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사도행전 제 2 강 / 이창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말씀 / 사도행전 1:12-26
요절 / 사도행전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새로운 일을 준비할 때 우리는 종종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죠. 어떤 분은 칼같이 계획표를 작성하고, 또 어떤 분은 필요한 도구와 자원을 챙기며 발 빠르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까지 어떤 준비를 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성령께서 쓰시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한마음으로 기도에 힘쓰는 공동체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제자들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세상을 향한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았지만, 육체적으로 더 이상 자신들 곁에 계시지 않는 예수님을 떠올리며 불안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의 환경은 적대적이었고,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너무나 커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12)
하지만 제자들은 의심하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정말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하고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절대적인 신뢰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을 지체없이 따랐던 것입니다.
그때 열 한 제자와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의 아우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 숫자가 12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했습니까?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14b-15a)
그들은 모여서 대책회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니 이제 누가 회장을 할 것인가? 투표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게 불안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남녀노소, 출신과 배경을 불문하고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때 그들이 왜 다 함께 모여서 합심하여 기도했을까요? 제자들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고백을 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한마음으로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2023년 미국에서는 켄터키 주에 있는 작은 기독교대학 Asbury 대학교 캠퍼스에서 부흥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부흥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CNN, FOX news 등 미국의 주요 방송사까지 와서 취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흥의 역사에 이면에는 바로 합심 기도가 있었습니다. 부흥 운동 일어나기 수년 전부터 골판지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글을 써서 몸에 붙이고 대학 주변에서 전도하고 기도했던 한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월 8일 수요예배가 끝난 후, 19명의 학생들이 남아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그렇게 조용히 모여서 기도하며 찬송하는 가운데 부흥의 불길이 점점 번져 나갔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합심 기도를 기뻐하시고 강력한 성령의 임재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우리 UBF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 선배 동역자들은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둘러앉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모인 분들 중에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나님, 저희가 시작은 했는데, 과연 진짜 이게 될까요?'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될까?'가 아니라 '되었구나!'로 바뀌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기도는 뜨거운 부흥을 일으켰고, 복음의 씨앗이 국내외로 퍼져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드리는 작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 그곳엔 정말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다"고 하신 약속처럼, 우리가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혼자선 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도, 동역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짐을 나눌 때 기대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작년에 오셨던 LA 김한나 선교사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 뒤에는 세리토스 UBF 선교사님들의 매일 합심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에서도 연합된 기도는 정말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혼자서는 흔들릴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로 기도하며 믿음을 세울 때 어둠의 세력도 물러갑니다. 이렇게 함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군사들이 손을 맞잡고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모임에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제 마음 속에 오래 기억에 남은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하나는 2014년 전국학사수양회에서 목자님들이 잔디밭 위에 삼삼오오 모여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2010년 어느날 마리아 기도 모임 때 합심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엄마 등 위에 올라타 있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뛰어넘는 힘과 지혜를 주시고, 우리 공동체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겁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처럼 우리도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2025년 성령의 새롭고 강력한 역사를 기대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공동체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던 자리에서 베드로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15b-16)
바로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의 문제였습니다. 유다의 배신은 제자들의 마음에 깊은 충격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선택받아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신뢰를 받아 돈궤까지 맡았던 그가 배반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제자들은 누구도 유다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고, 그 선택은 제자들에게 깊은 배신감과 혼란을 남겼습니다. ‘유다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왜 그를 제자로 택하셨을까?’ 이 문제는 단지 유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선택에도 실수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제자들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이 성령의 역사를 담을 그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기도 하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 앞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중 하나였던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이 이미 예언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다의 배신을 단순히 슬프고 불행한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사건임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20)
베드로는 단순히 배신자 유다를 비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실현되었다는 것, 더 나아가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가 다시 건강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자들은 말씀을 통해 다시금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베드로가 달려졌어요!”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잠시 시험에 빠졌다가 돌아와서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잠시 시험에 빠져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한량 없으신 은혜와 사랑 덕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제 베드로는 주님의 예고대로 흔들리던 형제들을 굳게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말씀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에 형제들을 말씀으로 회복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걸 보면 우리도 상처나 아픔을 그냥 덮어두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대로 마주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상처가 생기기 쉽습니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그렇습니다.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오해나 다툼이 생기고, 무심한 말이나 행동이 큰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교회에 사랑과 용서를 기대하며 오지만, 인간적인 부족함이 드러날 때 실망하거나 혼란을 겪습니다. 특히 리더나 목자가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 그 충격은 더 큽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 어디서나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자칫 하면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에 몰두하거나,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영적 침체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공동체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단순히 위로를 넘어, 우리를 치유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베드로와 초대교회가 유다의 배반이라는 아픔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 속에서 우리의 상처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고난이나 갈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해석되고 치유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붙들 때, 우리의 마음은 새로워지고 공동체는 더 강해질 겁니다.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통해 상처를 이겨내고, 그 후에 일어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합시다!
3.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공동체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떠난 자리, 그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초기 교회에 정말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열두 사도의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유다를 대신할 새로운 사도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아주 신중히 움직였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21-22)
제자들은 먼저 사도가 될 조건을 정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했으며, 그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이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이 하신 일과 그분의 말씀을, 특히 부활을 확실히 전할 수 있는 증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 제자들은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후보로 추천한 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24b-25a)
이 기도에는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비를 뽑아 제자들은 맛디아를 사도로 세웠습니다. 이 과정은 결과를 운에 맡긴 게 아닙니다. 제자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맛디아가 사도로 세워졌고,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다시 힘차게 사역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 삶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인간적인 지혜나 방법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판단으로 리더를 세울 때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장 준수한 자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삼상9:2). 그는 키가 크고 외모가 뛰어나 사람들 눈에는 완벽한 왕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왕위를 거두시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반면, 한국 교회 초창기에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이야기는 좋은 본보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북 김제의 부유한 지주였던 조덕삼은 자신의 머슴으로 일하던 이자익과 함께 1905년 미국 선교사 최의덕(본명 루이스 테이트)에게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금산교회에서 첫 장로를 세울 때, 두 사람이 후보로 올랐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선출한 결과는 놀랍게도 머슴 이자익이었습니다. 순간 다들 조덕삼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러자 조덕삼은 '우리 이자익 장로님이 저보다 훨씬 믿음이 깊습니다!’ 하면서 쿨내가 진동하는 대답을 했습니다. 후에 이자익은 금산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고, 조덕삼은 결국 장로가 되어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때로는 우리가 보기에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세우실 수도 있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으로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완전하고 옳습니다. 결국 사람을 세우는 일은 우리의 지혜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그저 능력이 좋아 보이거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세워져야 하는 곳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람의 손이 아니라 성령님의 손 안에서 움직이는 공동체가 될 때, 진정한 변화와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암 1부에도 여러 이유로 새로운 사람을 세워 채워야 할 빈자리가 생기곤 합니다. 팀 리더, 부장단, 교사 목자, 찬양팀, 스텝 목자 등등 모든 자리에 다 해당합니다. 이 빈 자리가 채워지고 새롭게 성령의 그릇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의 미래가 이 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그 역할을 해 줄 사람만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기도와 분별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마음을 모아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언젠가 저의 빈 자리를 채울 분을 주님께서 조만간 친히 세워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이나 계획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기도로 시작했고, 말씀으로 길을 찾았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우리의 문제는 갈수록 얽혀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공동의 기도, 합심 기도입니다. 수시로 가족들과, 동역자들과, 교회와 함께 기도합시다. 그 기도의 자리에 성령님이 임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실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승천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 고통, 슬픔, 유혹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공동체가 초대교회처럼 기도로 하나 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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