


가족을 위한 기도 다 같 이


찬 송 428.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구)488장] 다같이


1.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이 빛 더 빛나네

2.내 영혼에 노래 있으니 주 찬양 합니다 주 귀를 기울이시사 다 듣고 계시네

3.내 영혼에 봄날되어서 주 함께 하실때 그 평화 내게 깃들고 주은혜 꽃피네

4.내 영혼에 희락이 있고 큰 소망 넘치네 주 예수 복을 주시고 또 내려 주시네

[후렴] 주의 영광 빛난 광채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때 나의 영혼 기쁘다


주기도문 다 같 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리니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견해 중 하나가 기독교는 금욕적인 종교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독교는 금욕적인 종교입니까? 아닙니까?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천국에 가려고 이 땅에서 재미 없고 따분하고 지루한 삶을 견뎌내는 것입니까? 사실 이런 생각처럼 기독교에 대한 큰 오해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창세기 2 장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가 기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놀라게 됩니다. 복음서를 읽어 보면 금욕적인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수님과의 논쟁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이 논쟁들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금욕주의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명절하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십니까? 짜증나는 교통 체증이 떠오르십니까? 친척들끼리 모여 치는 고스톱이 생각나십니까? 이런 것들은 다 곁가지일 뿐이고 명절의 본질은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날입니다. 명절이 즐거운 이유 중에 하나가 명절에나 먹어 보게 되는 맛난 음식들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한 가지 별명을 얻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별명은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 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잔치가 열렸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첫번째 기적을 행하신 장소가 흥겨운 혼인 잔치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다 떨어져 망할 뻔 했던 잔치집에서 물을 포도주를 변화시켜 주셔서 더욱 큰 즐거움과 기쁨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그 즉시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살진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임금이 베푸는 황태자의 혼인 잔치와 같다고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 없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잔치집입니다. 설날 아침보다 더 흥겨운 곳입니다. 기독교는 기쁨과 희락과 즐거움입니다. 기쁨이 없는 기독교는 가짜 기독교입니다. 근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기독교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절간의 분위기는 아주 조용하고 고요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배는 전혀 다릅니다. 노래하고 찬송하고 격려하고 축복하고 먹고 마시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구원의 기쁨을 다 함께 모여 나누고 경축하는 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를 맞기에 앞서서 넷째, 다섯째, 일곱째, 열째 달의 금식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에도 금식 혹은 단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금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다이어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 때문에 부득이하게 금식합니다. 수술을 받기 직전이나 건강검진을 앞두고 금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억울하고 분한 일을 만났을 때 항의의 표시로 금식을 합니다. 소위 말하는 단식 농성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당시 유다 족속들은 왜 금식을 했을까요?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를 하다가 징계를 받아 현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금식은 다이어트 때문도 아니고 건강 때문도 아니고 항의의 표시도 아니고 바로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여 생겨난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마음 껏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반드시 나의 죄에 대한 자각과 그로 인한 깊은 슬픔을 느끼는 기간 즉 금식의 기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부패함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길 수 밖에 없는 경건한 슬픔의 시기를 거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진지하게 제대로 공부한다면 누구나 반드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밥맛을 잃어 버려 금식할 정도로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일이 아닐 뿐더라 반드시 이런 슬픔을 느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은 이런 깊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이 되게 하십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옵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죄가 모두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우리의 금식이 흥겨운 잔치로 변합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며 절망이 희망이 되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지난 한 해 있었던 좋지 않은 일들로 인해 의기소침해 계십니까? 자신에게 실망하여 깊은 어두움에 빠져 계십니까? 이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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