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이창무 2016. 3. 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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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말씀 / 사도행전 12:1-17

요절 / 사도행전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우리는 지난 가을학기부터 사도행전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12장 말씀은 우리가 10강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교회'라는 제목으로 공부한 말씀 가운데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공부했고 메시지도 들었는데 또 이 말씀이 본문이냐 라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했던 본문이 길다보니 사도행전 12장 부분은 간단히 훝고 넘어갔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까지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는 종교적 박해였습니다. 반면 오늘 12장에서는 처음으로 정치적 박해가 일어납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정치 권력이 교회를 죽이고자 덤벼드니 교회로서는 절체절명의 큰 위기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교회가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를 살펴 보면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헤롯왕은 유대가 아니라 에돔 출신이었기 때문에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었습니다. 반헤롯 시위 때문에 날마다 골치가 지끈지끈했습니다. 그런데 가만보니 최근 교회가 급성장하고 있다 하는데 유대인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 일을 기뻐하였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반응에 고무되었습니다. 내친 김에 사도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다음달 총선에서 압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침 이때가 유월절 축제 기간이어서 사형 집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베드로를 옥에 가두어 두고 명절이 끝나자 마자 곧바로 처형할 계획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전에 탈옥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16명의 군인들이 네 조로 나누어 지키게 했습니다. 쇠사슬로 베드로의 온 몸을 꽁꽁 묶어 놓았고 심지어 잘 때도 베드로의 좌우에 군인들이 누워서 함께 잤습니다. 베드로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베드로는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슬픔이었습니다. 거대한 정치세력에 의한 기독교 탄압으로 교회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등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이런 때에 예루살렘 교회는 무엇을 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여기서 간절히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뜨겁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서 뜨겁게, 열심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헤롯에게 대항할 무기도 없었고 관리들을 매수할 돈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는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저자 누가는 여기서 기도한 주체를 교회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믿는 자들이 각자 알아서 여기 저기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합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이 교회의 이름으로 모든 성도들이 열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개인 기도도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올리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교회가 드리는 기도'는 더욱 힘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르짖는 기도는 실시간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개인 기도는 소총을 한 발 한 발 탕 탕 하고 쏘는 것과 같다면 교회의 기도는 미사일과 같습니다. 견고한 마귀의 진은 개인 기도만으로는 파괴시키키 어렵습니다. 교회가 기도의 미사일을 퍼부어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말씀처럼 골방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되지 꼭 나와서 함께 기도해야 하느냐 말하기도 합니다. 일리있는 말입니다. 골방에서 개인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교회가 함께 모여서 드리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수요축복 기도회에서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다 함께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공적인 기도회가 또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교회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에 빠르게 응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수요 축복 기도회의 기도 더욱 간절해 지고 이를 통해 기도의 응답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가 합심 기도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가 갇힌 감옥에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사형 집행 전날 밤인데도 깊은 잠에 빠져있던 베드로의 옆구리를 특툭 쳤습니다. "급히 일어나라" 베드로가 일어나자 쇠사슬이 스르르 손에서 벗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육중한 감옥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베드로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마가 요한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가보니 성도들이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가 밖에서도 들렸습니다. 베드로의 구출을 위해 그들의 기도는 끊임 없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깊은 감옥에서 나오게 된 것이 교회의 기도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가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실시간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힘은 놀랍습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기도한 당사자들조차 믿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 때 로데라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너무 기뻐서 문을 열어 주는 것을 깜빡 하고 안으로 들어가 베드로가 왔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로데에게 네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계속 문을 두드리자 그제서야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보고 심히 놀랐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이렇게 빨리 기도가 응답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합심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 들이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합심기도를 통하여 옥에 갇혔던 베드로처럼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들의 합심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이라는 옥에 갇혀 절망감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치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성도들이 마음을 합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기도해 왔지만, 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옥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난 것처럼, 그분들도 병에서 기적적으로 놓임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육신적인 병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빠져서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심한 중독증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늪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무리 헤어 나오려고 애를 써 보지만,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풀려지지 않는 가정과 자녀들의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 때문에 힘들지만 어떤 분들은 자녀가 생기기 않아서 힘들 분들이 있습니다. 기다리다 치쳐 낙심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고 시험에 들어서 "영혼이 옥에 갇혀 있는" 리더나 양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기쁨을 잃고 뜨거운 태양열에 다 시들어진 잎들처럼 축 쳐져 있습니다. 교회는 영혼이 옥에 갇혀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특권이자 사명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김모세 목자님의 긴급 소집에 의해 매일 밤 9시부터 몇몇 분들이 합심 기도의 단을 쌓고 있습니다. 이 기도회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까지 이 기도회에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이 기도회에서는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학사 목자님도 오시고 정신없이 저녁을 치우고 오신 사모님도 계십니다. 기도 제목을 간단하게 나눈 후에 둥그럽게 무릅을 꾾고 돌아가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을 들어 보니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발도 저리고 무릎도 아픈 것 같습니다. 기도가 노동이라는 옛날 수도원의 표어가 실감이 납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이 기도회에서 집중적으로 기도했던 세 사람이 예배에 왔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화요일 런치 미팅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5학번 체교과 4명이 왔고 새로 온 10학번 경영학과 학생은 저와 일대일을 하기로 했고 미국인 양도 한 명이 또 새로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심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막 합심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런 응답들을 주시는 것을 보고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이 기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그 당사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밤 9시에 모여서 무릅 꿇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까? 물론 본인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영원히 모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거꾸로 뒤집어 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를 위해서 기도해 준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물론 그 중에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기억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를 위해서 합심 기도한 목자님들이 무척 많았으리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기도에 빚진 자들입니다. 목자님들에게 기도의 빚을 진자들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까?내가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있을 때 누가 기도해주었습니까? 목자가 기도해 주었습니다. 교회가 기도해주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드리는 동역자들이 기도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내가 큰 고통 속에 거할 때 나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의 나된 것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합심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도의 빚진 사람들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준 교회와 나를 위해 기도해 준 동역자들에게 보답을 해야겠습니다.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요축복 기도회가 기도의 빚을 갚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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