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예화

첼레스티누스 V세의 이야기

이창무 2015. 7. 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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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3세기말 교황이었던 첼레스티누스 V세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울리며 영혼을 깨웁니다. 그는 이탈리아 시골 촌구석의 농부 출신이었습니다. 중세 당시 교황이 권력이 세속 영주들의 권력보다 컸던 때였고 종교권력의 멋을 들인 정치 사제들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2년간의 권력 다툼을 들인 끝에 정치 사제들이 첼레스티누스 V세를 교황으로 선출하는데 합의하였던 것은 그가 권력에 욕심이 전혀 없는 순수한 인격자요 수도자였으므로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자기네들이 교권을 맘대로 휘두들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2.

교황이 되기 전에 그는 산 속에서 동굴과 움막에 거주하면서 고행과 청빈과 영성훈련을 생활화하는 '바보들의 수도회'를 이끌었습니다. 그 바보들은 깊은 영성과 청빈한 삶으로 주위에 큰 감화를 끼쳤고 뭇사제들과 신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순결함과 초연성이 그를 교황이 되게 했지만 이는 그의 교황직 수행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영성만으로는 얽히고 섥힌 권력관계와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영주들은 그의 겸손과 탈권력적 비정치적 성향을 이용하여 가톨릭 교회의 힘을 빼앗으려 했고, 교권을 휘두르는 정치적 사제들은 자기 손을 앉힌 교황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첼레스티누스 V세는 교황청 관저의 전용침실에 기거하지 않고 경내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일부 사제들이 혼배성사나 종부성사 때 신도들로부터 관례적으로 혹은 은밀히 받던 사례비의 관행을 과감히 폐지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제였을 때는 교황의 수장권을 인정하였지만 교황이 되고나서는 아무런 권위도 위엄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방식은 권력과 돈맛에 익숙한 정치사제들과 삯군 사제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세속 영주들과의 관계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그들의 기를 걲어 자신의 힘과 지위를 다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첼레스티누스 V세는 느닷없이 교황직을 사임하고 시골의 오두막으로 다시 돌아가버렸습니다. 즉위한 지 5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버림'만이 최선의 길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가톨릭 역사상 교황직에서 스스로 내려온 유일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옥좌를 버리고 오두막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거기서 편안히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교황 보니피스 8세가 터무니없는 명분으로 그를 감옥에 넣었고 곧 이어 자객을 보내어 그를 암살해버렸습니다. 스스로 '교황'이 아니라 '황제'라고 호칭하였던 타락한 정치사제였던 보니피스 8세는 수도자들과 뭇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그를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자신과 너무나 대조적인 그를 방치할 수 없어 '윤리적 열등감과 정치적 음모'로 그를 제거해버렸습니다. 그는 지옥에까지 내던져졌습니다. 그 유명한 단테는 열렬한 교황주의자였는데 그는 첼레스티누스 V세가 신성한 교황직을 함부로 떠났다는 이유로 그의 희곡 '신곡'에서 그를 지옥으로 보내버렸습니다.

3.

그는 보좌를 버리는 교황이었으며, 오두막을 선택한 빈자였습니다. 수도회의 이름과 똑같이 그는 바보였습니다. 영광과 안일과 권세를 버림으로써, 떠남으로써, 신앙의 본질을 보여준 그는 죽임당한 예언자처럼 보입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4세는 가톨릭의 개혁을 이끌며 내부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고뇌한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부의 격심한 갈등 속에서 개혁을 추진하던 그는 어느 날 첼레스티누스 V세의 무덤을 찾아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역시 그 무덤 속의 선배처럼 모든 것을 몽땅 내버리고 싶었을런지도 모릅니다.

4.

교권과 명예욕에 혈안이 된 종교인들, 끝없는 팽창을 추구하는 대형교회들, 교회를 사유화하는 일부 목회자들, 교회를 자식에게 세습하기 까지 하는 전대미문의 악행으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는 종교개혁가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버림의 길을 걸어간 첼레스티누스 V세의 오두막의 영성을 배워야 합니다. 바보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승리의 찬가가 아니라 바보 예찬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 이글 1-3은 이우근 변호사의 칼럼 '오두막집 교황'을 참고 요약한 것입니다. 오픈하우스, 불신앙고백, 104-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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