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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한 오바댜
    설교/열왕기상하 2015.10.14 22:32

    2015년 10월 14일 수요기도회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한 오바댜


    말씀 : 열왕기상 18:1-15

    요절 : 열왕기상 18:3,4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성경에 오바댜라는 인물이 여럿 등장합니다. 성경에는 총 13명의 오바댜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선지자 오바댜입니다. 선지자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경고를 담은 오바댜서라는 성경책의 저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다루려는 사람은 선지자 오바댜가 아니라 아합의 궁내대신이었던 오바댜입니다. 아합왕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 열왕기서의 주인공은 단연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주인공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조연입니다. 요즘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는 오달수라는 영화배우가 있습니다. 한 번도 영화에서 주연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관객수를 모두 합치면 일억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 역사에 있어서도 주인공 뿐 아니라 조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합왕과 엘리야가 총칼 없는 전쟁을 벌이던 때에 하나님 편에 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오바댜의 믿음과 헌신에 대해 배워고자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아합 왕에게는 오바댜라고 하는 왕궁을 맡은 신하가 있었습니다. 아합 왕은 어떤 왕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악명을 떨치는 왕입니다. 이세벨이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후에 바알 숭배를 이스라엘의 국교로 삼고 여호와 신앙의 씨를 말리고자 했던 인물입니다. 아합왕은 잔인하고 거짓되고 탐욕스러운 왕이었습니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런 왕 밑에서 신하 노릇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뜻 있는 관리들이 아합 왕궁의 현실에 절망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아합 주변에는 그저 출세에 눈이 멀어 왕과 왕비에게 아첨하는 간사한 무리들만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오바댜는 달랐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오바댜라는 이름도 여호와를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12절에 보면 오바댜는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오바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앙 교육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을 살고자 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지독한 우상 숭배자인 아합 왕의 궁내대신을 맡고 있었습니다. 궁내대신이란 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지고 관장하는 상당한 고위직이면서 왕의 최측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 우상숭배를 일심는 악한 왕의 최측근이라니 이 모순된 현실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엘리야처럼 악한 왕에게 맞서서 큰소리를 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벼슬길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서 절개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바댜는 끝까지 아합왕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주변에서 이런 저런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비겁한 사람이야. 얼마나 출세가 좋으면 아합 같은 왕의 충신 노릇을 할 수 있어. 당신은 변절자야" 하지만 가장 괴로운 사람은 오바댜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바알을 높이는 말을 할 때 얼마나 속으로 부글부글했을까요? 당장이라도 이 더러운 아합 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썼다가 다심 가슴에 품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오바댜는 출세를 위해 신앙을 버린 변절자, 배신자였을까요? 용기가 없어 할 말도 못하고 권력에 끌려다니는 소심남이었을까요? 


    4절을 보십시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희대의 악녀 왕비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에게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서슬퍼런 칼날에 수많은 선지자들의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오바댜는 남몰래 선지자 백 명을 동굴 속으로 피신시켰습니다. 피신시키되 오십 명씩 두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즉 포트폴리오 리스크 헤징 위험분산 전략으로 한 무리가 들켜 처형되더라도 나머지라도 보존하고자 하는 고육치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백 명의 선지자들이 안전할 때까지 떡과 물을 공급했습니다. 이 당시는 북이스라엘 전역에 기근이 들어 경제난이 심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오바댜와 같은 고위직에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백 명의 선지자들을 지속적으로 먹여살릴 여력이 아무에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백 명의 선지자를 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이세벨의 노여움을 사서 선지자들은 물론이요 오바댜의 목숨도 함께 날아갈 판이었습니다. 자비를 들여 백 명이 먹일려면 적지 않은 재산이 축이 났을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오스트리아의 사업가였던 쉰들러는 자기가 운영하는 군수 공장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유대인들을 데려옵니다. 쉰들러의 리스트에 들었던 유대인들은 대학살 중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쉰들러가 자기 손에 끼여있던 반지를 꺼내며 이 반지를 팔았더라면 한 명의 유대인의 생명을 더 건질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자책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2차 대전 때에는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다면 오늘 말씀에는 오바댜 리스트가 있습니다. 오다뱌는 엘리야가 할 수 없던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 쉽지 않아 사르밧 과부에게 의탁해야 할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바댜가 백 명의 선지자를 구해 주었기 때문에 아합이 통치하는 엄동설한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엘리야 선지 학교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바야가 만약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그냥 낙향해 버렸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갖은 모욕과 아픔을 참아내며 꿋꿋이 자리를 지켰을 때 이루어 낸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일을 위해 오다뱌를 아합 궁 안에 박아 두셨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오바댜의 업적은 이것 뿐이 아닙니다. 7절부터 15절까지는 오바댜가 엘리야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오바댜를 만나서 아합왕에게 엘리야가 여기 있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엘리야가 직접 가서 나타나면 될 일을 왜 오바댜에게 부탁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아합왕과 엘리야 사이의 철천지 원수 관계로 틀어져 버렸기 때문에 직접 나타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엘리야가 의도했던 일을 성취하기도 전에 아합왕에게 체포되어 일을 그르칠 위험이 있었습니다. 이때 오바댜가 아합왕과 엘리야 사이를 중재해 주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댜는 조금 머뭇거렸습니다. 만약 엘리야가 여기 있다 보고를 했는데 그 사이가 엘리야가 종적을 감추어 버리기 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가? 왕을 기만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오바댜는 매우 신중하고 사려 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아합 왕 곁에서 있다보니 몸에 배인 습관인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거듭 약속하고 약속을 하자 오바댜는 그제서야 안심을 하고 이 사실을 아합 왕에게 알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계기로 그 유명한 갈멜산에서 엘리야 대 바알 선지자, 바알 선지자 대 엘리야의 대결이 이루어지고 극적 반전의 모멘텀을 갖게 됩니다. 이 역사적 순간을 준비한 사람이 바로 오바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오바댜가 아합의 궁내 내신으로 있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이런 대반전의 기회를 갖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를 생각하면 엘리야의 이름만을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 어떤 선지자보다도 뜨거웠고 놀라운 이적을 보여주었고 선지자, 불꽃처럼 타올랐던 선지자 엘리야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시대에 엘리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하나님을 경외하며 큰 일을 해낸 오바댜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체제 밖에서 10 미터를 움직이는 것보다 체제 안에서 1 센티미터를 움직이는 더 힘들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체제 밖의 사람이었기 떄문에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쉬운 면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담아 아합왕과 이세벨을 꾸짖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바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꾹 참고 또 참았습니다. 이세벨의 뺨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의 선지자 백 명을 살려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엘리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대를 이끌어갈 사람, 역사적인 모멘텀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바댜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불신적인 세상,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속 한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전초 기지를 세울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바댜 같은 사람에게는 당장 큰 일은 못해도 그 자리에서 생존하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 큰 일입니다. 아합왕의 신임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전에 한 보고서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보고서의 주제는 캠퍼스 학생 복음 운동 단체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한 지 5년 후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 중에 좀 충격이었던 것이 상당수의 리더들이 5년 후에 교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직업을 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졸업 직후에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과 캠퍼스 리더였던 삶과 괴리가 너무나 커서 괴로워하다가 결국에 직장을 그만 두고 교사가 된 사람들이 꽤 있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그 보고서 내용에 여러모로 공감이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학교와 센터가 전부인 생활을 하다가 직장에 들어가면 적응이 쉽지 않습니다. 회사는 회사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충성을 요구합니다. 날마다 야근이다 주말 근무를 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술을 강요하고 퇴폐적인 문화가 만연합니다. 서로 줄서기 하는 사내 정치의 치졸함과 아니꼬움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정나미가 뚝 떨어집니다. 부장님은 아합왕 같고 과장님은 이세벨 같습니다. 다 때려치고 마음 편한 교사 생활이 제일 좋겠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의 결말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캠퍼스 선교 단체들이 세상의 최전선에서 한 발 씩 물러나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는 질문이었습니다. 힘들고 자존심 상하고 괴롭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결론을 맺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오바댜를 보면서 자신이 지킨 그 자리를 활용해서 어떻게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았는가를 볼 때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부름 받은 그 자리가 곧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합왕이 땅의 물근원을 찾는 중차대한 일을 놓고 다른 모든 신하들을 다 제껴 놓고 오직 오바댜 한 사람을 데리고 간 것을 볼 때 얼마나 그를 신뢰하고 있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잔꾀부리지 않고 아부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세상은 언제가 인정하고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힘들어도 버티고 버티면서 책임감과 성실로 일을 감당하며 보면 언제가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날이 옵니다. 제가 삼십대 초반의 목자님들과의 말씀 공부팀을 수년째 인도하고 있는데 다들 거칠고 죄악된 세상 속에서 오바댜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가 매번 소감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때로는 무의미해 보이기도 해서 다 엎어버리고 싶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도 사원 시절에는 할 수 있는 거의 없었지만 팀장이 되고나서는 회식 문화를 바꾸고 매주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두 사람의 불신자가 회심하는 열매를 얻은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엘리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엘리야의 역할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오바댜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송강호나 전지연 같은 주연이 빛이 나지만 오달수 같은 조연이 있어야만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듯이 하나님 나라의 드라마는 엘리야와 오바댜의 동역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학사 목자님들은 대단한 분들입니다. 이 시대의 오바댜라 불릴만 합니다.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우고 계신 분들입니다. 이번에 문중호 목자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이라는 책을 내셨다고 합니다. 아직 안 읽어보았지만 분명 그 책 속에는 교사로서 풍부한 경험과 함께 성경적 가치관, 복음적 가치관이 녹아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값진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 학사 목자님들께서 좀 더 자부심과 소명 의식을 가지시고 세상 속에 깊이 침투하여 언덕 위의 등불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시대 오바댜처럼 하나님 나라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영향력 있는 학사 목자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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