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창세기

거절당할 때 …

이창무 2015. 4. 30. 22:05
반응형

거절당할 때 …


창세기 4: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요한복음 2: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제가 어느날 집에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냉기가 흐르고 있었죠. 원인은 둘째 예림이가 엄마와 다툰 것 때문이었어요. 다툼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예림이가 학교에서 그림을 그려 왔는데 엄마가 보고 그림에서 부족한 것을 지적했기 때문이에요. 예림이가 칭찬해 주지 않았다고 화를 낸 것이죠. 제가 화해시키느라 애를 먹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씩 제 집은 온 식구가 모여 한 번 씩 가족 예배를 드려요. 이 사건을 계기로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했어요. 제 가족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하네요.


창세기 4장은 잘 아는 본문이에요. 사람들은 여기서 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가? 그 이유에 집중해요. 여기에 세 가지 견해가 있어요. 첫째 견해는 양의 첫 새끼(4)와 기름에 주목하는 견해에요. 가장 귀한 것을 드렸다고 보는 것이죠. 반면 아벨은 좋은 것은 자기가 갖고 남은 것을 드렸다고 보는 것이에요. 문제는 가인이 남은 것을 드렸는지 여부는 본문에 없다는 것이죠. 둘째 견해는 하나님이 아벨이 드린 제사는 피흘림이 있는 제물이라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피흘림이 없는 식물의 제사라서 받지 않으셨다고 보는 견해에요. 하나님께서 목축업은 좋아하시지만 농업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보는 견해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성경에 식물 제사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바로 소제가 그것이죠. 하나님이 목축업은 좋아하시지만 농업은 별로라는 견해도 성경적 근거가 없어요 . 셋째, 아벨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의로운 심정을 제사를 드렸다고 보는 견해죠. 히브리서 11장 믿음으로 드린 제사라는 점과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에 대해 책망한 내용을 근거로 해요. 그러나 본문 자체에는 그 근거가 나타나 있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떤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세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어요. 왜요? 본문이 확실한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치 성경이 우리에게 이유를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죠. 아마 성경의 이 부분의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이 이 때 가인이 느꼈을 당혹감과 유사했을 듯 해요. 가인에게도 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으셨어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거절하셨다는 점이죠.


오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제물을 드릴 때 가인의 상태가 아니라 제물을 하나님께 거절 당한 후의 가인의 반응이에요.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5)” 가인은 하나님의 거절이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공평하지 않다고 본 것이죠. 말도 안 된다고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왔어요. 얼굴에 그 분노가 다 드러났어요. 말을 안 해도 다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거절은 가인의 내면 상태를 다 드러내었어요. 하나님의 거절이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그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죠. 가인은 하나님이 불의하실 수도 있는 분이라고 여기고 있었어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있었죠. 누가복음 열 므나 비유에서 한 므나 받았던 사람의 말을 기억나게 하네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하나님은 변덕스럽고 억지를 부리시고 자기 기분대로 하시는 분으로 여긴 셈이에요. 가인은 하나님이 거절하셔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상처 받은 내가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한 반응이라고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 또 다른 사례가 있어요.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어요. 이때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이죠?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자여가 아무리 극존칭이라 하더라도 어머니에게 할 말은 아니지 않아요? 극존칭을 씀으로서 오히려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신 셈이에요. 그 다음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도 듣기에 거북한 말씀이죠. 아무리 하기 싫더라도 말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하면 어떡하나요? ‘그것 참 안 되었네요. 제가 도울 수 없어 죄송해요.’ 이러면 안 되나요? 내 때가 이르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알쏭달쏭한 말씀이에요. 납득이 안 되요. 여기서도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거절하셨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이 때 마리아의 반응은 가인과 달라요. ‘마리아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런 구절이 없어요. 여기서 마리아는 묵묵히 하인들을 준비시키죠.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똑 같이 거절을 당했는데 반응은 전혀 달라요. 마리아는 여기서 예수님의 거절을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 았어요. 다만 자기가 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절하셨음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고 받다 들였어요. 거절 당했을 때 반응으로 마리아의 내면 상태가 드러 났죠. 마리아는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구할 때는 내면 상태를 잘 알 수 없어요 . 필요하기 때문에 절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소원이 있어 보이죠. 그러나 하나님께 거절 당할 때 그 사람 내면 상태가 드러 나요. 어떤 사람은 화를 내요.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고 하죠. 상처 받았다고 해요. 설령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 표정으로 삶으로 다 드러나죠. 그가 하나님의 완전한 선하심을 믿지 않는다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 하나님 앞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교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나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거절을 수용해요. 그렇다고 기뻐하진 않아요. 하지만 화내지 않아요. 안색이 변하지도 않아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이유가 있다고 여겨요. 하나님의 완전한 선함을 믿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신뢰함을 나타 내죠.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세요. 내 소원에 응답하실 때 선하세요. 뿐만 아니라 거절하실 때도 선하신 분이세요. 하나님이 거절하시더라도 안색이 변하지 마세요. 뻑하면 상처 받았다는 수준 낮은 말, 유치한 말을 더 이상 하지 마세요. God is Good / All the Time. All the Time / God is Good.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 언제나. 언제나 /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반응형

'설교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0) 2019.03.17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0) 2019.03.10
행복 헌장 5 계명  (0) 2015.05.03
왜 가을은 깊어만 가는가?  (0) 2015.05.01
바벨탑  (1) 201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