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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일곱 번 씻으라

이창무 2016. 8. 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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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일곱 번 씻으라  


말씀/ 열왕기하 5:1-14

요절/ 열왕기하 5:10 


1. 나아만은 어떤 인물이었습니까(1)? 그러나 그에게 어떤 치명적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가 어떻게 해서 엘리사에게 가게 되었습니까(2-6)?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 아람은 어떤 나라였는가? 아람은 본래 약소국이었음.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도 했음. 그러나 앗수르의 혼란을 틈 타 강대국으로 급성장. 북이스라엘과 앙숙이 되어 잦은 전쟁을 벌임. 후에 수리아(시리아)로 불리웠으며 다메섹(다마스커스)가 수도였음.

- 나아만은 어떤 사람이었나?

첫째, 군대 장관. 군대의 총사령관. 참모총장+국방부 장관.

둘째, 주인 앞에 크고 존귀한 자. 실세 중의 실세, 임금의 최측근.

셋째, 국가의 영웅. 나라를 위기 가운데서 구한 용사. 온 국민의 신망과 존경을 받음.

- 나아만이 이런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존귀하게 하셨음.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 나라들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나아만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음.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이룬 업적으로 착각.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음.

* 내가 높아졌다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셨기 때문. 착각해서는 안 됨. 내 힘과 지혜로 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교만 = 하나님을 감사치도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 죄. 힐링 캠프 박진영의 고백 - 내 성공은 하늘에서 나를 도와주신 절대자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날마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 나아만이 가진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나병에 걸림. 성경에서 나병은 중한 피부병을 통칭하는 말로 반드시 문둥병(한센병)을 의미하지는 않음. 나병 때문에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나설 수 없었음. 성경에 명확한 언급은 없지 나아만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음.

- 나아만은 나병 치료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을 것. 돈의 힘, 권력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음. 한계에 봉착.

*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에게도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음. 내면의 고질적인 죄악된 습관, 벗어날 수 없는 내면의 상처와 아픔, 열등감과 좌절을 지속적으로 가져다 주는 핸디캡 등등. 다른 것을 다 가져도 이 한 가지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은 불행에 빠지곤 함. 

* 죄와 나병은 유사점이 있음. 죄는 인간의 전 인격을 오염시킴. 본래 가졌던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망가뜨리는 것이 죄. 치명적인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권력과 명예와 부를 소유했더라도 소용이 없음.


-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 아람과 이스라엘 전투 중에 포로로 끌려 옴. 나아만 부인의 하녀가 됨. 어린 나이에 낯선 타국에 와서 노예로 사는 신세. 처량하고 슬픈 운명. 타의에 의해 끌려 온 것이지만 결국 소녀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됨. 이방인이 모르는 복음을 알고 있음.

- 사마리아(북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엘리사)를 소개함. 개인적으로 보면 원수의 집안인데 구원의 소식을 전함. 나아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함.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믿음이 있음. 그에게 가면 확실히 낫게 될 것을 믿음. 

- 나아만은 나이 어린 하녀의 말이지만 무시하지 않음. 그만큼 다급하고 절실했음. 

* 구원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임하기도 함. 우리 모임에서 변화된 사람 중에는 원래 기독교에 무관하고 기대가 없었던 사람들이 많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만난 목자님이 내 인생의 구원 소식을 가져다 줌. 무시하지 않고 이 소식을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 복이 있음.


- 아람왕은 많은 선물과 함께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보냄. 권력과 재물의 힘으로 구원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여김. 익숙한 세상의 방식. 돈과 권력으로 해결.

- 선지자에게 가라고 했는데 왜 왕에게 갔나? 선지자는 왕의 수하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 그러나 이는 왕이 절대권력을 가진 아람의 방식.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왕의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임을 알지 못했음.


2.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보낸 편지를 읽고 왜 화를 내었습니까(7)?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왜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도록 했습니까(8)? 나아만은 무엇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에 왔습니까(9)?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 이스라엘 왕과 엘리사의 반응이 매우 대조적으로 나옴. 

- 왕은 피해의식, 불안감, 두려움에 뜰고 있음. 오해하고 과민 반응을 보임.

- 엘리사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침.

- 엘리사와 이스라엘 왕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자기 힘을 믿느냐는 차이. 영감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든든한 빽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 나아만은 왜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갔는가? 엘리사에게 일종의 무력 시위를 함. 엘리사의 기선부터 제압하려고 함. 쫄게 만드려는 것임. 겸손하고 간절하게 도움을 구하려는 자세가 아님. 이런 자세가 먼저 무너지지 않고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음.


3. 엘리사는 나아만을 어떻게 대했으며, 그에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10)? 나아만은 왜 화를 냈습니까(11,12)?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 사자를 보내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 명함. 엘리사는 병거와 말들에 전혀 쫄지 않음. 직접 나가 보지도 않고 사람을 보냄. 나아만을 마치 아래 사람 대하듯 함.

- 엘리사가 왜 이렇게 했는가? 원래 건방지고 무례한 사람인가? No. 엘리사는 나아만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려는 의도임. 하나님께 복을 바라고 나오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자세 곧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와야 함. 아무리 세상에서 지체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죄인이고 종일 뿐임. (예, 기도할 때 무릎 꿇은 이명박 대통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전에 우리의 겸손을 달아 보신다.

* 사람을 인간적으로 세워 주고 잘해 주는 것이 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님. 물론 모든 사람은 세움 받고 대접 받는 것을 좋아함.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히 죄인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도록 해야 함. 


- 나아만은 화를 내고 돌아 가려고함. 엘리사가 국빈인 나에게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는가 자존심이 몹시 상함. 생전 받아본 적이 없는 대우에 화가 치밀어 오름. 감히 내가 누구인줄 알고 이러는가?

- “내 생각에는” 분명한 자기 생각이 있었음.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나오고 손을 환부에 흔드는 방식(아람 식의 치유 방식인 듯)으로 고쳐줄 것을 예상. 그러나 왜 자기 생각대로 안 하는가 받아들일 수 없었음. 지금까지 아람에서는 누구나 자기 생각대로 움직였는데 엘리사가 그렇게 하지 않자 당황하고 화가 남. 

- 강물의 질을 봐서도 요단강보다 아람의 강들이 더 좋다. 그러나 요단 강물 자체에 어떤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는 순종과 믿음을 요구했던 것. 

* 복음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거치는 돌이 됨. 사도 바울도 복음이 유대인에게는 거치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음. 구원을 코 앞에까지 두고 자존심과 교만 때문에 돌아서곤 한다.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머리 숙이는 것은 굴욕이 아니라 제자리 찾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자기 생각을 주장하기보다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발견하고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켜 가야 함.


4. 종들은 나아만을 어떻게 설득했습니까(13)? 그가 어떻게 해서 나병이 낫게 되었습니까(14)? 여기서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단순히 말씀에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종들이 가려는 나아만을 말림. 종들이 훌륭하다. 나아만은 복 받았다. 군대 장관이었던 나아만과는 달리 종들은 겸손과 순종의 가치와 힘을 아는 자들이었음. 종들은 나아만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 보게 함. 나아만은 누구인가? 환자다. 죄인이다. 환자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구원을 받는다. 병원에서 가장 골치 아픈 환자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환자- 결국 치유를 받을 수 없고 자신을 망하게 함.

- 큰 일을 행하라고 하였다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나아만은 오히려 엘리사가 쉬운 일을 요구했기 때문에 반발한 듯. 일생 성취를 향해 달려 온 나아만에게 어려운 과정을 제기했다면 오히려 받아들이기 쉬웠을 수 있음.

* 사람들은 자기 의로 자기 행위로 구원 받고 의롭게 되는 어려운 일을 더 선호함. 왜? 자기를 자랑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복음은 단순히 믿음을 요구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십자가와 부활을 영접하라고 함. 

- 나아만의 위대한 점은 자기 생각은 있지만 끝까지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다는 점. 종들의 말이라도 옳은 말은 인정하고 귀를 기울인다는 점. 

- 순종했을 때 어린 아이 살같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남.

* 강물에 몸을 씻는 것은 세례를 연상하게 함.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을 말함. 일곱은 완전수로 온전히 남김 없이 죄를 씻는 것임.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죄를 씻기 위해서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함. 담그되 일곱 번 푹 담그어야 함. 수양회 일곱 번의 말씀에 푹 담가야 함. 

* 기왕 수양회에 왔는데 그냥 갈 수 없음. 말씀에 십자가에 자신을 담그면 깨끗케 됨을 체험하게 됨. 온전케 되는 회복을 체험하게 됨. 올 때와 갈 때가 달라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믿음과 순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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