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도서

자족하며 살아가기

이창무 2023. 10. 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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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전도서 제7강 / 이창무

자족하며 살아가기

말씀 / 전도서 5:8-6:9
요절 / 전도서 5:20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14세기 영국의 작가 제프리 초서가 쓴 ‘켄터베리 이야기’에는 죽음을 죽이기 위해 떠나는 세 명의 무법자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찾으러 가는 길에 한 노인에게서 참나무 밑에 가면 죽음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죽음 대신 금화 세 자루를 발견합니다. 이후 그들 중 막내가 시내에 나가 술을 사오겠다며 나갑니다. 그는 형들을 죽이고 금을 독차지하려고 술에 맹독을 섞어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 사이에 형들은 막내를 죽이고 더 많은 금을 나누어 가질 계략을 꾸밉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까요? 형들은 칼로 막내를 죽이는 데 성공했으나 막내가 사온 술로 축배를 드는 바람에 그들 역시 죽고 맙니다. 결국 노인의 말이 옳았습니다. 탐욕에 눈이 먼 세 청년이 나무 아래에서 찾은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처럼 재물의 어둡고 위험한 성격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보여줍니다. 아울러 우리가 어디에서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재물에 대한 애착은 결코 궁극적 만족을 줄 수 없는 우울한 투자입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8a)

전도자는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전달하기에 앞서 먼저 빈민이 학대를 받고 정의와 공의가 짓밟히는 현실을 보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은 이런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결코 이례적이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도 역시 곳곳에 갑질과 부정부패가 만연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현실을 아무리 바꾸려 애를 써봐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8b)

그 이유는 부패의 카르텔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찰한다는 말은 잘못을 지적하고 들추어 낸다는 말이 아니라 반대로 잘못을 알아도 감싸주고 보호해 준다는 말입니다. 말단에서부터 저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이권을 중심으로 뭉쳐서 서로의 뒤를 봐주고 있으니 도저히 이 부패의 사슬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10)

은과 풍요를 사랑하는 마음! 바로 재물에 대한 사람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이들이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정의와 공의를 짓밟으면서까지 자신의 재물을 쌓으려는 것은 단지 그것이 삶에 필요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재물 그 자체에 집착하기 때문에 필요를 넘어 무제한으로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전도자는 그들이 가진 이런 생각이 얼마나 헛된 착각인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해 줍니다.

첫째로, 재물이 많다고 해서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들 중에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벌만큼 벌었다. 나는 만족해.’ 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셨나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나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고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6:7)

이 말씀대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을 모릅니다. 항상 불만족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도는 가진 재산의 정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재산이 많아지면 동시에 돈을 써야 할 곳도 많아집니다.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11)

재산이 많아지면 새로 고용해야 할 사람 곧 부자의 재산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납니다. 먼저 재산을 관리해 줄 회계사를 고용해야 합니다. 또 재산을 노린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호원이 필요합니다. 그 외에도 가정부, 운전기사, 요리사, 정원사, 유모, 가정 교사, 피지컬 트레이너 등등 줄줄이 사탕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체통에는 당신의 돈을 보내 달라는 기부금 요청서가 매일 가득 차 있고, 세무서에서는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세금 고지서를 보내옵니다. 소유주들은 자기가 쌓은 재물이 이렇게 여기저기 다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때 마음이 얼마나 씁쓸하겠습니까?

셋째로, 부자는 가진 것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합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12)

부자가 고용한 노동자는 낮에 육체노동을 하느라 피곤해서 밤에 빨리 잠듭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잠을 푹 잘 수 있습니다. 반면 그를 고용한 부자는 매일 잠 못 드는 밤을 보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사업이 잘 될 때는 다음 투자는 어디에 해야 할 지 고민이 되어 잠을 못 자고, 사업이 잘 안될 때는 망할까 봐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잡니다.

성경은 부 그 자체를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다 부자였습니다. 부가 가져다 주는 이점과 유익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돈과 풍요를 사랑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돈에 대한 사랑은 돈에 대한 집착을 낳게 되고, 돈에 대한 집착은 지금까지 전도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삶을 우울하고 불행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매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둘째, 재물에 대한 애착은 사실상 해를 끼치는 해로운 투자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5:13)

전도자는 해 아래에서 큰 폐단이 되는 일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폐단을 보았길래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물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그것이 유익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소유한 많은 재산이 오히려 인생에 마이너스가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폐단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첫번째 폐단은 부자가 갑자기 재난을 당해 망하는 것입니다.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14)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친 후 받은 퇴직금과 싼 이자로 받은 대출금을 자본으로 이리저리 열심히 부동산을 굴려 큰 재산을 모았습니다. 소유한 집이 수십채가 넘었고 한달에 벌어들이는 월세만 해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재산을 모은 목적은 단 하나 자신의 외동 아들에게 다 물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들은 건물주의 아들로서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발생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푹 꺼지고 말았습니다. 집값은 폭락에 폭락을 거듭 했고 도저히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는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어 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전에 자기 소유였던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돈이 전부인 사람이 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요 마침내 살아야 할 이유마저 상실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경우 차라리 월급쟁이로 얻는 소득으로 만족하며 살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큰 부자가 되겠다고 욕심을 내고 실제로 크게 성공한 것이 도리어 그에게 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두번째 폐단은 부자가 일생 쌓은 재물이 죽을 때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앞선 사례와 달리 어떤 부자는 끝까지 재산을 잘 관리해서 지키는 일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15,16)

전도자는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 빈손으로 온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날 때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전도서만이 아니라 욥기에도 거의 같은 구절이 나오고 동서고금에도 여러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수래공수거’라는 유명한 한자 성어가 있습니다.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의 첫 가사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산다는 게 다 그런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우리 모두 역시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부자가 죽어서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면 왜 그렇게 부자가 되지 못해 안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이 많은 것을 두고 가야 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죽을 때도 편히 죽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신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재물의 신’ 곧 ‘맘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따른 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신이 신으로서 자격이 있을까요? 재물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될 수 없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평생토록 수고할 만한 가치가 있지도 않습니다.

세번째 폐단은 부자가 어둡고 우울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라고 하면 그들의 화려한 삶을 떠올립니다. 명품 옷을 입고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주얼리 샵으로 들어가는 모습, 집 안에서 풀장에서 수영하고 나와서 거실에 있는 칵테일 바에서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죽을 때 빈손으로 가더라도 살아 있을 때 멋지고 산다면 꽤 괜찮은 것 아닐까요? 그러나 전도자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17)

전기료를 못내 단전이 된 것은 아닐 텐데 부유한 사람이 왜 어두운 데에서 먹을까요? 여기서 어두운 데에서 먹는다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가 없이 혼자 먹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엄청나게 큰 식탁 끝에 앉아서 홀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부자의 모습을 연상하면 됩니다. 왜 재산이 많은 사람은 이렇게 고독해지는 경우가 많을까요? 주위에 자기의 돈만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그 결과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식탁 위의 등불이 아무리 밝아도 외로운 그의 마음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또 부자는 생각이 많고 근심과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 때문에 신경성 위염, 불면증, 편두통과 같은 질병에 계속해서 시달리게 됩니다. 또 부자의 특징은 분노가 많다는 것입니다. 세금을 왕창 떼어간다며 정부에 화를 내고, 월급만 축내고 성과를 못 낸다며 직원들에게 화를 내고, 땅콩을 접시에 담지 않고 봉지 채 내왔다고 화가 나서 여객기를 회항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를 달고 삽니다. 평안함이 그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가난이 불행한 삶의 주된 원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가난하면 친구가 떨어져 나가고 외롭고 고독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난하면 걱정 근심이 많아지고, 질병에 쉽게 걸리고, 좌절 때문에 분노할 일도 많아집니다. 지독한 가난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는 역시 이에 못지 않게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자가 말한 대로 부유함 또한 삶을 고독하게 만들고,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를 달고 다니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은 가난 못지 않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듭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누림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현명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재물과 소유에 집착하다가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삶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대안을 제시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18)

전도자는 우리에게 먹고 마시며 일을 통해 낙을 누릴 것을 권고합니다. 이 권고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전도서에서 벌써 네 번째 같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권고를 다음과 같은 질문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음식과 음료와 수고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꼭 부자가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까? 꼭 건물주가 되어야 누릴 수 있는 것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가 아니어도 돈이 많지 않아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전도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19)

다음으로 전도자는 부자들에게도 비슷한 조언을 합니다. 내가 수고해서 내가 능력 있고 똑똑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선물은 받으면 좋고 받지 않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시면 주시는 대로 감사하게 받으면 되고, 안 주시면 이미 내게 주신 몫으로 즐거워하며 살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되면 그때부터는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에서 만 악의 근원으로 정반대로 변하고 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을 파멸에 이르게 할 이런 어리석은 길로 가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어떤 삶을 추구합니까?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20)

전도자는 현명한 사람은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내 인생의 남은 날들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언제 심각하게 됩니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할 때입니다. 대입 수험생들은 곧 다가올 수능날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밥맛을 잃습니다. 왠지 그날 배탈이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대학생들은 졸업 시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심각합니다. 앞으로 진로 걱정에 우울감이 찾아옵니다. 결혼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이는 어떻게 낳고 양육해야 할 지, 노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이런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살다가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바로 오늘 우리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해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미래는 내가 통제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여기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현재에 집중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누리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미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셨는지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지난 금요일 영혼의 힐링 콘서트를 통해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김그레이스 사모님과 영블레싱 사모님이 준비한 쿠키와 문수정 사모님이 준비한 망고 주스를 통해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또한 힘써 수고하며 준비한 특강을 전하는 것을 통해 일을 통한 낙을 누렸습니다. 김현유 목자님의 재미있는 간증과 권희 레베카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간증을 듣게 되니 제 영혼이 힐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또 50명 참석을 위해 기도했는데 거의 70명 가까이 참석한 모습을 보니 큰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분위기도 얼마나 화기애애하던지 이런 공기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다 끝나고 뉴스를 확인해 보고 우리 나라 축구 대표팀이 튀니지에 무려 4 대 0으로 대승을 거둔 것을 알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굳이 이번에 새로 오신 분들 중에 얼마나 성경 공부나 예배에 참여하게 될까 걱정하며 심각해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이겼지만 다음에는 클린스만 감독이 뻘 짓을 해서 대패할까 염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저 오늘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누리면 됩니다.

전도자는 오늘 우리에게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인생을 우울하게 하거나 해롭게 만드는 투자라고 말합니다.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누리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을 신뢰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가장 지혜로우신 분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우리가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을 우리의 행복을 여기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루하루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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