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예화

이청준 선생의 단편 <눈길> - 어머니의 옷궤

이창무 2015. 5. 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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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자수성가하여 도시에서 살고 있던 화자 '나'가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에 살고 있던 어머니를 찾아가면서 시작됩니다. 늙은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큰 며느리와 세 조카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옷궤 때문에 발조차 뻗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는 어머니를 '노인'이라고 지칭합니다. 의도적인 거리 두기입니다. 그는 혼잣소리인양 여러 차례 그 노인과 자기 사이에 갚아야 할 빚은 없다고 말합니다. 남편과 큰 아들을 일찍이 떠나보내고 근근히 삶을 이어가야 했던 어머니는 객지에서 공부하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미안함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며느리는 좁은 방에서 옷궤를 치우는 게 어떠냐는 말해보지만 노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 낡은 옷궤는 '나'를 옛 기억으로 인도합니다.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술버릇 때문에 가산을 탕진한 형이 전답과 선산을 팔고, 마침내는 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집까지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옛 마을을 찾아갑니다. 어스름을 기다려 살던 집 골목에 들어서니 집은 괴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문간에서 한참 어정거리고 있는 데 친척 누나의 기별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가 아들을 나무라며 집안으로 잡아 끌었습니다. 살림살이를 다 드러낸 집에서 어머니는 옛날과 똑같이 저녁을 지어 내왔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돌아오면 저녁밥 한 끼를 지어 먹이고 마지막 밤을 지내게 해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새 주인의 양해를 얻어 혼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그 빈집을 드나들며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했고, 안방 한쪽에 이불 한 채와 옷궤 하나를 예대로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옷궤는 옛 집의 분위기를 되살려내 아들의 괴로운 잠자리를 위로하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아들과 어머니를 이어주는 끈이기도 했습니다.


(김기석 목사, 청파 감리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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