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실천신학

양주선 목사의 설교 분석

이창무 2016. 12. 1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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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선 목사의 설교 분석


나는 지금까지 대학교 일학년 때 생애 처음 출석한 교회에 계속해서 24년간 출석하고 있다. 이 기간 중에 18년 동안을 이 교회의 담임 목회자셨던 양주선 목사님의 설교를 매주 한 편 이상 들었다. 한 분에게서 거의 천여 편 이상의 설교를 들은 셈이다. 현재 내가 설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양주선 목사님의 설교를 분석해 보고 설교학과 실습을 통해 배운 점을 통해 비평을 해 보고자 한다.


1. 양주선 목사의 설교의 특징


1) 권별 연속 강해 설교

양주선 목사는 성경 중 한 권을 택하여 1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전체를 연속으로 강해 설교를 하였다. 이렇게 할 경우 분량이 많을 때는 일년 내내 한 권의 책을 계속해서 설교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권별로 연속 강해 설교를 할 때 몇 가지 장점이 있었다. 설교자가 설교 본문을 자기 입맛에 맞는 대로 취사 선택할 위험성이 사라진다. 적어도 선택한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모두 다 다루게 된다. 또한 설교자가 본문 선택을 위해 특별히 매주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청중은 매주 설교가 연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주의 설교 본문을 문맥 속에서 이해하고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2) 긴 본문과 긴 설교 시간

양주선 목사가 전하는 한 번 설교 본문의 길이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한 경우 역사서 같은 본문을 설교할 때는 한 번 설교하는 분량이 서너장을 포괄하는 때도 많이 있었다. 본문이 길다 보니 설교 시간도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평균적으로 한 번 설교 시에 소요되는 시간이 총 50 분 정도였다. 또한 본문이 길다고 해서 본문에서 강해를 생략하는 부분을 남겨 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본문의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다루는 설교를 하였다. 이런 설교 방식은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이 성경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 주는 장점이 있었다. 설교가 꽉 찬 느낌을 주었다. 


3) 문어체 원고 설교

양주선 목사는 모든 설교를 원고에 빠짐이 없이 기록하고 또한 기록된 원고대로 설교하였다. 무원고 설교나 즉흥 설교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5분 짜리 짤막한 설교를 하더라도 사전에 반드시 원고를 작성하고 수차례 퇴고를 한 후에 전달하였다. 이런 설교 방식으로 인해서 설교에는 거의 군더더기나 쓸데 없는 말이 없었다. 깔끔한 느낌을 주는 설교였다. 또한 글로 쓴 내용을 입으로 읽어 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즉 문어체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 있었다.


4) 공동체 내 예화 사용

양주선 목사는 다양한 원천의 예화들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즐겨 사용한 예화는 바로 공동체 내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A라는 형제가 방탕하게 살다가 학사 경고를 받아 제적될 위기까지 갔었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삶이 변화되어 그 다음 학기에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공동체에 속한 모두가 다 아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예화로 들기 때문에 그만큼 가까이 다가왔고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기에도 좋은 가이드가 되었다. 이런 예화들을 많이 사용했다는 말은 곧 양주선 목사가 목회자로서 평소에 자신의 양떼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5) 의지에 호소하는 설교

양주선 목사는 주로 의지에 호소하는 설교를 많이 했다. 삶의 변화를 촉구하고 결단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설교의 방향성은 목회의 방향성도 결정하였다. 양주선 목사는 주일에 설교를 한 후에 그 주 내내 성도들을 살피면서 설교한 내용대로 교인들이 삶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였다. 이렇게 설교 본문에 의거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강조는 제자도의 훈련과 실천이라는 좋은 열매로 나타나게 되었다.


6) 실존주의의 영향

양주선 목사는 60년대 후반에 대학교를 다닌 세대이다. 이 당시 우리 나라 지성계는 실존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을 때였다. 양주선 목사는 아마도 이런 대학생 시절의 분위기에 의해 정신과 사상 체계 형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양주선 목사의 본문 해석은 주로 한 개인이 처한 실존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본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개인의 고뇌와 아픔 등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현해 내려고 하기도 하였다. 이런 설교의 특징은 특히 정체성 형성을 위해 몸부림 치는 청년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하였다. 그 결과 그의 목회와 설교는 청년들이 많은 교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II. 양주선 목사의 설교를 바라보는 비평적 관점


1) 멀티 포인트에서 원 포인트로

양주선 목사의 설교는 선정된 본문 자체가 여러 개의 페리코피들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를 충실하게 강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포인트를 가진 멀티 포인트 설교가 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 설교가 충실하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설교를 통해 청중의 가슴 깊숙이 남는 한 가지가 약했다. 막상 이번 주 설교에서 들은 바를 기억하는지 물어 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교인들이 많았다. 설교라기보다는 강의를 들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설교를 통해 한 가지 중심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페리코피 단위로 설교문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편이 좋을 것이다. 또한 매번 오십 분이 넘는 설교 시간 역시 청중의 집중도를 고려해 볼 때 지나치게 긴 시간이라고 본다. 대략 30분 설교를 기준으로 삼고 길어도 사십분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문어체 설교에서 구어체 설교로

양주선 목사의 설교는 항상 설교 후에 설교문 전체를 인쇄물 형태로 해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인쇄물 형태로 된 설교문을 차분하게 앉아서 묵상하면서 읽으면 큰 은혜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설교를 들을 때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거나 딱딱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 이유는 설교문이 문어체이기 때문이다. 문장이 길고 많은 의미를 축약시켜 표현하기도 하였다. 듣자 마자 쉽게 이해되지 않은 문장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어찌되었든 설교는 입술로 전달되기 때문에 일상적인 구어체로 전달되는 것이 가장 전달력이 좋을 것이다. 또 한 문장 안에 한 가지 의미를 단순하게 전할 때 청중은 그 의미를 쉽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구어체로 설교문을 작성하게 생생하게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3) 의지에 호소하는 설교에서 전인격적으로 호소하는 설교로

의지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양주선 목사의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때로는 설교에 대한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의지에 호소하는 면이 설교에 필수적이지만 너무나 이 면만이 크게 부각되면 압박하는 설교로 비추어지지 쉽기 때문이다. 좋은 설교는 지적으로 사람을 설복하고 또한 감정을 터치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의지에 도전하는 설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감성적 부분이나 지적인 부분을 갖추어 균형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감성적 부분이 부족한 양주선 목사의 설교에 대해 메마른 설교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지정의 모든 면에서 전인적인 호소력을 가진 설교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방향을 향해 가야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실존주의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한 때 시대를 풍미하던 니체,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 사상은 이제 더 이상 지성계의 주도적인 위치를 잃어 버린 지 오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사상계를 풍미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실존주의적 시각으로는 풍족하게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주선 목사는 실존주의 철학을 배경으로 그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적인 시대를 사는 이 시대 사람들 특히 청년들에게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뒤를 잇는 설교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깊이 이해하고 이 세계의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비록 유명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내가 몸 담았던 교회의 설교자로서 내 삶과 내 설교관에 깊고도 넓은 영향을 끼친 양주선 목사의 설교를 분석해 보고 나름대로 비평해 보았다. 그의 설교는 그의 시대에 유효적절했으며 어떤 점에서는 시대를 앞서 나간 탁월함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으며 장점과 더불어 한계와 약점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설교자로 준비하고 있는 나는 이분의 설교가 지녔던 장점들을 잘 흡수하면서도 동시에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 아마 그것이 또한 나의 신대원 진학을 진심으로 기뻐하시며 지지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양주선 목사가 내게 바라는 바이기도 하리라고 믿는다.

양주선 목사의 약력


양주선은 1945년 12월 22일 아버지 양성록과 어머니 유금선 사이에 1남 4녀 중 장남으로 경남 창원군에서 태어났다.  


양주선은 1967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복지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고, 대학 4학년 때 목회자로 소명을 받았다. 그는 1971년 2월 졸업 후부터 대학생 성경읽기선교회(UBF)에서 풀 타임 사역자로 부름을 받아 5년간 사역하였다. 그는 1972년에 군에 입대하여 복무하였다. 그는 1976년부터 2006년 2월까지 30년 동안 고려대학교 복음화를 위해 UBF 안암 지부 책임자로 일하면서 9개 지부를 개척하였고, 23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개혁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과정을 공부하였고,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연세대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과정 (Th.M.)을 마쳤다. 1999년에서 2000년까지 1 년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수학하였다. 2006년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 입학하여 선교학 박사과정(Doctor of Ministry)을 공부하였고 2010년 6월에 졸업하였다.  양주선은 2006년 3월에 미국에 있는 UBF 세계 본부로 와서 2010년 10월 현재까지 교육 부장으로서 일하고 있다. 양주선은 양안나와 결혼하여 딸 양데레사와 아들 양마가를 두었다. 양데레사는 Dr. Joseph Ahn과 결혼하여 Abraham Ahn과 Annamarie Ahn를 두었고, 양마가는 김혜숙(Rebekah)과 결혼하여 Monica Yang과 Sarah Yang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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