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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
    설교/요한일서 2015.08.30 17:27

    2015년 가을 요한일서 제 3 강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복


    말씀 요한일서 2:28-3:12

    요절 요한일서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우리 각자에게는 저마다 다 나름대로 신분이 있습니다. 학생에게는 학생 신분이 있고, 군인에게는 군인 신분이 있습니다. 신분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그 중에 누구의 자녀이냐 하는 신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찰톤 헤스톤이 주연했던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유대 명문가의 후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로마 군함의 노를 젓는 비참한 노예 신분으로 전락합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로마 장군의 생명을 건져준 덕분에 그 의 양자가 됩니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유대인 출신 노예가 아닌 당당한 로마 귀족의 상속자로서 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신분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이 신분을 어떻게 얻게 되었으며, 이 신분에 따르는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또 현재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까? 3장 1절을 보십시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본문은 ‘보라’라는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그 다음 영어 성경을 보면 ‘How great...’으로 이어집니다. 무엇이 그렇게 놀라운 일일까요?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게 된 것, 그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사실 역시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과거에 안티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꼴 보기 싫은 사람이 동네에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님’자 붙이는 것이 기분 나빠서 그냥 신(神)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라고 노래합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NIV 성경에 보면 ‘베푸셨다’하는 단어가 ‘lavished’ 로 되어 있습니다. ‘lavish’라는 말은 ‘격에 맞지 않게 과분하다’, ‘낭비하다’, ‘퍼 붓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말을 하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죄의 종이었습니다. 집 나간 탕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죄를 즐기던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자녀로 맞아주셨습니다. 말하자면 당신의 자녀로 입양을 하신 셈입니다. 우리를 입양하시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하나 뿐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과거를 모두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우리는 놀라운 신분 상승을 했습니다. 거지에서 왕자가 된 것보다 더 엄청난 신분 상승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랑은 없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입양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자기 몸에서 나지 않는 아이를 자녀로 입양하는 것은 큰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참 대단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입양하려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이를 따지고 가린다고 합니다. 입양을 하더라도 예쁜 아이, 건강한 아이여야 하고 또 어려야 한다고 합니다. 장애가 있거나 못 생긴 아이, 나이가 어느 정도 되어서 들어 온 아이는 입양이 잘 되질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입양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은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우리를 입양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7,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랑은 우리로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310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우리가 누가 복음 15장을 가리켜 탕자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제목을 탕부의 비유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죄와 쾌락을 위해 재물을 허랑방탕하게 쏟아 붓는 둘째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주인공은 집을 나간 패륜적인 아들을 위해서 사랑을 쏟아 부는 아버지, 격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사랑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탕부입니다. 첫째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쏟아 붓는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예를 찾아본다면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기 몸에서 난 두 아들을 살해한 범인들을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양자로 맞아들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어떻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원수였던 자기 자신을 양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회사 다니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 ‘너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말이었습니다. ‘너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주말에 어디 놀러 다니지도 않는데 무슨 재미로 사느냐?’ 여러 명이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예배하는 재미, 성경 공부하는 재미로 살지요. 얼마나 좋은데요. 선배님도 한 번 해 보실래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됐네. 이 사람아! ’하고 다시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 사랑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엄청난 신분 상승이라는 인생 대박을 터트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일생 죄의 종노릇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장차 미래에 누리게 될 복이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요" 우리가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을지, 통일이 된다면 언제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미래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것이다’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언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신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합니다.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고통을 끝장내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이 다 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핍박과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이 다 끝나는 날이 옵니다. 주님께서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어주실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변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변합니다. 예수님처럼 변합니다. 부활하신 후 영광스럽게 된 예수님처럼 변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병들고 아픈 것이 없습니다. 외모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됩니다. 늙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늘어가는 주름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빠지는 머리털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 뿐 아니라 그날에는 더 이상 죄의 소욕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회개 소감을 쓸 필요가 없어집니다. 지긋지긋한 죄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님의 참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거리낌이 없이 담대하게 예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 최대의 행복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직 육의 몸을 입고 있고 죄의 장벽이 남아 있어서 온전한 교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이 모든 장애물이 다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은 거울과 같이 희미하게 본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청동 거울이라 뿌옇게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면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진 기대와 소망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큰 딸 예진이랑 같이 병원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탤런트 조인성을 만났습니다. 실제로 보니 티브이에서 나온 것보다 더 멋있었습니다. 키가 엄청 크고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조인성이 예진이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면서 ‘아이구, 참 귀엽구나.’라고 이렇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예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세수를 하지 마라. 이 볼은 조인성이 만져 준 볼이란다.’ 하물며 연예인을 잠깐 동안 직접 만나도 이 정도인데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모든 찬송가 중에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가 바로 ‘구주를 생각만 해도(85장)’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이것이 자녀된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스러운 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결코 중도에 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최근에 제가 충격적인 사진 하나를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봉투에 담겨진 살아 있는 강아지를 발견해 SNS에 올린 사진이었습니다. 강아지의 온 몸에 오물이 묻어 있고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경찰이 추적을 해서 결국 주인을 찾았습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강아지가 머리를 다쳤는데 치료를 해 주기가 부담되어 산채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고 했습니다. 입양된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파양이라고 합니다. 입양 후 다시 시설이나 고아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파양이라고 합니다. 한 번 버림을 받았던 아이들이 또 다시 버림을 받게 되면 일생 씻을 수 없는 큰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번 입양한 당신의 자녀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아들의 피 값으로 얻은 자녀들을 어떻게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고 주님을 만날 그날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현재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과거에 이런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영광스러운 미래가 약속되었는데 현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또 2장 28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주님이 오실 날을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한다면 그 날까지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시키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깨끗하게 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결혼식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습니다.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을 만나 하나가 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자신의 정절을 지키면서 준비합니다. 춘향전을 보십시오. 춘향이에게 이몽룡은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이때 변 사또가 나타나서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했습니다. 수청을 들지 않으면 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춘향이는 이몽룡이 다시 올 날을 그날을 고대하면서 정절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비록 출신은 천한 기생이었지만 소망이 생기자 사람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도 춘향이입니다. 우리의 이몽룡이 되시는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의 정결함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그 날에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 우리가 전혀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까?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내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는 불법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입니다. 여기서 불법이란 말이 원어로 ‘아노미아’라는 말인데 영어의 ‘아노미’가 여기서 왔습니다. 불법이란 아노미 상태 즉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든 상관없이 나는 내 맘대로 살고자 하는 불법함이 바로 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사도 요한에 따르면 죄를 없애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차적으로 죄의 결과인 심판과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죄 자체를 없애기 위해 오셨다는 것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를 없이 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싸움에 동참해야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 영광스러운 미래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가는 이 순례의 길 사이에 갖가지 죄의 유혹이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CBF/EBF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천로 역정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을 했습니다. 6개의 미션을 모두 수행한 아이들은 마크홀에서 천사 이진혁 목자님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개중에 몇몇 아이들은 미션에서 탈락해 재시를 보기도 하고 이 때문에 울기까지 한 아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미션을 수행한 만큼 마크홀에 도착한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환하고 기뻐보였습니다. 천로역정이란 책을 보면 크리스천이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 도중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습니까? 크리스천을 죄의 길로 유혹하는 사람, 거짓 교리를 심는 거짓 선생들, 핍박하고 해치려고 하는 사람 등등을 만납니다. 천성에 무사히 도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7절에 보면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옆길로 새지 말라는 말입니다. 찬송가 325장 후렴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이미 구원 받았고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고 해서 이제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의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딴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죄와 싸우며 말씀이 가르쳐 주는 의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힘써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 이 본문은 성경 난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습니까? 범죄할 수 없습니까?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죄를 짓기도 합니다. 현실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요한일서 안에서도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서 1장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자칫하면 구원파라는 이단의 가르침과 똑같은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말씀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복잡한 헬라어 시제를 꼭 알 필요는 없습니다. 명령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평서문으로 썼다라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부대에 갔는데 ‘우리 부대원들은 적과 맞서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라고 쓰여진 플랭카드가 걸려 있다면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정말로 뒤로 물러설 군인이 한 사람도 없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도망치거나 숨는 군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결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씨가 우리 속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씨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라고 해석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를 거듭나게 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 속에 변화된 성품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이 정답이라고 하기보다는 세 가지 모두 다 하나님의 씨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을 이미 심어 놓으셨습니다. 씨앗 자체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씨는 자랍니다. 씨는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가 곧 의의 열매이고 사랑의 열매입니다. 이런 열매가 맺힐 때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계속 죄와 싸우면 죄를 이기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싸워 봤는데 안 되더라. 맨날 지기만 하더라. 어차피 질 텐데 뭐 그렇게 힘들게 싸울 필요가 있나’ 하면서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벼룩은 자기 몸에 비해서 가장 높이 뛰는 동물로 유명합니다. 생물계의 높이뛰기 챔피언입니다. 이 조그만 놈이 자기 몸의 100배가 넘는 60cm를 뛴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치면 17층 정도 높이의 건물을 뛰어 오르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벼룩을 30cm 높이의 유리병 안에 넣어 키우면 어떻게 될까요? 나중에 유리병을 치운 후에도 이 벼룩은 딱 30cm까지만 뛴다고 합니다. 그 동안 더 높이 뛰려다가 천정에 머리를 맞아 봤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것입니다. 60cm를 뛸 수 있는 벼룩이 영원히 30cm 밖에 뛰지 못합니다. 우리도 죄와 안 싸워 본 것은 아닌데 패배했던 경험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주제에 어떻게 죄를 이겨? 이렇게 수준 높은 말씀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어?’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씨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패배적인 생각을 합니까? 벼룩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는 벼룩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장 29절에 보면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유전자는 위대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부모를 꼭 닮은 자녀를 만났을 때 쓰는 말입니다. 저도 이 말을 실감한 적이 있습니다. 홍콩의 루이스 정 선교사님이 아들을 낳았을 때 축하해 주러 병원으로 면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래 신생아들은 다 쭈글쭈글해서 이목구비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아기가 루이스 선교사님의 아들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코가 루이스 선교사님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전자는 역시 위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유전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유전자는 의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으신 그 씨앗 안에 의와 사랑이라는 유전자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속에서 발현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근대 소설가 김동인 씨의 ‘발가락이 닮았다는 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결혼을 해서 아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들이 자기를 하나도 안 닮은 것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혹시 아내가 바람피운 것이 아니냐며 한 마디 씩 수군수군 거렸습니다. 고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맺습니다. “여기를 보세요. 아기가 저랑 발가락이 닮았어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고민하시게 만드는 자녀가 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자녀라고 하는데 닮은 구석이 발가락 밖에 없는 자녀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보니까 하나님이 보인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은 이미 바뀌었지만 아직도 과거의 죄악된 옛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했지만 찌들어 있던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왕자와 거지라는 이야기를 보면 거지가 어느날 갑자기 왕자의 옷을 입고 왕자의 신분을 얻었습니다. 궁궐에서 살다보니 모든 것이 어색하고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날마다 하나씩 하나씩 왕도를 배웠습니다. 결국에는 진짜 왕자 못지않은 품위와 예절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분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이긴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모습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여전히 죄에 빠져 해매기도 하고 형제를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배우고 연습하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그렇게 우리를 키우고 계십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손을 꽉 붙들 때 우리는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식물들이 열매를 맺고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입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우리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씨가 자라서 의의 열매, 사랑의 열매로 열매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과거와 미래 뿐 아니라 현재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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