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다니엘

뜻을 정한 다니엘

이창무 2022. 7. 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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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러너스 캠프 주제 강의 / 이창무

뜻을 정한 다니엘

말씀 / 다니엘 1:1-21
요절 / 다니엘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어제 속초중앙시장에서 먹은 저녁 메뉴가 무엇입니까? 나의 선택을 후회하십니까? 아니면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잘못 선택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아예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뜻을 정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분산되고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러나 한 번 뜻을 정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깁니다.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을 통해서 우리도 한 가지 뜻을 정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1,2)”

유다 왕 여호야김이 왕이 된지 삼 년이 되던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공 했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오늘날 미국의 위상에 맞먹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넘사벽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약소국 유다는 마침내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다의 심장인 성전의 그릇까지 털리는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식민 통치하기 위해서 시행한 첫 번째 정책이 무엇이었을까요? 유다의 왕족과 귀족의 씨가 마르도록 모조리 다 학살하라고 명했을까요? 아니면 전부 다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서 강제 노역을 시켰을까요?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3,4a)”

느부갓네살 왕은 대제국의 왕답게 그렇게 단순 무식하지 않았습니다. 환관장에게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인재를 등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대제국을 경영하는 바벨론의 노련한 통치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원하는 인재의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왕족이거나 귀족이어야 했습니다. 즉 혈통과 가문이 좋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기본기를 갖추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을 제국의 편으로 만들면 평민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일단 장애가 있거나 지병이 있는 사람은 안 되고 신체 건강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더하여 외모 또한 출중해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몸짱에다 얼짱인 사람, 간지 폭풍을 일으키는 사람, 증세 없는 안구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셋째, 모든 지혜를 통찰해야 했습니다. 머리도 똑똑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큐 137 이상이어야 했고 수능 성적이 등급합 5 이하이어야 했습니다.

넷째,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머리만 똑똑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다섯째, 소년이어야 했습니다. 이 조건도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소년일수록 바벨론의 세뇌 교육의 스펀지처럼 흡수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먹은 사람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곤란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상당히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거의 엄마 친구 아들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여기에 선발된다면 어떤 처우를 받게 될까요?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4b,5)”

첫째, 갈대아(바벨론)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교육 받습니다. 선발된 인원들에게는 바벨론의 최신 학문과 바벨론 어를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교수님들은 제국 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학자들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 MIT에 전액 장학금으로 유학을 보내주는 셈입니다.

둘째, 왕의 음식과 왕의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제공 받습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는 서민은 물론이고 귀족들이 먹는 음식보다 레벨이 다릅니다. 조선 시대 음식에도 궁중 요리라는 별도의 장르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는 트러플(송로버섯), 푸아그라(거위 간), 캐비어(철갑상어 알)를 세계 3대 진미로 꼽는다고 합니다. 이런 고급 음식들을 날마다 먹을 수 있는 특혜가 선발 인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셋째, 장차 왕 앞에 서게 됩니다. 삼 년 코스만 무사히 마치면 장래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곧바로 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왕 앞에 서는 고위직 공무원으로 바로 임용될 수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이런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렇게 선발된 사람들 중에 누가 있었습니까?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6)”

다니엘과 세 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망했을 때 자신들의 인생도 끝장이 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그들은 제국 장학생에 선발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공짜로 유학도 하고 융숭한 대접도 받고 장래까지 보장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바벨론 제국이 패전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잘 대해 줄까요? 바벨론 왕에게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었을까요?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7)”

환관장은 그들의 이름을 고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라는 뜻의 다니엘은 벨이 보호하신다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의 하나냐는 아쿠를 두려워하는 자라는 뜻의 사드락으로, 하나님 같은 분이 어디 있느냐 라는 뜻의 미사엘은 아쿠 같은 분이 어디 있느냐는 뜻의 메삭으로, 하나님이 도우신다 라는 뜻의 아사랴는 느고의 종이라는 뜻의 아벳느고로 바뀌었습니다. 벨과 아쿠와 느고는 전부 바벨론 신들의 이름입니다. 신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을 모두 다 우상과 관련된 이름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바벨론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다 지우고 정신세계를 완벽하게 바벨론화하려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출세의 기회와 더불어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럴 때 눈 딱 감고 바벨론에서 출세하고 성공을 추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신앙 양심을 지켜야 할까요?

러너스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대부분 학교 집 교회 삼각형을 그리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학에 오면 이전에 몰랐던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로만 듣던 술 자리, 미팅, 연애 등등 신세계가 코 앞에 다가옵니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출세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부자 될 수 있는지 길이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세상은 네가 욕망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철저하게 세상의 원리와 법칙을 따르라고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버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두 분 딱 감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맞추며 살아할 것인가? 아니면 믿는 자로서 정체성을 지킬 것인가? 이런 고민 속에서 다니엘은 어떤 뜻을 정했을까요?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8)”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는 뜻을 정했습니다. 왜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자기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이유는 당시 왕이 먹을 음식은 먼저 바벨론의 신들에게 바쳐졌던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상의 제사에 쓰인 음식을 다니엘은 신앙 양심에 걸려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런 뜻을 정했기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일까요? 일단 맛 있는 걸 먹지 못하게 됩니다. 고기도 못 먹고 매일 풀만 먹어야 합니다. 아바이 순대, 만석 닭강정 다 안 됩니다. 한창 많이 먹을 나이에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하겠지만 자칫하면 왕의 특별한 호의를 무시했다는 죄목으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입니다. 설령 목숨은 건진다 하더라도 완전히 찍혀서 앞으로 출세길이 막힐 것이 뻔했습니다. 함께 끌려온 다른 소년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참 잘했다. 우리도 너와 함께 하겠다’ 이럴까요? 그보다는 “우리라고 신앙 양심이 없는 줄 아냐? 왜 너만 튀려고 하느냐?”하는 냉담한 반응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다니엘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확 바뀔 것도 아닌데 괜히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니엘 역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런 결단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왜 이런 결단을 했을까요? 거대한 바벨론의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음식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사실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 먹기로 뜻을 정하고 그 뜻을 지키는 일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붙들고자 했습니다. 만약 다니엘이 이런 뜻을 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이 흐려질 것입니다. 이름뿐만 아니라 어느새 생각과 가치관과 영혼마저 바벨론 사람과 똑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말뚝 하나가 큰 천막 전부를 지탱해주는 것처럼 이 작은 결단 하나가 믿음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 작은 결단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우리 러너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거대한 바벨론 제국와 같습니다. 세상은 돈과 쾌락이라는 우상이, 하나님 없는 문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우리에게 전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르면 잘 되게 해 줄게 라며 회유하기도 하고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거야라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 거센 압력에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굴복하기 쉽습니다. 이 정도는 뭐 어때 하면서 이번만 타협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번 타협을 하면 다음에도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내어주게 되고 믿음은 쪼그라들게 됩니다. 결국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무늬만 신자인 상태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니엘처럼 우리도 뜻을 정해야 합니다. 순교하겠다는 식의 거창한 결단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작고 아주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 때문에 잃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왜 너는 우리와 동화되지 않느냐 하는 은근한 압박이 들어올지 모릅니다. 친구와의 관계가 서먹해 질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성공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결단 하나, 작은 몸부림 하나가 나의 믿음과 정체성을 지켜줄 것입니다. 내 영혼을 살아 있게 하고 세상을 이길 힘을 나에게 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결단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군대에 가기 전에 상병이 되면 해이해져서 예배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많아진다는 말을 듣고 전역할 때까지 주일 예배를 절대 빠지지 않고 드리겠다고 결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다니엘 목자님은 직장 생활하면서 술을 안 마시겠다고 결단을 했습니다. 영업직에 있으면 술잔을 안 받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 연애 안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분위기 속에서 “No Dating”을 선언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주위로부터 압력이 매우 거세게 들어오곤 합니다. “왜 너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느냐? 분위기 깨트리지 마라.” 이런 말이 듣게 됩니다. 특히 ‘나도 교회 다니는데 네가 이러면 나는 뭐가 되냐?’는 말을 들을 때 힘이 쭉 빠집니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결단하기를 주저하기 쉽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결단하지 않으면 휩쓸려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 입사 동기 중에 타락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크리스천이었던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너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해서 별명이 천사였습니다. 그러나 일 년 만에 완전히 변해서 타락천사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정한 뜻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서서히 세상에 동화되어 갔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 러너스가 이번 캠프를 계기로 한 가지 씩 뜻을 정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타락천사가 되지 말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단한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9)”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환관장은 다니엘의 결심은 존중해 주고 최대한 들어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왕의 음식을 먹지 않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이 초췌하게 변하면 관리 책임을 물어 환관장이 징계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이 과감한 제안을 합니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12,13)”

열흘 동안 테스트를 해보고 누구 얼굴이 더 좋은 지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만약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이 더 좋으면 환관장도 더 이상 말릴 명분이 없어집니다. 도대체 다니엘은 어떤 믿는 구석이 있길래 이렇게 큰 소리를 치는 것일까요?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일단 하나님을 믿고 도전해 본 것입니다. 비록 이방 땅 한가운데 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런 것이 청년 다움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15)”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얼굴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습니다. 피부가 뽀송뽀송하고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흘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육류 위주의 고 지방 고 콜레스테롤 음식보다 채소 위주의 담백한 음식이 그들의 피부를 더 좋게 했을지 모릅니다. 다른 소년들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진 반면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에 얼굴빛이 밝아졌을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17)”

하나님은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특히 다니엘은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부여 받았습니다. 그들은 시험을 보기만 하면 항상 올 에이 플러스였습니다. 졸업할 때 그들이 나란히 전체 수석부터 사 등까지 차지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직접 졸업생들을 불러 면접을 보았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20)”

왕의 눈에도 그들의 실력은 넘사벽이었습니다. 대제국의 석학들과 견주어 보아도 전혀 꿇리지 않을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서뿐만 아니라 바벨론 땅에서도 세상 어느 곳에서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결단한 사람을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자기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속 한 가운데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작은 믿음의 결단을 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단한 우리를 도와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뜻을 정한 우리를 축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뭐라도 좋습니다. 한 가지 뜻을 정합시다. 그 뜻이 일시적으로 나를 힘들게 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그 뜻이 나를 지켜 줄 것이고 나를 축복의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믿음의 승리,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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