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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
    설교/시편 2016.12.14 19:53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

    말씀 시 141:1-5

    요절 시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저는 한 분과 매주 시편을 공부해 오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시편 공부 한 지 벌써 삼년이 지났습니다. 매주 시편 공부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제가 먼저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은 최근에 공부한 시편 중에서 가장 큰 감동이 있었던 시편 141편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간과하기 쉽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도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어딘가 긴박한 느낌이 들고 긴장감이 들지 않습니까? 마치 집에 불이 나서 다급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하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시인은 현재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을 만난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소리가 작아 못 들으실까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앰블런스처럼 ‘삐뽀 삐뽀’ 경광등을 켜시고 속히 오시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현재 어떤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9절을 보면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를 볼 때 시인은 현재 악인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는 본문만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의 저자가 다윗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유추해 볼 정황이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니던 상황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압살롬의 반역 이후 피난을 가던 시절일 수 있습니다. 둘 중 언제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압살롬의 반란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2절을 보십시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여기서 손을 드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기도 자세입니다. 이 구절은 나의 기도가 주 앞에 분향과 제사와 같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당시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매일 향단에서 향을 피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또한 저녁마다 번제를 드리면서 짐승의 기름을 태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향의 연기는 흩어지거나 땅으로 퍼지지 않습니다. 똑바로 위로 올라갑니다. 번제의 향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곧바로 하늘로 올라갑니다. 기도가 분향과 제사와 같게 해달라는 말은 ‘내 기도가 하나님께 직행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말은 대통령에게 직행할 수 없습니다. 혹시 비선실세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중간에 있는 보좌관들에 의해 다 막히고 맙니다. 그래서 이번에 촛불을 든 백만이 넘는 시민들이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진출하여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아마도 청와대 안에 있던 대통령도 그 외침 소리를 직접 들었을 것입니다. 저 하늘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가 직행할 수 있을지 염려가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못 들으시면 우리를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사도 요한이 하늘의 예배를 보니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향기가 되어 하늘에 닿게 될 것입니다. 금 대접에 담겨 하나님 앞에 놓여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향기를 빠짐없이 흠향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의 기도로 향기로운 제물을 주 앞에 올려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시인의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시인은 자신이 악인들과 닮아가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사람이 악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기 쉽겠습니까? 악인들이 너무 미워서 저주의 말을 쏟아 부어주고 싶어집니다. 악인들을 욕하고 실컷 조롱해 주고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 억울하게 분하여 원망과 불평의 말들을 쏟아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악인들의 악에 자극을 받아서 나 자신이 또 다른 악에 빠지는 길입니다. 입술로 범죄하는 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간구합니다. 내가 입으로 범죄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달라고 하나님께 청원하고 있습니다. 또 4절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악인들은 처음에는 못살게 굴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회유를 합니다. 형사들이 범인에게 자백을 받아낼 때 이런 방법을 쓰곤 합니다. 처음에는 악역을 맡은 형사가 취조실에 들어가 범인을 윽박지르고 위협합니다. 잠시 후 그 형사가 나가고 다른 형사가 들어와 담뱃불도 붙여주고 설렁탕도 먹여줍니다. 마음이 풀어진 범인은 술술 다 불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악인들이 은근히 회유를 해 오고 진수성찬을 같이 먹자고 부를 때 이를 뿌리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악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결국 같은 악을 저지르는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맙니다. ‘악과 싸우다 보면 점점 더 악의 얼굴을 닮아가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시인이 악인과 자신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비록 선인과 악인이 구별이 될 수 있지만 선인도 언제든지 타락하여 악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과 대결하는 과정 중에 나도 모르게 악인의 스타일과 그들의 말을 닮아갈지도 모릅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정국을 보면 선악의 구도가 분명해 보입니다.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은 5%에 불과하고 부정적 의견이 90%가 넘습니다. 언론에서는 각종 비리 의혹들이 캐도 캐도 끝이 없는 아카시아 나무 뿌리처럼 계속 파헤쳐 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죄를 저지른 자는 법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악행을 일삼은 자들은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성도들은 함부로 입술의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끔 지나친 욕설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질과 상관 없는 인신공격에 열을 올리는 모습도 봅니다. 이런 반응의 배경에는 나는 너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나도 그런 위치에 가면 언제든지 같은 악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죄인입니다. 악한 자를 처벌하는 것 못지 않게 나도 그런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조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악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같은 시국 속에서 자칫 입술로 죄를 짓지 말고 정결함을 잘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시인은 책망을 은혜로 여길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악과 싸우다 보면 점점 더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 내게 충고하거나 책망을 하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기 쉽습니다.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데 왜 기운을 빼는 소리를 하느냐며 도리어 화를 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의인의 책망을 은혜로 여기겠다고 결단합니다. 누군가 내게 쓴 소리를 하면 이 소리를 머리를 윤택하게 해 주고 머리에서 향기가 나오는 기름처럼 기꺼이 맞이하겠다고 결단합니다. 이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못했을 때도 충고나 책망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잘 하고 있을 때 충고나 책망을 하면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겠습니까? 하지만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을 때에도 항상 충고와 책망에 마음을 열어 놓은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가 옳다는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다가 망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열 가지 중에 아홉 가지가 옳을지라도 한 가지 잘못된 일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지적해 주는 사람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는 그 동안 이미 정해진 교회의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제가 규칙대로 했다고 이를 섭섭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규칙을 잘 지킨 내가 도리어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좀 억울했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동역자가 조언과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 조언을 머리의 기름처럼 여기고 거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잘 해결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역자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자기 확신에 매몰되지 않고 항상 조언과 책망에 열린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앞에서 이 시가 다윗의 인생 후반부인 압살롬의 반역 사건 때 쓰여진 시 같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같은 기도는 젊은 시절에 나오기 힘든 기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편 안에는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하는 시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중에서 141편만의 차별점이 있습니다. 이 시의 위대한 점은 그 와중에서도 나도 악에 물들지 않고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통해 자신의 죄성을 깊이 자각한 후에 달라진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 누구를 원망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내 안의 죄성을 깊이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악에 물들지 않도록 자기 확신에 빠지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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