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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의 집에 있는 교회
    설교/로마서 2018.01.17 20:55

    저의 집에 있는 교회


    말씀/ 로마서 16:3-5

    요절/ 로마서 16:5a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우리는 믿음으로 결혼하고 가정 교회를 이룹니다. 가정 교회는 누구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튀어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라 성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사가랴와 엘리사 벳 등등 여러 가정 교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 가정 교회들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 교회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가정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가정 교회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가정 교회의 좋은 모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3절부터 16절까지 바울이 로마 교회에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문안 인사를 부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브리스가는 브리스길라의 애칭입니다. 그러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남편 아굴라는 본도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아굴라의 이름보다 앞에 나옵니다. 여기뿐아니라 성경에 이 부부가 모두 일곱 번 언급되는데 그 중 다섯 번 브리스길라가 먼저 나옵니다. 학자들은 이를 볼 때 브리스길라는 로마의 귀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천막을 제조해서 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본래 로마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전도자를 만나서 부부가 모두 복음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후49년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에 의해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역시 천막 만드는 일을 하던 바울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처음 왔을 때 외로웠고 두려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돈도 없었습니다. 동역자도 없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지지를 해 준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부였습니다. 부부는 바울과 천막 사업을 동업하며 물질로 지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복음 전파 역사를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이들 부부가 없었다면 바울의 고린도교회 개척 역사는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헬라의 고린도를 떠나서 소아시아의 에베소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터전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바울을 돕기 위해 기꺼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서도 함께 동역했습니다. 에베소에서 그 유명한 설교자 아볼로를 발굴하여 키운 사람이 바로 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였습니다. 주후 54년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유대인 추방령이 해제되었을 때 그들은 다시 로마로 돌아가 당시에는 로마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바울은 그들을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동역자라고 부른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디모데, 디도, 마가, 아리스다고, 누가,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이렇게 일곱명이 전부입니다. 이 중에서 바울의 선교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유일합니다. 말하자면 바울을 비롯한 다른 동역자들은 풀타임 사역자였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평신도 사역자였습니다. 둘이 처한 형편과 입장이 다르다보니 때로는 관계가 삐걱거리거나 파열음을 낼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로 싸우고 갈라서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 사이가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서로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고린도에서 양들이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냥 동역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이들 부부를 호칭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적인 관계성이 기초해서 동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역했습니다. 서로 복음의 말씀에 기초해서 기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가운데 영적인 관계성을 맺으며 동역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권위를 존중하고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역량 있고 열매 맺는 사역자로 양육하고 세워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맺은 동역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는 바울의 생명을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이 말을 두 가지 시각에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위험까지도 무릅쓸 정도로 매우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으로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바울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처형당할 위험에 있었던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바울이 그들의 헌신적인 동역에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부에게 바울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들도 계속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는 바울의 생명을 구해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감사하느니라는 말이 현재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헌신이 여러 교회에 적지 않은 은혜를 끼쳤던 것 같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복음을 위해 영육 간에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이 이방인의 여려 교회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영향력 있는 평신도 가정이었습니다.


    우리 모임의 선교 역사는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을 수 있을 것처럼 헌신적이었던 가정들이 이루어 온 역사입니다. 가정을 이룰 때부터 선교를 위해 헌신한 가정으로서 비전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계 각처에 나간 선교 가정들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개척 역사를 일구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 , 인도네시아, 멕시코 곳곳에 계신 선교사님들이 다 그런 분들입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세계 선교뿐만 아니라 캠퍼스 제자 양성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캠퍼스 제자양성도 브리스길라 아굴라 같은 헌신적인 가정들이 이루어 온 역사입니다. 또 이런 가정들이 하나의 본이 되고 모델이 되면서 후배들이 닮아가고 따라하고 배우고자 하면서 이어져 온 역사입니다. 많지 않아도 한 두 가정만 있어도 그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같은 가정들이 세워지고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저의 집에 있는 교회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집에 모이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들 부부가 자신들의 가옥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와 친교, 또 선교의 장소로 제공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이 부부의 집을 모임 장소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위한 따로 구분된 독립 건물이 없었습니다. 예배와 모임은 모두 개인 소유의 집에서 가졌습니다. 빌립보 성의 루디아도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작은 가정 교회들에서 매주 규칙적인 예배와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있던 이런 가정 교회들이 연합하여 전체 교회로서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였다고 합니다. 로마 교회 안에서는 이런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가정 교회 같은 교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적어도 주후 3세기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복음의 생명력이 넘치고 믿음이 살아있던 시기가 바로 가정 교회로 모이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과연 우연일까요?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본래 도시 국가의 시민들이 모이는 대중 집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단어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기초해서 탄생한 성도의 교제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절대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동체성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 공동체의 구성원 수가 많아지면 상호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이 약해집니다. 점점 더 공동체성을 경험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성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소그룹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공동체의 모델이 바로 가정 교회입니다. 왜 집에서 모이는 교회가 중요한가 하면 집이라는 공간만이 줄 수 있는 가족과 같은 보살핌과 따뜻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대 교회에서 집에서 모이는 교회는 사실 상 교회의 모든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예배도 드리고 성경 공부도 했습니다. 전도하여 양을 초대하여 식탁 교제를 나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나서 교제만 한 것이 아니고 작은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가정 교회라 불리우는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이던 교회와 오늘 우리와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우리 모임의 요회가 아닌가 합니다. 현재 한 요회에는 네 가정 또는 다섯 가정이 속해 있습니다. 이 정도 인원이라면 한 집에서 다 모일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한 요회가 전부 다 모이는 때는 주일 예배 후 가지는 요회 모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요회가 요회 모임을 집에서 하지 않고 센터에서 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제가 속한 열린 요회만 집에서 요회 모임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린 요회도 조금 집이 먼 한 가정이 식사를 섬기는 주에는 센터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같은 구성원인데 집에서 모임을 할 때와 센터에서 모임을 할 때 분위기가 다른 것을 느낍니다. 집에서 할 때는 정말 가족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속에 있는 말도 저절로 술술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센터에서 할 때는 아무래도 주변에 다른 요회가 많아서 약간 경황이 없습니다. 또 서로 거리감이 조금 더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전에 소망 요회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고 요회 모임은 집에서 하는 것을 철칙처럼 여겼기 때문인지 센터에서 대부분 요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좀 아쉽습니다. 마음은 집에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정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집이 너무 먼다든지 너무 좁다든지 다른 가족들의 반대가 있다든지 하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도 요회 식구들이나 양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자녀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집을 열어서 동역자들과 양들을 섬기는 것이 목자의 본분이며 기쁨이라는 사실을 그때마다 반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서로 집에 왔다 갔다 하다보면 금방 친해집니다. 집에 한 번 가보면 그 사람의 사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즘 사회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오픈하여 동역자와 양들을 섬기는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의 전통이요 우리 모임의 전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좋은 전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가정 교회를 이루어야 할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는 자비량 선교사를 양성하여 파송하는 방식으로 세계 선교를 감당해 왔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것만이 지닌 강점이 상당히 큽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각 가정이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대부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회 단위에서 전도, 말씀, 양육, 교제 등등을 자립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교지에는 안암1부처럼 큰 센터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우리의 요회 정도 규모이거나 그보다 더 작은 곳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요회나 가정이 자립적으로 제자 양성을 이룰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선교지에 나가더라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성서한국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회가 교제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제가 중요하지만 요회도 하나의 작은 교회로서 말씀과 양육과 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 사람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 교회가 가장 모범적인 가정 교회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헌신적으로 동역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자기 집을 오픈하여 친밀한 공동체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이 가정이 교제뿐 아니라 전도와 양육까지 하는 작은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부끼리 알콩달콩 잘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우리의 목표점은 아닙니다. 그냥 가정이 아니라 가정 교회입니다. 우리는 알콩달콩 잘 살 뿐만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같은 가정 교회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가정 교회들을 많이 세워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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