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로마서

죄를 이기는 복음의 능력

이창무 2023. 7. 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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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여름수양회 개회예배 / 이창무

죄를 이기는 복음의 능력

말씀/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우리 시대 사람들은 과거에 사람들을 얽매고 있던 많은 것들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엄격한 신분 질서, 지긋지긋한 가난, 국가 권력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내면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온갖 두려움과 불안, 짜증과 분노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내면의 문제 때문에 자신 자신을 통제하거나 인간 관계를 맺는 일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합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대부분 심리학 또는 정신 건강의 측면에 원인 파악을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제대로 사랑이나 훈육을 받지 못한 것, 호르몬 불균형, 성격 장애 등을 주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요즘 백종원, 강형욱과 더불어 대한민국 3대 멘토로 불리는 오은영 박사님이 주로 하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분석과 이해가 우리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뭔가 진짜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지식입니다. 죄라는 단어 자체를 교회 안에서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시대입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조차 죄라는 단어 쓰기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조엘 오스틴처럼 죄를 말하지 않는 것이 성장의 비결이라고 자랑하는 목사님까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말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고 이제는 무덤에 묻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깁니다.

이렇게 해서 기분은 좋아졌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미국의 현대 철학자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죄와 관련된 자기기만은 우리의 영적 중추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방향 감각을 잃게 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이것이 우리 삶에서 틀린 음이 들릴 때 이를 들을 귀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신앙적으로 음치가 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을 통해 연주하시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플랜팅가의 말처럼 죄는 모든 아름다움을 더럽고 추한 쓰레기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다시 도미노처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자기 자신을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사사기에서 살펴 보았던 것처럼 죄는 샬롬(평안)의 상태를 엔샬롬(평안이 없음)의 상태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개념을 알고, 죄를 인식하고, 더 나아가서 죄와 싸워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죄를 알고자 하는 것은 죄에 얽매이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는 승리와 기쁨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 결과 우리 삶에서 덕과 성품을 함양하고, 인격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앞으로 다섯 개 말씀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지, 죄의 결과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죄를 이길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수많은 죄 중에서 왜 하필이면 교만, 분노, 나태, 탐심, 정욕 이렇게 다섯 개의 죄를 다루게 되었는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교회사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 온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대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원 후 4세기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였던 에바그리우스가 처음 쓰기 시작해서 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가 수도사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에 적용해야 할 일곱 가지 죄로 정리를 했습니다.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보면 연옥이 칠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층이 각각 7대 죄악을 상징합니다. 또 브레드 피트가 주연한 범죄 스릴러 ‘세븐’이 바로 이것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시대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이 일곱 가지의 목록이 조금씩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심, 탐식, 정욕 이렇게 일곱 가지입니다. 이 중에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는 시기와 탐식을 제외하고 교만, 분노, 나태, 탐심, 정욕 이렇게 다섯 가지를 다룰 예정입니다. 시기는 교만과 분노와, 탐식은 나태와 탐심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일곱 가지 대죄를 영어로는 Seven Deadly Sins라고 부릅니다. 대죄라고 하니까 죄 중에서 크고 심각한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런 뜻도 있지만 본래는 Seven Capital Sins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Capital은 머리 또는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가지 대죄란 일곱 개의 머리이자 원천이 되는 죄입니다. 행위로 드러나는 죄의 표면 아래 숨겨진 죄, 다른 죄들을 저지르게 만드는 뿌리가 되는 죄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죄들을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간음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예전에는 간음이 형법 상에서도 범죄에 해당했습니다. 지금은 법적으로 처벌하던 조항이 폐지되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부도덕한 일로 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되는 정욕을 죄로 인식하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만이나 나태 등 다른 죄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기껏해야 인간적인 약점이나 심리적 결함 정도로 보는 것이 최대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일곱가지 대죄는 본의 아니게 나도 모르게 짓게 되는 죄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죄를 죄로 인식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3장 20절 하반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법적인 기준,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가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를 알고 그 죄의 실체를 해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 만으로 충분할까요? 앞서 언급했던 플랜팅가는 “이 일곱 가지 죄는 사람이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과 믿음과 태도이다. 그래서 이 죄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익숙한 패배, 약간의 발전과 퇴보, 고통스럽게 정복 당하는 것, 상처 뿐인 승리, 굴욕 스러운 타협 등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죄들의 정체를 알기만 하면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이 싸움에서 어쩌다 한 번의 승리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경우 반복된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을 싸우는 사람은 내 안에는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능력이 내 밖에서는 임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 능력이 어디로부터 올 수 있을까요?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로마서 6:14)

사도 바울은 죄가 우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죄가 우리를 영원히 지배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원어를 보면 이 부분이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죄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죄가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언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에 패배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갈망하게 됩니다.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에 감격하게 되고 그 은혜의 힘으로 죄와 싸워 승리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은혜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 갈수록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빈도수는 점점 더 늘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 말씀의 주인공은 죄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어디에서 누릴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양회 전체 제목을 “죄를 이기는 복음의 능력”으로 정했습니다. 이번 수양회 타이틀을 “죄를 이기는 은혜의 능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곱 가지 대죄에서 출발해서 우리를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 투어를 통해 다섯 개의 스탬프를 찍을 준비가 되셨나요? 이제 출발하려고 합니다. 다섯 분의 강사님들을 통해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서 죄를 이길 능력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양회 이후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죄와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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