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예배와 설교

찬양팀 대담 - 안암골 찬양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이창무 2019. 2.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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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제목이 안암 찬양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인데요 어제와 오늘을 묶으면 변화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내일이란 단어에서는 비전과 개선점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 동안 찬양팀을 섬겼던 분이 여러 분 계셨는데요 정인주 목자님도 있고, 장 디모데 선교사님, 송 대장(운화) 목자님, 전 원재 목자님, 김 민성 선교사님, 박 권순 선교사님 등등 여러 분이 계셨습니다. 인도자의 마인드 변화가 찬양 역사의 변화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싱얼롱이 아니라 찬양과 경배라는 개념의 변화가 가장 큰 변화라고 봅니다.


송 : 인도자의 마인드의 변화라기보다는 안암골 전체적인 찬양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찬양팀에 대해서 이루어졌던 찬양에 관련된 성경 공부나 세미나 등이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문 : 찬양의 개념의 변화가 주일 예배, 여름 수양회 찬양 등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고 열매가 있었다고 봅니다.


송 : 찬양 시간이 예배 순서 안에 들어간 것이 참 감격스럽습니다. 예배 중에 찬양 드린 그 날을 잊을 수 없어요. 너무 감동스러웠어요. 온 회중이 다 함께 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이 큰 은혜가 있었어요. 회중석에 앉아 계신 목자님들도 아마 감동을 느끼셨을거에요.


문 : 한 사모님이 여름 수양회 전에 심령에 힘든 일이 있으셨고 근심과 짐이 마음에 있었데요 그런데 찬양 시간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터치를 느끼셨다고 해요.


이 : 그런 예는 또 있어요. 홈페이지에 올라 온 내용이기도 한데요 명 인숙 사모님께서 주일 예배 찬양 중에 '주품에'라는 찬양을 부르시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품으시는 사랑을 느끼셨다고 해요. 그 주에 아버지 수술이 잘 되고 복음에 마음 문을 여는 역사가 있었다고 하네요. 한 양은 지역 교회 예배로 갔다가 찬양이 썰렁해서 다시 저희 예배로 왔다는 사례도 있어요. 저는 참 믿겨지지 않은 놀라운 일이에요.


송 : 전 2006년도 예배 왔을 때 앞에서 찬양 인도하시는 분들이 너무 안스러웠어요.


이 : 맞아요. 제가 봐도 참 안스러웠어요.


송 : 지역 교회 생활을 안 하셨는데도 이 창무 목자님은 교회 생활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이 : 지역 교회를 군 생활하는 동안 한 2 년 정도 경험해 봤죠. 주일에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죠. 그런 생활이 경험이 되었구요 또 다른 중대에 있는 군종병들과 교제가 큰 영향을 주었어요. 사실 저는 UBF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요 군종병들을 겪으면서 그런 게 다 깨졌어요. 그분들이 너무 훌륭해서 배우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지역 교회에 계신 집사님들, 장로님들의 탄탄한 신앙을 배웠어요. 누가 우월하고 잘 나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사람을 쓰신다는 걸 배웠죠. 그런데 군대 교회에 찬양을 많이 해요. 너무 생활이 힘드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활에 이년 정도 젖어 있다가 안암에 오면 너무 찬양이 썰렁하다는 걸 느끼죠. 그래서 이 찬양을 뜨겁게 함께 해 보고 싶은 소원이 생기게 되요. 그런 분들이 아까 언급하신 정 인주 목자님이나 그런 분이 해당한다고 봅니다. 박권순 목자님도 비슷한 경우일 거에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한 일년 정도 하다가 지치는 경우가 많았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바뀌지가 않는거에요. 사실 위로 학사 목자님, 사모님들이 층층히 많은데 영향력을 끼치기가 쉽지 않죠. 그러다가 지치는 거에요. 제가 2007년도에 찬양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학사 목자가 나서야 찬양을 살릴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응답하게 된 거죠.


문 : 목자님이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다른 분들이 알고 계셨나요.


이 : 제가 학창 시절에 찬양 인도를 한 적은 있어요. 그러나 군대 간 이후로 한 적이 없어서 아마 잘 모르셨을 것 같아요. 김 모세 목자님은 잘 아시죠. 박 권순 목자님이 선교사로 가시면서 기초를 다져 놓은 찬양 역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서 사무엘 목자님이 조금은 파격적인 제안을 한 셈이죠.


문 : 맞아요. 저도 처음에 목자님 이름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이 : 그 전부터 죽 섬겨 오던 특송 역사 때문에 자연스럽게 찬양의 최근 흐름에 접하고 있었고 우리 모임의 찬양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죠. 저는 처음부터 한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그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찬양의 목적을 바로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 동안 우리 모임 찬양의 목적이 주로 모임 시작 전에 분위기를 띄운 것, 워밍업 같은 것이었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젊은이들 즉 학생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 정도로 이해해 왔었어요. 그래서 왜 찬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마지 못해 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건 잘못된 것이죠. 찬양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알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피조물의 반응이 찬양이고요 찬양이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하고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고 감사하고 송축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찬양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죠. 하나님이 찬양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유익과 은혜가 큰 데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생각해 보지 못한 분들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우리 안암골이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있기 때문에 찬양에 마음이 열리면 순식간에 변화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런 변화의 시점이 금방 오리라고 생각은 안 했고요 조금씩 변화하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돌이켜 보니 제 기대보다 훨씬 빨리 변했어요.


송 : 맞아요. 맞아요. 우리가 놀랄 정도로 빨리 변했어요.


이 : 주일 예배에 찬양이 들어가는 것도 우리 끼리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반신 반의 했었잖아요.


문 : 2008년 12월이었죠. 미스터왕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요.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그런 마음이었죠.


이 : 근데 그 이야기 나온 후 그렇게 오래 안 걸리고 이루어 졌어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2부 개척이 이뤄지면서 1부 예배가 변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예배가 변화 없이 그대로 갔으면 아마 어려웠을거에요.


문 : 한양 센터의 예를 김부영 목자님이 말씀하신 것도 힌트가 되었죠.


이 : 아 그건 김부영 목자님이 아니라 저희 회사에 같이 일하는 한양 센터 목자님이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그분을 뵈러 한양 센터 주일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충격을 좀 받았죠. 찬양을 대표 기도 후 세곡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우연히 제 옆에 계셨던 한국 대표이신 이 사무엘 목자님이 가장 열심히 찬양을 하시더라구요. 한양 센터가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예배가 새롭게 될 때 한양 센터 예를 든 것이 우리 목자님이 수용하는데 참고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수양회에 넷째날 찬양할 때 오십분 동안 찬양했잖아요? 그것도 새로운 시도였어요. 찬양만 오십분 동안 한 파격적인 시도였죠. 과연 이런 시도가 수용될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제안했으니 감사하게도 모두 호응을 해 주셨어요. 이 때 제 바람은 찬양 자체로 은혜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함께 경험해 봤으면 하는 것이었요.


송 : 그 때 기억나는게요. 제가 건반을 치는데 제 손이 제 손 같지 않았아요. 건반 치는 제 손이 전혀 의식되지 않았어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찬양에 몰입하니까 그랬었나요. 영과 영의 만남이 있었어요. 듣고나니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 찬양을 주시기 위해 섬세하게 배려하셨는 생각이 들어요. 예배의 변화 시점도 그렇고 한양 센터 예배를 접하게 하신 것도 그렇구요.


이 : 사실 그 때 저로서는 결단의 순간이었어요. 이 상태 그대로 가면 없애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오히려 반전이 일어나고 말았죠. 또 하나는 찬양이 찬양 자체로 끝나지 않고 기도 운동을 일으키는 역할에 기여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인 금요 기도회인데요. 금요기도회를 하면서 찬양을 하고 뜨겁게 통성으로 기도를 했죠. 통성 기도가 우리 모임에서 생소한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죠.


송 : 맞아요. 우리 찬양팀의 비전에 기도를 꼭 넣어야 할 것 같아요. 찬양의 유익이 말씀과 기도와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문 : 저는 금요 찬양 체험기를 쓰면서 은혜의 마중물이 찬양 시간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요. 찬양이 우리가 낮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뜨겁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하는 은혜의 마중물이라고 생각해요.


이 : 찬양팀이 기도를 섬긴 것이 너무 감사해요. 다른 사람들을 도운 점이 있지만 먼저 저희가 기도를 많이 배우게 되었어요. 찬양 섬기느라고 억지로라도 기도하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금요 기도회에 위기가 많았어요. 초기 멤버 중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빠지게 된 분들이 많았구요. 그래도 꾸역 꾸역 하다가 2부 개척과 함께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지게 되었었는데요. 거기다가 TGIF 가 생겨서 많은 분들이 못 오셔서 참석율이 많이 저조해 졌었어요. 저는 여기서 폐지하든지 아니면 확산시키든지 결단을 해야 할 순간이라고 느꼈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김 모세 목자님께서 화요 찬양 기도회로 모두가 참여하는 기도회로 섬겨 주시기로 하셨어요. 덕분에 여름 수양회를 위해서 뜨겁게 중보하게 되었죠. 2부는 또 2부 대로 수요 예배를 통해서 금요 기도회가 잘 계승된 것 같아요. 이런 변화에 찬양 역사가 맞물려 돌아간 측면들이 있어요.


송 : 찬양이 있어야 통성 기도가 되는 것 같아요. 갑자기 기도로 몰입하기가 쉽지 않아요.


문 : 소리 내서 기도하는 것이 유익한 것 같아요.


이 : 소리 내서 기도하는 것이 교회사 전체에서 보면 보편적인 기도였어요. 묵상 기도는 오히려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구요. 시편에도 보면 부르짖는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잖아요?


송 : 근데 참 희안한게 금요 기도회에 오시는 분들보면 대부분이 자매 목자님이나 사모님이 많아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지역 교회도 그래요.


이 : 그것 참 이상해요. 왜 자매가 많은지 늘 궁금했어요. 왜 그럴까요? 박준길 목자님!


박 : 아 예 허허허 글쎄요. 허어..


송 : 남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형제는 울면 창피하죠? 호호호 . 형제들은 자기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큰 것 같아요. 어린아이처럼 때 쓰고 붙들고 매달리는 것을 형제들은 어색해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박준길 목자님! 지역 교회 다닐 때도 기도회 때 그랬죠?


박 : 제가 안 나가 봐서 잘 모르겠어요.


송 : 거 봐요. 형제들이 안 나가잖아요. 전 나갔거든요.


이 : 우리가 앞으로 방향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문 : 사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찬양에 대한 마인드와 철학을 가지고 또 다른 목자님들과 협력하면서 조율하면서 섬길 수 있는 리더가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 김 병준 목자님이 차세대 주자인데 찬양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 저는 전에 다니는 고향 교회에서 한 전도사님이 찬양 역사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셨던 모습을 보았었어요. 그 분이 찬양으로 세우는데 약 4 년이 걸리시더라구요. 방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멤버들이 교육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예수전도단 화요 모임, 어노인팅이나 다리 놓는 사람들이 대구에 교육하러 오실 때나 옹기장이 선교단이 강의하실 때나 이럴 때 열심이 배우러 다니곤 했었어요. 우리가 먼저 마인드가 있어야 된다는 방향이 있었어요. 하스데반 선교사님 집회가 기억에 남는데요. 일곱 시간 정도 밥도 안 먹고 연속으로 찬양하는 것이 예사였어요.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이 곡은 즉흥적으로 지으신 곡이에요. 이 한 곡 가지고 두 시간 동안 찬양을 했었어요. 다윗의 장막 집회에도 간 적이 있구요.


문 : 외부로도 채널이 열린 리더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김 : 고향 교회 전도사님의 특징이 처음에 나이 많이드신 분들에게 맞추어서 찬양을 준비했어요. 그렇게 해서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에 점점 새로운 곡을 도입하기 시작했었어요.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내부적으로 교육이 많이 필요한 것 같구요, 시니어 목자님들의 코드를 발견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찬양을 하면 좋겠네요.


이 : 제가 보기에 우리 시니어 목자님들의 코드는 찬송가인 것 같네요. 앞으로 찬양팀에서 찬송가도 많이 부르는 걸 고려해 봐야겠어요. 그리고 우리 예쓰 찬양팀 초반에는 교육을 많이 했었어요. 말씀 공부도 하고 세미나도 하고 벤치 마크도 하고 그랬어요. 한 동안 못했지만 다시 해 볼 필요가 있겠어요.


김 : 이 창무 목자님이 선교사로 가시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죠?


이 : 글쎄요. 아직은 오리 무중인데요. 저는 제 뒤에 맡아 줄 분도 학사 목자님 중에 한 분이 맡아 주셨으면 해요. 그 분 존재 자체로 중심이 잡히고 믿음이 생기죠. 젊은 목자님이 하시면 좋긴한데 중심을 잡고 이끌어 나가기가 쉽지 않죠.


송 : 이 문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봐요.


김 : 이 창무 목자님은 우리 모임에서 찬양 역사가 견고히 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세요?


이 : 우리 모임은 늘 말씀 중심으로 갈 수 밖에 없으리라고 봐요. 핵심 역량이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핵심 역량만 존재하면 불구가 되죠.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고 찬양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찬양의 본질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경축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는 기쁨과 감격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이 살아나면 되죠.


김 : 저도 여러 가지 방법들을 다 겪어 봤는데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더라구요. 방법만 있으면 나중엔 허무해 지더라고요. 옹기장이 백승남씨가 하신 말씀이 찬양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내가 찬양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회중이 찬양을 통해 영과 영이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는 찬양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가 어떻게 서고 있는가가 더욱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 음악적 재능이나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경배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게 훨씬 중요해요. 기존에 노래를 잘 하고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음악성이 있는 사람을 위주로 세우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또 실패의 큰 이유 중 하나가 외적으로 드러나는 찬양의 모습에 얽매인 경우가 있어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가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려는 목표를 두고 찬양을 이끌어 가려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하면 그 목표를 설령 달성한다고 해도 허무할 뿐이에요.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보니 찬양 인도자 모임에서는 인도를 잘 하는데 자기 교회에서는 인도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냐 하면 사람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헷갈리기 시작해서 그래요. 가끔 보면 그래서 인도자가 회중을 꾸짖는 경우를 보는데요.


송 : 드물게 있어요.


김 : 하스데반 선교사님도 일어나 하고 꾸짖은 적이 있어요.


이 : 집에 가라고 하는 인도자도 있더라구요. 이런 인도자는 주로 자기가 집에 가게 되죠. 찬양의 변화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고 멈추시는 곳에 멈추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변화도 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에요. 기묘하게 인도하셨죠 . 정말. 내 욕심과 바램대로 이끌어가려는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성령의 인도를 잘 따라가면 누가 하든 잘 될 것이라고 봐요.


송 : 마음에 떠오르는 계승자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같이 기도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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