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시

찔레꽃

이창무 2015. 11. 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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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이원규


아비가 돌아왔다

제삿밥 물린 지도 오래 

청춘의 떫은 찔레 순을 씹으며 

시린 뼈마디마디 가시를 내밀며 

산사나이 지리산에서 내려왔다

흑백 영정사진도 없이 

코끝 아찔한 향을 올리며 

까무러치듯 스스로 헌화하며 

아직 젊은 아비가 돌아왔다

어혈의 눈동자 빨간 영실들이야 

텃새들에게 나눠주며 

얘야, 막내야 

끝내 용서받지 못할 

차마 용서할 수 없는 내가 왔다

죽어서야 마흔 번 

해마다 봄이면 찔레꽃을 피웠으니 

얘야, 불온한 막내야 

혁명은 분노의 가시가 아니라 

용서의 하얀 꽃이더라

하마 네 나이 불혹을 넘겼으니 

아들아, 너는 이제 나의 형이다

이승에서 못다 한 인연 

늙은 안해는 끝내 고개를 돌리고 

네 걱정만 하더라

아서라 에비, 에비! 

나보다 어린 아버지가 돌아왔다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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