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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스토트의 제자도
    목양/캠퍼스 선교 2016.12.22 22:07

    다음은 존 스토트의 저서 제자도의 요약입니다.


     


    머리말: 그리스도인인가, 제자인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복종할 영역을 우리 마음대로 고를 권리가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변함없는 8가지 핵심자질을 살펴보자


     


    1. 불순응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다원주의, 물질주의, 윤리적 상대주의, 나르시시즘의 거센 도전 앞에 다원주의에 맞서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옹호하는 진리의 공동체로, 물질주의에 맞서 검소한 순례자의 공동체로, 상대주의에 맞선 순종의 공동체로, 나르시시즘에 맞서 하나님과 이웃을 힘껏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2.닮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며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요한일서 2:6). 그분의 성육신, 죽기까지 섬김(어떤 굴욕적인 일이라도), 사랑의 삶(자신을 내어주는), 오래 참으심, 선교의 사명을 닮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는 고난을 통해 그분을 닮아가는 고난의 신비, 말보다 분명하게 변화된 인격을 통해 전달되는 전달 되는 복음전도의 도전, 성령으로 충만하게 만드사 예수님처럼 살게 도우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3.성숙


    성경적, 신학적 깊이가 없는 성장에 대한 안타까움. 신앙 안에서의 참된 성숙은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신뢰하며,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성숙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러한 성숙은 만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바른 시각을 필요로 하며(골 1:15-20) 이러한 시각은 성경에서 나온다(요 5:39).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숙은 주의 자녀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요청된다.  이 일을 위해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활력을 따라 전심전력해야 한다(골1:29).


     


    4. 창조 세계를 돌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은 신음하며 새 창조의 순간을 기다리는 이 땅과 이 하늘에 대한 관심과 책임 또한 동시에 있다. 땅은 여호와의 것(시24:1)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다(시115:16).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을 신격화 하는 일을 피하고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을 착취하는 대신 책임 있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자연을 통해 새롭고 건강한 문화를 창조해내야 한다. 세계인구의 증가가 가속화 되고 지구자원이 고갈되고 있으며, 넘쳐나는 쓰레기와 폐자재들, 현격한 기상변화는 인류의 위기를 가져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이 땅에 대한 관심, 낭비 대신 절약을, 검소한 생활방식으로 삶을 통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과 그 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임을 신실하게 드러내야 한다.




    5. 단순한 삶


    새로운 생명을(life) 얻은 사람은 새로운 삶(life-style)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그분의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억압받고 있는 이들, 혹은 구원의 복음도 없고 인간적인 삶을 위한 기본 생필품조차 없는 수십억의 사람들을 위해 “단순한 삶에 대한 복음주의의 언약”을 실천하며 살아야 마땅하다.


     


    6. 균형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그대들의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는 그 시간을 견고하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가족)로서의 교제와 교회를 배우고 body-life를 살아야 한다. 또한 참된 전천후 예배자로 살아야 하며 증거의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나아가 제자들은 이 땅에서 하늘에 속한 거류민과 나그네로 살며, 하나님을 향해 가는 순례자로서 이 땅에서 양심적인 하나님의 종, 좋은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한다면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7. 의존


    굴욕은 겸손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전적인 무력함의 심연을 파헤쳐 보았다면 자신감의 언덕을 오르는 일은 불가능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것은 성숙이 아니라 미성숙의 표시이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의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보살핌과 보호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다른 사람이 우리를 의존하는 인생의 단계를 거쳐,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심지어 그리스도께서도 갓난아이로 태어나 살다가 죽으심으로 전적으로 피조물의 짐이 되신 적이 있다. 하나님을 의존하고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8. 죽음


    성경은 죽음을 생명의 끝이라 하지 않고 생명으로 나아가는 문이라고 한다. 참된 생명을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할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 된다. 성경이 약속한 생명을 죽음을 통한 것이  맞다.


     구원


    구원은 생명을 얻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과의 교제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또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한 후에도 변함없이, 더 깊고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땅에서 지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사귐은 그 소박함과 평범함, 밋밋함에 비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며 그분의 죽으심으로 인해 살아있는 자이다.


     제자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의 풍경은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사형틀을  자신이 매고 형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안다. 저 사람은 이제 죽는 구나.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면 그 종착지는 죽음의 장소다. 본 회퍼는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 그분은 그에게 ‘와서 죽으라’고 명하신다. 그러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과  제자도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또한 죄를 죽이는 삶(mortification) 역시  옛 자아, 본성을 죽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주님은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셨다. 우리에겐 죽음으로 이끄는 종류의 죽음이 있으며 또한 생명으로 이끄는 죽음도 있다. 오웬은 죄 죽임에 대해 말하기를 ”죄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나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죄를 죄로 미워하게 하는 것이 모든 진정 영적 죽이기의 기초다”라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 근거 없이 자신에게 평화를 말하는 큰 죄를 피해야 하며 그러한 철저한 죄 죽임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령 없이 진정으로 죄를 죽이는 것보다는 눈 없이 보거나 혀 없이 말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선교


    구약이든 신약이든 선교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설명과 행위가 가능해진다. 나 죽어 너 살리는게 예수님의 선교였다면 우리의 선교 역시 그래야 하지 않는가? (고후 4:12)


     박해


    전세계 60여개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신앙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당하고, 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고, 처형당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경험하는 신체적 고난을 통해 복음은 자라고 전해진다.


    순교


    요시프 톤, “당신의 최대 무기는 죽이는 것이나 나의 최대 무기는 죽는 것입니다.”


    본 회퍼, 사형선고를 받고, “이것으로 끝이다.하지만 내게는 생명의 시작이다”


     


    유한성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도 유익함은 ….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가 깊은 만족을 가져다 준다면 하늘에서 모두 함께 드리는 예배는 훨씬 더 황홀할 것이다.


    *성경을 펼칠 때마다 우리 가슴이 뜨거워진다면 모든 진리는 훨씬 더 감동적일 것이다.


    *지금 일몰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흥분시킨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떨까?


    *지금 타 문화권에 있는 이들과의 교제가 우리를 감동시킨다면, 우리 모두가 마침내 함께 모였을 때 모든 족속과 언어로부터 온 큰 무리가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끔씩 인식한다면 우리는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을 곳에서 그것을 훨씬 더 자주 누리리라 기대한다.


    최고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결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 13:13)


    그분이 나의 선생이요 주님이라면


    도대체 나는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따르고 순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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