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시

고슴도치 스토리

이창무 2015. 5. 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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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스토리


이 창무


주님!


제가 어릴 적

그러니까

플란다스에 가면

파트라슈를 만날 것만 같았던

그 시절

저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친절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무 대비도 없이

그만 깊은 가시 하나가 제 몸에 박혔습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답니다.


“넌 얼굴이 까매서 창무가 아니라 썩은 무야 썩은 무”


이 가시같은 말은 제 마음에 상처를 내고

상처는 곪아 터져

정말 제 마음이 썩었답니다.


3000원을 뺏어가고도 주먹으로 제 턱을 얼얼하게 만들었던 그 양아치 녀석

바지춤에서 혁대를 풀러 제 등짝을 사정 없이 내리치던 교련 선생님

아랫집 아줌마

우리 반 똘똘이 스머프


고슴도치같은 그들의 날카로운 가시가 하나 둘 제 몸에 박히고

전 피를 흘렸답니다.

상처가 아물 때 쯤

또 다른 가시가 제 살갗을 뚫고

연약한 속살을 후벼 팠습니다.


이때부터 전

저를 보호할 가죽을

걸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살아야지요.


누구에게도 웃지 않기

침묵으로 일관하기

겉과 속을 다르게 하기

약해도 강한 척 하기

몰라도 아는 척 하기

아무도 믿지 않기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기


한 겹 두 겹

껴입었더니

어느새 두터운 가죽이 되었더군요.

가죽 위에 가시도 박아 놓았답니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말이죠.


어느날 거울 앞에서

전 소스라치게 놀랐답니다.

낯 설기도 하면서 낯 익은 모습이

제 앞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리의 고슴도치였습니다.


온 맘에 돋친 가시 위에는

저에게 찔린 사람들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똘똘이 스머프의 상처도 있었고

제 동생의 흔적도

제 어머니의 눈물도 있었답니다.


내게 상처를 준 고슴도치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짐승

온 몸에 가시를 두른 고슴도치가 되고

말았답니다.


전 이젠

어느 누구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전 이젠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려 하면 할수록

상처를 줄 뿐이었으니까요.


세상 사는 게 다 이렇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이게 다 어른이 된다는 증거일 뿐이라고


그래도

외로왔습니다.

공허했습니다.


5월이었습니다.

봄이 온 지는 오래되었지만

교양관의 냉기는

가시지 않은 때였습니다.


저는 간만에 햇빛을

쬐려고 교양관을 나와

벤치에 걸터 앉았습니다.


그때

양복을 입고

팸플릿을 든 채

저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직감했죠.

음 시사 영어사

외판원이군



그 분의 첫 마디는


형제님!

진리를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는 댁 같은 형님을 둔 적이 없는데요.

진리에 대해서라면

왜 세상에 진리가 없을 수 밖에 없는지

조목조목 가르쳐 드리리이다.


주님은

이렇게

제 삶에 노크를 시작하셨죠.


저는

나를 인도하신 그 분과

그 분의 패거리들이 보여주는

엄청난 친절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고슴도치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습니다.


전 이들의 친절은

회원수를 늘리기 위한

집요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며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전 이들이 속셈을 실토할 때까지

이들을 시험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때로는 튕기고

때로는 펑크내고

때로는 약올리고

때로는 묵묵부답으로


그러나 저의 어떠한 시험에도

이들은 쉽사리 저를 포기하지 않더군요.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

저는

이들의 배후를 알아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주님이셨죠.


제가 처음에 주님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주님은

기억하시죠?


저는 주님을 고슴도치 중에 가장 힘센 고슴도치 쯤으로 여겼답니다.

자기를 받들지 아니하고 무시하는 인간을 찾아내어

가장 무섭고 큰 가시로

심판하는 고슴도치의 대왕


전 사랑 따위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 사전엔 값없이 주는 은혜란 존재할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오직 응분의 징벌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시때때로 주님을 조롱하며

무시하며 살아왔던

저이니까

얼마나 큰 가시로 심판하실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날 밤은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던 밤이었습니다.

불현듯 오늘이 주님께서

저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바로 그날이라는

느낌이 저를 사로잡았었습니다.

전 너무나 두려워

이불 속에 들어가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일어나 벌써

아침이더군요.


그날 저는

겨자씨만한

아니

현미경쯤으로 봐야 보일까 말까 한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


그때 주님이 저를 요한 복음 3장 16절 말씀 앞으로 인도하셨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요?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외면하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세상인데도요.


주님 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주님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 증거 앞에 무릅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 뿐인 외아들을 세상을 위한 선물로

바로 저를 위한 선물로 주셨음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 사랑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저의 상식과 경험을

초월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도

표현할 길이 막막했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그런 사랑


제 몸은 거대한 해일처럼

덮쳐 오는 하나님의 사랑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행해

곧추세웠던

모든 고집과 오해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 몸에서

가시가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스무겹

삽십겹

으로

무장했던

가죽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제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날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을 지나

달을 지나고

태양계를 벗어나

안드로메다를 너머

주님의 영광을 뵈었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아무런

방어 수단 없이

주님 앞에 섰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사랑이시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약하고 추한 제 모습 이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저를

안아주실 분이

바로 주님이시란 걸

잘 알기 때문이죠.


주님은

제 몸의

모든 더러움을

깨끗이 씻겨주셨습니다.

그 위에

흰 옷을 입히시고

너무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말씀하셨죠.


주님은

제 몸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시며

몰약을 발라 주셨습니다.

그 위에 새 살이 돋아났습니다.



저는 이제 세상에서 수많은 고슴도치들을 봅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몰라

여전히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 받으며

스스로

주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제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나아가겠습니다.

저게 더 이상 가시도 없고

두터운 가죽도 없지만

주님이

저와 함께 하시기에

걱정할 게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나누어 주는 샘물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선물을

배달하는 사랑의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사랑만을

전하다가

주님 품에

안겨 영원히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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