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영화 얼라이브와 성만찬

이창무 2015. 5. 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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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이브 (1993)

Alive 
8.6
감독
프랭크 마샬
출연
에단 호크, 빈센트 스파노, 조쉬 해밀턴, 브루스 람세이, 존 뉴튼
정보
어드벤처, 드라마 | 미국 | 124 분 | 1993-04-24



영화 얼라이브와 성만찬의 의미



1947년에 베스트셀러였던 “생존”(Alive)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얼라이브”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상영되었습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를 떠나 칠레의 산티아고로가는 비행기가 악천후를 만나 안데스산맥에 불시착했습니다. 양쪽 날개와 꼬리는 산봉우리에 부딪혀 날아가 버렸고 겨우 눈 덮인 산허리에 동체만 착륙한 것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럭비선수 15명 응원단 25명 승무원 5명 등 4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중 더러는 불시착할 때 즉사했고 더러는 부상을 입었으나 산위에서 죽어갔습니다. 눈 덮인 안데스산맥은 등산가들도 꺼리는 죽음의 계곡인데 정부에서는 10일간 수색작업을 펼쳤으나 찾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비행기 안에는 식량이 전혀 없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67일간에 끝까지 견디어 구출 받은 자는 16명뿐이었습니다.  이들 생명을 두 달 동안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연명했기 때문입니다. 부상으로 앓다가 죽어간 니코리치는 아버지 앞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운 일이 이곳에서는 벌어지고 있습니다. 죽은 친구의 살을 쪼개어 내는 일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저도 이제 더 이상 살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나의 살이 친구들을 구원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살아남은 청년 호세는 로저스 신부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교회에 빠져본 일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저를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죽음의 산위에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다녔으나 하나님의 집에서 살지 않았고 신자란 이름을 가졌으나 참 신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눈 덮인 산위에서 죽음과 싸우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교회에서는 수없이 성만찬예식에 참석했으나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즙을 든 것뿐이며 그 뜻이 전혀 내 가슴에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으며 정말 십자가가 무엇이며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의 육을 산위에 장사하고 새 사람으로 이산을 내려가게 하소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제 주 만을 위하여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살게 하소서”


http://blog.daum.net/jungts0187/1212





'안데스 산맥 조난기' 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



지난 주일 저녁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중간 부분부터 보게 되었지만 곧 그 다큐가 남미의 비행사고에서 생존한 이들을 다룬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90년대에 그것을 소재로 한 영화 'Alive' 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것은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촬영한 다큐멘터리더군요.




제목은 '안데스 산맥 조난기' (Stranded : I've come frome a plane that crashed on the mountains, 2007) 이었습니다.

1972년에 우루과이의 럭비팀과 그 가족들이 눈덮인 안데스 산맥을 비행하던 중에

추락 사고를 당한 후 72일 만에 그 중 일부가 구조된 내용입니다.

45명 중에 16명이 생존하였으며 30여년이 흐른 지금에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다큐가 이루어집니다.

영화 'Alive' 에서 묘사하였지만 생존자들은 죽은 가족과 친구들의 인육을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하였고, 그 중 두 명이 눈덮인 산맥을 뚫고 인가를 찾아 내려와서 구조를 받게 됩니다.


생존자들이 건강한 육체의 럭비선수들인 것과 평소의 팀웤을 형성하고 있는 점이 물론 생존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의 연명의 방식이 카니발리즘이었다는 것으로 경악과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와 이 다큐를 통해 인간의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전개되는 그들의 생존 방식을 보며 오히려 그것에 긍정을 하게 되는데, 그 긍정의 끈이 되는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만찬이었습니다.

72일 간을 압축한 다큐가 하나의 순례와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들은 처절한 방식이었으나 인간성을 지키기위해 절차와 순서와 고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하였습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3년간 동고동락한 제자들에게 '나를 기억하라..' 하시며 명하신 것이 성만찬입니다.

'이는 나의 살이니 먹고 , 이는 나의 피니 마시라...'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이나  초기 공동체의 성만찬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마치 카니발리즘의 대사로 오인될 정도였을 것입니다.

저는 왜 많은 방식 중에서도 예수께서 자신을 전승하시기 위한 방식으로 성만찬을 택하셨을까?  하는 물음이 있었는데 마침 이 다큐를 보면서 조금은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친절한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인식의 한계를 갖고 살아가며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 테두리 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한된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이외의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야 하는데, 친절하게도 예수께서는 우리의 인식 안으로 그 분을 기억할 수 있는 방식을 허락하셨다는 것이지요.

누구나 알 수 있는 방식, 누구나 좋아하는 방식, 누구나 필요로 하는 방식인 '만찬'을 통한 것입니다.


둘째는, 감사와 부끄러움의 방식입니다.

이 조난의 생존자들이 그들의 지인들의 육신을 먹을 때 그들의 마음에 교차하는 만감이 있을 터인데 우리가 성만찬을 대할 때 감사와 부끄러움과 기쁨이 밀려오는 것처럼 인간 본성을 토대로 한 감성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셋째는, 충격의 방식입니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먹은 지인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는군요.

충격적인 강력한 기억의 방식..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성만찬도 이런 동일함으로 2000년간의 기억의 면면을 이어오는 충격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넷째는, 절체절명의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항상 풍성한 만찬이 있어서 절체절명이라는 단어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다큐의 사건에서 본다면 절체절명이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육체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하여 인육을 먹는 것을 통해본다면, 홀로 진정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절체절명 앞에서는 그 분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깊이 이해하는 분들이 많으시지만 우연한 다큐 한 편을 보면서 누구보다 인간을 잘 아시고 생명을 맡으신 그 분의 성만찬을 저도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http://dabia.net/xe/free/299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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