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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 연구 부활의 영광

이창무 2019. 4. 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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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영광

본문 / 고린도전서 15:1-58

#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으로 부르는데, 고린도전서 쓰여질 상황을 살펴보자. 바울은 2차 전도 여행때 고린도 교회가 개척되었다. 개척 후 3년 정도에 이 서신이 쓰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 내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린도 세속주의 문화가 침투하여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비도덕적인, 혼란한 신앙 생활(분쟁, 음행, 소송, 만찬 문제, 은사 문제 등)을 하고 있었다. 
# 15장에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해답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바울 스스로 먼저 꺼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이 생각한 터, 이런 문제들이 일어날 이유가 무엇인가 심층적인 문제를 발견했던 것 같다. 거짓 복음에 흔들리는 문제를 발견했다. 이 참에 부활 복음의 진리를 풍성하게 새롭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15장을 쓰게 되었다.
   

〈고전 15:1-11, 개역개정〉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V 1-4. 굳게 지켜야 할 복음의 내용
# 15장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말한다. 고린도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복음이다. 이 복음이 새로운 것인가?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과거에 전한 복음이고, 그 때 너희가 받았고 섰다고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 이미 복음을 전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대하여 전하고 가르쳤다. 이로 고린도 성도들이 믿고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왜 다시 말하는가? 왜 알게 하는가? 2절에 답이 나온다. 현재 고린도 교회의 상태가 복음을 굳게 지키지 않고 헛되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중요한 말이 헛되이 믿는다는 말이다. 헛되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나름대로 믿기는 믿는데, 그 믿음이 어떤 삶의 변화, 영향을 전혀 주지 못하는 그 상태를 말한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상태를 말한다. 믿음이 효력이 없는 그 상태이다. 믿으면 그 믿음에 따른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복음에 대하여 오해가 있고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있으나 믿음에 잘못된 것이 있을 때 헛된 믿음의 상태가 나타내지는 것이다.
#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3절과 4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이다.
# 여기서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한 앞뒤 말을 주의해야 한다. 내가 받은 것을 전한 것,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이 발명해 낸 생각해 낸 창조적인 결과물이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받은 것인가?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받은 계시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성경에 기초한 것이다. 지은 얘기가 아니다. 헛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 복음의 진리와 삶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삶에 복음적이지 못한 모습, 거룩하지 못하고, 세속에 물든 모습이 나타날 때가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원인 진단, 바울의 진단은 이렇다. 삶이 엉망진창이고 공동체의 문제가 불거질 때 우리는 어떤 처방을 하기 쉬운가? 겉에 드러난 상황으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성도의 삶 깊숙이 들어가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녹아지지 않는 문제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혼 깊은 곳에서 복음에서 멀어지고 복음에서 멀어진 것을 진단하고 전하고자 한 것이다. 빈티지 복음으로 돌아가자.

V 5-8. 부활의 증인들
# 5-11절을 바울이 얘기하고 싶은 본론은 아니다. 첫 열매인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신뢰성을 다루고 있다. 이 얘기를 토대로 예수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의 관계를 말한다.
#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다. 무엇을 통해서 부활의 증인들 목격자를 통해서 그렇다.
# 5절에 게바, 베드로가 나오고, 12 제자가 나온다.
# 6-7절은 복음서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사건이다. 500 여 형제에게 보인 사건이 나온다. 초대 교회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다고 한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못하고, 가문을 일으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후에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야고보서의 저자가 되기도 한다. 동생 야고보가 어떻게 이렇게 변화되었는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렇다.
# 모든 사도는 열 두 사도보다 범위가 넓다.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한 바울에게 보이셨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강렬한 빛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잠깐 보았다.
#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라고 표현했다. 어떤 의미인가?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는데, 부활을 목격하고 사도가 될 자격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왜 자격이 없을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이다. 이 내용도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교회를 박해하려고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박해하는 무리의 행동대장과 같은 자였다. 교회를 적극적으로 핍박하던 자였다. 이런 자가 지금과 같은 사도가 되었다.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었다. 극에서 극으로 가는 엄청난 계기 사건 변곡점이 무엇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바울에 인생에 있어서 변곡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이다. 모든 성도, 모든 제자에 있어서 그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다.

V 9-11. 부활과 바울의 인생
# 바울은 자기 얘기가 나오니까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물밀 듯이 밀려와서 한마디를 더 한다. 10절이다. 현재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현재의 바울, 현재의 나는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나이지만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의 업적이 대단하다. 이방인 선교의 시작이다. 신약 성경의 대부분의 저자이다. 복음의 체계를 이루었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 날마다 죽는 것 같은 수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 가장 큰 은혜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원동력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후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을 알고자 엄청 힘을 쏟았다. 그는 예수님을 배우고자 알고자 모든 것을 버렸다고 고백한다.
# 11절에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부활의 증인들이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이나 다른 사도들이 전파한 복음이나 동일했다. 내용이 다를 수 없다. 같은 내용의 복음을 전파했다.
#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부활의 증인에 따라 증명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서야 이렇게 변화된 삶을 없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부활은 왜 역사적 사실인가 첫째, 증인이 너무 많다. 음모일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 증인들의 변화된 삶이 증명한다. 계집종 앞에서 주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동생 야고보, 핍박자였던 바울이 그 증인이다.


〈고전 15:12-23, 개역개정〉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12-19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 12절 질문이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전파되었다. 이렇게 전파되었고 너희도 이렇게 믿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그거는 문제가 없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었는데, 그 중에 일부 성도 중에서 죽은 자가 가운데서 부활은 없다, 성도의 부활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 왜 이런 주장이 있었을까? 나름대로 논리나 주장이나 세계관으로 이런 주장을 할턴데 그것이 무엇일까? 이 당시 헬라 지역에 있다 보니까 헬라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원론 사상이 깊다.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 이런 사상이 지배하던 곳이다. 육체의 부활, 몸의 부활이 있을 필요가 없다.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낙원에 가는 것이 그들의 부활의 개념이었다. 몸이 부활하는 것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뭔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촌스럽고 투박하고 거칠게 느꼈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 부활이 세련되고 고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을 가르치는 거짓 교사가 있었다. 이에 성도들 가운데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 몸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가? 다 가정법이다. 특징이 그렇다. 만일하는 말이 계속 반복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을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모순이다.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몸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것이다. 전한 모든 것이 헛것이 되고, 그렇게 믿는 자도 거짓이 되고, 전파하는 자는 거짓말 장이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기초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복음의 내용도 헛소리가 되고 신앙의 모든 기초가 다 와르르 무너진다는 것이다.
# 또 심각한 문제가 너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사건은, 그 앞에 십자가 사건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십자가가 대속의 죽음이기 때문에 속죄의 사건이기 때문에 정말도 속죄가 이루어졌는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증거가 없다. 예수님의 부활이 죄사함을 했다는 증거하는데, 부활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자도 망한다. 예수님을 믿고 죽는 자도 부활이 없다면 망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부활을 믿기 때문에 고난의 십자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는데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장차 부활을 믿고 그런 소망 가운데 사는 데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속아서 굉장히 손해보는 인생을 사니까 얼마나 불쌍하냐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죽은 자가 망한 것이다.

20-22 부활의 필연성
# 그러나, 앞의 가정에 대한 답이다.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실제는 뭐냐? 사실은 그리스도께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의 첫열매이다. 첫열매로 비유하는 것은 기가막힌 비유이다. 첫 열매를 보면 열매가 곧 맺일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신자들의 부활한 몸이 어떤 모습인지 맛보기로 보여준다.
# 21, 22절에서 대표 원리로 설명한다. 아담으로 죄가 들어왔는데, 예수님은 제 2의 아담으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23 부활의 순서
제일 처음에 그리스도가 부활한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고 그때에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부활한다. 재림 전까지는 하늘에서 몸이 없는 영혼으로 존재한다.


〈고전 15:24-34, 개역개정〉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24-28 만유의 회복
# 24-28절까지 성도의 부활이 거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에서 필연적이다,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속 역사의 마지막 수순은 그리스도가 모든 통치과 권세를 멸하고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 계획 속에 성도의 부활이 있다. 왜 성도의 부활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마지막 날에 맨 나중에 멸망받을 대상이 사망이다. 만유를 회복하고자 할 때 만유를 회복한 이후에는 더 이상 죽음이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고자 하신 것이다. 성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 플랜 속에서 반드시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한다.
# 성도의 부활, 우리의 부활은 어떤 점에서 구속 역사에 클라이막스와 같은 정점에 이르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 이런 중요한 사건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 말이 안되는 것이다.

29-31 부활 신앙을 가진 자의 삶
# 29-31절까지는 죽은 자의 부활, 성도의 부활에 관련해서 믿는 자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를 말한다.
# 29절이 난해 구절이다. 굉장히 다양한 해석이 있다. 실제로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하여 받는 대리 세례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고 아직 육체의 생명은 있으나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세례를 받아 부활의 소망을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도 있다. 일반적으로 죽은 자들을 위하여 받는 세례는 인정하거나 긍정하거나 권장하는 취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그  배경이 무엇이냐를 언급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을 정도로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30-31절까지는 사도 바울의 자신의 삶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언제나 위험을 무릎쓰고 날마다 죽는 삶, 바울은 에베소에서는 맹수와 더불어 싸운 적도 있었다(32a). 에베소에서 있었던 격렬한 핍박을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이런 삶을 살고 있다. 치열하고 헌신적이면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바울은 왜 이렇게 사는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이렇게 열정적인 삶을 사는가? 답은 간단하다. 성도의 부활, 나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장차 내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32-34 신자가 경계할 바
# 만약에 성도의 부활이 없다면 32절에 나온바데로 내일 죽일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부활이 없다면 그게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에베소 검투사의 표어라고 했다. 언제 죽을 주 모르기 때문에 그 삶은 당연하다. 이거는 굉장히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죽으면 땅에 묻혀서 분해되고 사라지는 것이다. 영혼도 없고 부활도 없고 오직 물질만 있을 뿐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삶을 살뿐이다.
#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부활이 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현재 삶 가운데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면 주와 복음을 위해 산다. 삶과 연관이 되어 있다. 이론이 아니다. 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 삶을 좌지우지 한다.
#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에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삶을 산다. 이런 복음적인 삶을 산다. 그래서 33-34절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속지 말라고 한다. 거짓 교사는 악한 동무라고 한다. 그들을 가까이 하면 너희의 선한 행실을 더립힐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몸으로 부활해서 선악 간에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한다. 현재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부끄럽지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한다. 부활에 대하여 왜곡한 진리를 전파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깨어 주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부활의 복음을 잘못 알거나 붙들지 않으면 삶이 무너진다. 중요하다.


〈고전 15:35-49, 개역개정〉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35-44 부활의 몸
#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자가 제기할 수 있는 두 가지 예상 질문이 있다. 첫째는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며 둘째는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이다. 36절부터 44절까지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먼저 대답한다. 이런 회의를 갖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왜냐하면 창조 세계의 기본적인 섭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씨가 죽어야 살아난다. 뿌려진 씨와 거기서 자라난 식물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부활한 후의 몸이 어떤 몸이 될 것인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디자인에 달려 있다. 사람, 짐승, 새, 물고기 등 생물의 형체가 다 같지 않고 다양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디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 달, 별 등의 천체 역시 각각 다른 영광을 가지고 있다. 
# 죽은 자의 몸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시체의 소생이 아니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리크리에이션이다. 부활의 몸은 현재 몸이 가진 영광과는 다른 영광을 지니게 된다. 현재 몸은 소멸하지만 부활의 몸은 소멸하지 않는다. 현재 몸은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져 있고 죄의 유혹에 취약하지만 부활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고 죄의 유혹을 이기는 강한 몸이 된다. 육의 몸이 확실히 존재하듯이 신령한 몸도 확실히 있을 것이다. 

45-49 부활의 원리
# 45절부터 49절까지 35절에서 제기했던 첫번째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땅에 속한 아담과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를 대비한다. 아담은 단순히 생명 있는 존재(프쉬케, Soul)였던데 반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프뉴마, Spirit)이시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창조 때 아담의 몸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완성된 종말의 몸(하늘의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된다. 우리가 입을 몸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과 같을 것이다.
# 왜 성도의 부활, 몸의 부활을 부인했을까? 왜 그렇게 뜨겁게 사모하지 않았을까? 부활의 영광을 너무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현재 삶의 연장 정도로 생각했다. 약한 몸, 죄많은 몸이 계속 된다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부활의 영광이 엄청나다. 클래스가 달라진다. 상상 이상이다. 우리가 부활을 너무 시시하게 만들고 있다. 뜨겁게 부활의 소망을 붙들어야 한다.

 

〈고전 15:50-56, 개역개정〉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0-53 부활의 비밀
# 살아 있는 사람이든(현재 상태의 혈과 육) 죽은 사람이든(썩는 것)은 현재의 상태대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 부활의 몸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면 언제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가? 바울은 이제 종말에 관련된 비밀을 한 가지 말하고자 한다. 나팔 소리로 상징되는 그리스도 재림 시에 극적이고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 있는 자들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바로 새로운 몸으로 변화하며 동시에 죽은 자들 역시 썩어진 몸의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몸으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영화라고 부른다. 새롭게 변화될 몸은 더 이 이상 죽음에 굴복당하지 않을 몸이다. 
# 이 일이 순식간에 홀연히 오게 될 것이다. 일어날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미리 알 수 없다.

54-56 부활의 승리
# 바울은 사망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선포한다. 54절은 이사야서 25장 8절의 인용이다. 사망에게 사망 선포를 하게 된다. 55절은 호세아 13장 14절의 인용이다. 사망은 더 이상 자기 승리를 자랑할 수 없으며 더 이상 고통스럽게 쏘는 능력도 상실했다. 사망의 파괴력은 예수님의 부활로 사라졌다. 
# 현재 죽음은 죄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죽음은 죄를 통해 세력을 확장해 왔다. 율법은 죄를 오직 죄로 알게 한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은 절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활은 곧 죄를 이기는 것이요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길이다.

 

〈고전 15:57-58, 개역개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57 바울의 감사 제목
#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에 감사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게 하셨다. 주신다는 말이 현재형으로 지속적인 반복의 의미가 있다. 지금 현재 삶에서 우리는 승리를 체험할 수 있다.

58 바울의 권면
#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의 핵심인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동요하고 있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부활 진리 위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말도록 당부한다. 여기서 주의 일이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것, 교회를 세우는 것을 뜻한다. 바울의 직무이기도 했지만 고린도 모든 성도들의 직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기 떄문이다.
# 이런 권면을 하는 근거는 그들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알기 때문이다. 수고가 헛되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의 일에 힘쓴 자들에게 칭찬하시고 상급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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