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및 나눔/단상

빛과 열

이창무 2015. 5. 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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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되면 종종 군 시절이 생각납니다. 제가 소속된 포대는 부대의 입구에 해당하는 위병소 경계 근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한 겨울이 되면 새벽 기온이 영하 15도 이하까지 내려갔습니다. 눈사람을 방불할 정도로 아무리 두껍게 끼어 입어도 30분이 지나면 추위가 솜을 뚫고 허벅지에 파고 들었습니다. 다리를 동동 구르며 추위와 싸우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 때 위병소 위에는 항상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등을 볼 때마다 저 등이 나를 그저 비춰 주지만 말고, 모닥불처럼 열기를 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했습니다.


빛에도 차가운 빛이 있고 뜨거운 빛이 있습니다. 어떤 빛이든 어두움을 밝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추운 몸을 녹일 수 있는 빛은 따뜻한 빛만이 가능합니다.


흔히 이성을 빛으로 묘사합니다. 계몽이란 말을 영어로는 Enlightenment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빛을 비추게 하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을 최고의 권좌에 올려 놓았던 시대로 계몽이란 무지와 비합리의 어두움을 이성으로 몰아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성의 빛은 어두움을 밝힐 수는 있지만 추운 몸을 녹일 수는 없는 빛, '열'이 없는 빛입니다.


우리에게는 열을 동반한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지하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냉랭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두울 뿐아니라 사랑이 식어 버린 빙하시대입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은 뿌리부터 인본주의에 깊이 물들어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인간 관계는 피상적이고 이익이 동반되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시대의 빙하를 녹일 횃불이 필요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저는 예수님이 참 빛이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빛과 열을 동시에 주시는 분이시라는 의미로 새롭게 읽습니다. 이 빛을 받으면 차가운 사람이 뜨겁게 변합니다. 자신만 뜨거워질뿐 아니라 주위에 그 열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됩니다. 곧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와 그에게서 몸을 녹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들판에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보면 그 중앙에 항상 모닥불이 있습니다. 이처럼 양들은 사랑의 열기를 느끼기 위해 불꽃처럼 뜨거운 목자 주위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열기만 있고 빛이 없다면 무분별한 광신이 되어 거짓 가르침에 쉽게 미혹될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열기가 없는 빛 또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바울 서신서들을 죽 읽으면서 바울이 날카로운 진리의 교사이면서도 동시에 그의 서신서 곧곧에서 전해져 오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일이학년 때 머리로는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면서도 계속 성경 공부를 지속했던 이유도 우리 공동체 속에서 다른 곳에서 접해 보지 못했던 뜨거운 사랑의 열기를 느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그리스도의 빛이 내 속에 비추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시고 또 동역자들과 양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심장을 가진 자로 빚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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