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창세기

행복 헌장 5 계명

이창무 2015. 5. 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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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헌장 5 계명


말씀 : 창세기 2:4-25

요절 : 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요즘 우리 사회 최대의 이슈는 이제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대통령 선거가 아닐까 합니다. 각 후보들마다 국민의 표를 한 표로 더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정동영 후보는 행복 배달부로서 행복 바람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며 가족 행복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권영길 후보는 여전히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명박 씨는 국민 성공 시대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 역시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늘 서로 치고 받는 대선 후보들이지만 그들 모두가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바가 행복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바라는 바라는 행복, 사람들은 그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 여기고 있습니까?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행복해 질 것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티브이에서 로또 광고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갑자기 눈이 동그레지면서 입에 귀에 걸리고 두 팔을 번쩍 들고 껑충 껑충 뛰는 사람을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나도 저사람처럼 돈방석에 앉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복권 용지에 싸인펜을 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돈을 벌어서 외제 승용차도 사고 타워 팰리스 같은 고급 아파트에서 살면 마냥 행복해 질 것만 같습니다. 

또한 요즘 시대를 가리켜 웰빙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젠 단순히 부자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부자되느라고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건강을 해쳐 일찍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먹어도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고 웰빙 푸드를 골라서 먹고,  몸에 좋다는 것은 가리지 않고 뭐든지 열심히 합니다. 잘 먹고 잘 살기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 회사 옆에 대표적인 비웰빙 정크푸드인 튀김과 라면, 햄버거를 파는 분식집이 있는데 이름이 웰빙 스넥바입니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웰빙 상품들의 가격이 무척 비싸기 때문에 우선은 부자가 되어야 웰빙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공은 곧 행복이라는 등식도 있습니다. 성공해서 유명한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우러러 본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서점가에서는 빌 게이츠나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들의 성공 비결을 담은 책들이 불티나게 팔립니다. 성공하기 위해 인맥도 쌓고 성공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 행복은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만한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가 재작년 이맘때 미국에서 26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그녀가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한 USA 투데이는 역사상 최고액의 복권에 당첨된 잭 위디커의 삶을 추적한 기사를 특집으로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잭 위디커는 2002년 크리스마스 저녁 복권에 당첨되어 세금을 제외하고 1억 14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183억원)란 엄청난 돈을 일시불로 받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그 후 일년 동안 위디커는 총 5 차례 도난 사건을 당했으며, 두 차례 음주 운전 사고로 면허를 박탈당했으며 ,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1번, 성추행 혐의로 1번, 폭행과 협박 혐의로 1번 경찰에 체포되고 검찰에 의해 2번 기소되었으며, 손녀딸의 친구가 자신의 저택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고, 얼마 후 그 손녀딸마저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잭 위디커의 삶은 복권 당첨 뒤 일년도 안 되어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복권 당첨은 그에게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젠 이런 질문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일까요? 아니면 스위스일까요? 런던정경대학이 조사한 전세계 54개국에 대한 행복 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가 1,2,3 위를 차지했으며 미국과 스위스는 40위권이었습니다.(한국은 23위) 방글라데시, 아제르바이잔, 나이지리아, 이 세 나라들의 공통점은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들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이 결과들 앞에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쩌면 행복은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잡힐 듯 잡힐 듯 하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신기루나 무지개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는 인류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다고 말하였으며, 토마스 모어는 모든 행복의 조건을 갖춘 이상향을 가리켜 ‘유토피아’ 즉 ‘결코 존재하지 않는 땅’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 답이 바로 창세기 2 장에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의 웅장한 서곡이라면 창세기 2장은 특별히 인간 창조에 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습니다. 창조된 인간이 최초로 거주하였던 곳이 그 유명한 에덴 동산입니다. 에덴이란 기쁨 또는 희락이란 뜻입니다. 에덴 안에는 행복의 원형이 들어 있습니다. 에덴 안에는 인생의 행복의 비결이 담겨져 있습니다.


2005년 영국 BBC 방송에서 “행복”이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행복 헌장 10 계명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해 보면 ... 운동을 하라. 일주일에 3회, 30분이면 충분하다’’,‘TV 시청 시간을 반으로 줄이라’, ‘식물을 가꾸라. 아주 작은 화분도 좋다. 죽이지만 말라~!’헌장치고는 너무 시시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웬지 믿음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2장에서 확실한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성경이 가르쳐 주는 행복 헌장 5 계명의 세계로 빠져~ 봅시다.


첫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흙은 부드럽고 부서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육체는 연약합니다. 한창 젊을 때는 자기 몸이 강철인줄 착각하지만 제 나이만 되도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건강할 때는 잘 모르지만 한번 아프기 시작하면 내 몸이 흙으로 지어진 줄으로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19절에 보면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도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육체적으로 보면 인간이나 짐승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찌나 비슷한지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께서 직접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기 전에는 인간은 그저 몸뚱아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운이 인간의 육체 속에 들어왔을 때 인간은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이 인간 생명의 수여자요 공급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결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파괴되면 인간은 그저 다시 몸뚱아리가 되고 맙니다.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행복을 느낄 수도 없고 추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라고 말합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높고 고상하고 활력에 찬 영적, 도덕적 생명입니다. 식물이 물이 없어서 말라 죽어가다가 생수가 공급될 때 살아나는 것과 같이, 살았으나 죽은 상태에 있다가 예수님의 생명에 접하게 되면 생명이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생명을 누리는 사람은 그 내면에 영생의 기쁨이 솟아납니다. 이 생명을 누리는 자에게는 세상 만물이 새롭게 보이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찼음을 깨닫게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온통 회색입니다. 건물도 회색이고 거리도 회색이고 자동차도 회색이고 하늘마저 회색입니다. 그러나 에덴에는 넓고 푸른 풀밭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고 초록빛 나무잎 사이로 붉고 탐스러운 과실이 곧 떨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푸르고 맑은 강물이 에덴에서부터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물은 모든 생명체의 젖줄입니다. 에덴에서 갈라진 물줄기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이렇게 네 개의 강을 이루었습니다. 강가의 돌들이 온통 순금이거나 베델리엄과 호마노와 같은 보석들이었습니다. 아담은 비손 강가에서 순금 덩어리로 물수제비를 뜨면서 놀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담에게 다만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에덴 동산 거주에 따르는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전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주시되 후히 주시어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이 은혜와 축복을 잘 받아서 누리면 됩니다. 만약 아담이 하나님께서 에덴으로 이끄실 때 ‘왜 이러십니까? 저를 도대체 어디로 데려가시는 겁니까?’하면서 불신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행복은 커녕 안개만 자욱한 황무지에서 풀 뜯어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고 따르시길 바랍니다. 황무지 같았던 우리 인생에 장미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16절과 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은 사람이 에덴동산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특별히 먹는 문제에 관해서 일절 간섭치 않으시고 모든 과일을 임의로 먹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됩니다. 이것은 거의 무한대한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자유를 인간에게 주셨을까요? 니콜 키드먼이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텝포드 와이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부부가 스텝포드라는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사한지 얼마 안 되어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스텝포드 마을의 아내들이 너무나 완벽 말그대로 Perfect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아내들이 못하는 요리가 없고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늘 웃는 얼굴로 대합니다. 사실 그 마을은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마을의 모든 아내들은 남편에 의해 인조인간로 개조된 로보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니콜 키드먼의 남편은 아내를 인조인간으로 개조하기를 거부하고 마을의 비밀을 폭로해 버립니다. 왜 그는 자신의 아내를 완벽한 아내로 만들기를 거부했겠습니까? 이는 그가 아내로부터 자발적으로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을 받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랑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시고 인간이 자율적으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담이 자신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자유가 있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심으로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할 위험마저도 감수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유를 주시되 동시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볼 때 이것은 계명의 나무 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때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면 동산 중앙에 왜 이런 선악나무를 두셨는가, 왜 이것을 두셔서 죄를 짓게 만들었는가, 꼭 만들어야했는가 하는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은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까닭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선악나무를 통하여 다만 하나님과 인간과의 분명한 질서를 세우기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선악나무를 통해 인간이 무한한 자유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만약 에덴동산에 선악 나무가 없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에덴은 맹맹하고 맛없는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선악과가 없으면 인간은 그 많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은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그 에덴의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자기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빚어가며 우리 마음에 만족을 줍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큰 기쁨을 줍니다. 인간은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명을 떠나 함부로 살고자 하면 자유롭게 잘 살 것 같지만 우리 마음은 이내 허전하고 곤고하며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계명은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계명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있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가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 계명은 축복과 영생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격적으로 지으시고 무한한 자유를 주시되 계명의 나무을 세우신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관리할 청지기로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놀고 먹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무 할 일도 없이 계속 놀고 먹어 보십시오. 곧 미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도 병도 아니다. 그것은 생에 대한 권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19절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각 생물의 이름을 짓도록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름 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름 짓기는 만든 사람의 고유 권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이름을 짓도록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을 아담에게 위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우리 인간과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의 창조자께서 이 작고 연약한 인간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니요? 이 일만큼 영광스럽고 의미있고 값진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우리를 인간답게 하고 우리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인간은 혼자 살면 좋지 않습니다. 외롭습니다. 인간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팔을 걷어 붙이시고 아담을 위해 돕는 베필을 지으셨습니다. 지으시되 아담의 갈빗대 하나로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소감 발표하였습니다. 이로서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가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눈이 맞아 함께 사는 것이 결혼이 아닙니다. 결혼은 신성한 언약입니다. 오늘날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고통받고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원인이 바로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결혼에서 그 핵심인 신성함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만나고 마음대로 헤어지는 가운데 남편과 아내는 물론이요 자녀들은 씻기 어려운 큰 상처를 받습니다. 가정이 회복되어야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가정의 회복이란 창세기적인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나의 행복에 무엇이 필요한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자신만의 낙원을 건설하려 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도들이 더 큰 비극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습니다. 캄보디아에는 킬링필드라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틈 많은 해골들이 묻힌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프랑스 유학까지했던 지성인인 폴 포트라는 사람이 캄보디아를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악습에 물든 기성세대를 몰아내야 한다며 무차별 살육을 벌인 곳입니다. 칼 맑스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면 낙원과 같은 공산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결과는 스탈린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였습니다. 그의 문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이 흙이라는 물질로만 지어진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배제한 채 행복을 약속하는 많은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리학일 수도 있고 처세술일수도 있고 과학기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창조된 인간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나를 가장 잘 아십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나의 행복에 무엇이 필요한지 내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대한 완전한 행복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나보다도 더 나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에덴 동산을 만드신 분도, 사람을 에덴으로 이끄신 분도, 독처하는 아담에게 돕는 베필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이십니다. 아담이 먼저 요구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지 못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보다 먼저 아담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주셨습니다. 심지어 내가 스스로 나의 행복을 포기하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기쁨의 동산으로 이끌기 원하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불행해지기 위해 창조된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 버린 낙원을 인간에게 되돌려 주시고자 하는 열심을 품고 계십니다. 죄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온 세상을 창조 시의 아름답고 완전한 세상으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거룩한 열망을 품고 계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고 예배해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막가도 되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그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을 거스른다거나 창조주를 주로 인정하지 않을 때 그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아무런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마지막 걸작품인 아담으로부터 순종의 제사를 받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행복 오계명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함께 따라해 봅시다. Life, Blessing, Bible, Mission, Home in God. 우리 말로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명, 축복, 말씀, 사명, 가정 여기서 in God 즉 하나님 안에서가 대전제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고 있을 때 우리 삶에는 생명과 축복이 넘치고, 말씀과 사명을 붙들면서 세상을 승리하며, 아울러 가정의 행복이 깃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에덴을 회복하고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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