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신학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창무 2018. 2. 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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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1)



목차


I. 들어가며

II. 마가복음 배경 연구

a. 저자

b. 기록시기

c. 기록장소와 독자

d. 기록한 목적과 배경

e. 문예적 특징

f. 다른 복음서와의 관계

g. 추가된 종결의 문제

III. 나가며


I. 들어가며


얼마 전 '1987'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87년에 당시 저는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그때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하나하나 다시 떠올랐습니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부침이 많았지만 어찌되었든 민주국가를 향해 지금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그 누가 이 흐름을 다시 되돌리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미 87년에 일어난 일을 누구도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1987'은 1987년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지금 우리나라가 가고 있는 길과 방향을 묻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도 이와 비슷한 목적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고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도 이 흐름을 뒤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네로 황제이든 그 누구든 아무리 방해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하나님께서 만유를 다스리시고 죄와 죽음이 물러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세워질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이 곧 복음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삼년반이라는 짧은 공생애 기간에 행하신 일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마가는 그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또한 그 모든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갈등도 있고 해결도 있습니다. 다양한 일화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갑니다. 마가의 속도는 마치 액션 영화처럼 스피디합니다. 2018년 봄 학기에 마가에 전해 준 이 복음 이야기를 동역자들과 양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영화감독이 누구이며 누가 각본을 썼는지 어떤 기획의도가 있는지를 알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이 마가복음 배경 연구가 마가복음의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I. 마가복음 배경 연구


a. 저자


사복음서에 명칭이 붙은 것은 이세기 중반 이후입니다.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은 저자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 of Eaesarea, 주후 260-340)는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인 파피아스(Papias, 주후 110-120년 경)의 기록에 근거하여 이 복음서의 저자를 베드로의 동역자이며 통역관이었던 마가라고 말했습니다. 파피아스는 마가가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그가 기억하는 대로 빠짐없이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증언을 기초로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이레니우스(Irenaeus), 히폴리투스(Hippolytus),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오리겐(Origen)과 같은 교부들도 마가가 이 복음서의 저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적어도 2세기 중반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런 입장이 교회 안에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가라는 이름은 1세기 당시 흔한 이름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파피아스를 비롯하여 여러 교부들이 마가복음의 저자를 마가로 언급하면서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것은 그가 이미 교회 안에 잘 알려졌던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가의 이름은 사도행전, 골로새서, 디모데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등에 나옵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마가 외에 또 다른 마가가 있을 것이라는 추청은 타당해 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에 등장하는 마가는 모두 동일 인물이라고 봅니다. 


마가에게는 요한이라는 이름도 있었는데, 요한은 유대식 이름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골로새서 4장 10절에 따르면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개역한글과 개역개정 성경에는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번역했습니다만, 원어인 헬라어 '아넵시오스'는 대개 사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영어성경에서도 킹제임스 버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번역본에서 cousin(사촌)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인물입니다. 마가는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에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 13:13). 마가가 왜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중에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면서까지 마가를 데려가지 않으려고 한 것을 볼 때 마가가 정당한 동기 때문에 돌아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때 마가의 나이가 십대 후반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아마도 고향에 두고 온 홀어머니가 그리웠거나 앞으로 선교여행 중 감당해야 할 고난이 두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후에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딤후4:11). 또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몬24). 베드로는 마가를 영적인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벧전5:13). 이처럼 여러모로 미숙한 청년이었던 마가는 주의 은혜로 결국에는 훌륭한 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골4:10; 딤후4:31). 


한편, 사도행전 12장을 통해 볼 때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 넓은 집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는 이 집을 교회의 모임 장소로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감옥을 탈출했을 때 자연스럽게 이 집으로 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베드로를 위해 합심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했던 곳이며(막14:12-25),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났던 곳이고(요20:19,26), 오순절에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신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행2:1). 이곳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다락방은 좁은 창고 같은 개념이지만 성경 속의 다락방은 이층집의 이층에 있는 넓고 큰 방을 가리킵니다. 어떤 학자들은 만일 예수님이 최후 만찬을 하셨던 곳이 마가의 집이라면 마가는 마가복음 14장 13절에 등장하는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 14장 51,52절에 나오는 벗은 몸으로 도망 간 청년이 바로 마가가 아니겠는가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 소소한 사건을 기록한 것을 볼 때 그 사람이 마가 자신의 이야기일 개연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도들이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정신적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야고보는 '낙타 무릎'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그의 간절한 기도의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크리스소스톰은 '황금의 입'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의 달변 때문이었습니다. 마가의 별명은 '뭉툭한 손가락'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손가락이 큰 신장에 비해 너무 작았기 때문에 나온 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마가의 단순하고 간결한 문체와 생략이 많은 그의 복음서를 나타내는 특징이기도 하였습니다.


유세비우스, 에피파니우스, 제롬에 의하면 마가는 로마에서 애굽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교회를 세우고 교회 감독으로 있다가 네로 통치 8년 AD 64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무튼 마가는 초대 교회의 두 거목이라 할 수 있는 베드로와 바울 두 사람 모두와 긴밀하게 동역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마가복음이라는 귀중한 복음서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미숙하고 어린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자라고 얼마나 성숙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파피아스의 증언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마가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듣지도 않았고, 주님을 따르지도 않았지만, 내가 말한 것처럼 후에 베드로를 따랐습니다. 베드로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정돈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마가에게 가르침을 주곤 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가르침들을 기억하면서 기록하는데 있어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파피아스의 증언을 통해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의존했던 주된 자료는 베드로로부터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안에는 이것을 강하게 지지하는 내적인 증거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베드로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만이 경험했던 사건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사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신 사건, 베드로의 부인과 관련된 사건 등등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칭찬받은 것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베드로가 저지른 잘못은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예를 들어 베드로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꾸지람을 들은 사건, 변화산에서 초막 셋을 짓고 살자고 말했던 사건, 계집종 앞에서 세 번 주를 부인한 사건 등등이 있습니다.) 이는 저자가 베드로의 설교를 받아 적는 과정에서 베드로가 겸손하게 자신이 칭찬받은 일은 말하지 않고 잘못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던 것을 그대로 반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증언을 마가가 받아 적어서 이 책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 파피아스의 말은 신빙성이 높습니다. 만약 초대 교회가 마가복음 뒤에 베드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마가복음에 사도적 권위를 두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가복음에 오로지 베드로 자신이 목격자로 참여한 사실만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베드로의 증언 중에는 베드로 자신이 목격한 예수님의 행적과 어록뿐만 아니라 동료 제자들로부터 들어 알게 된 사건들이나 어록 등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열둘이라는 명칭이 10번이나 명시적으로 사용되고 8번 암시적으로 사용됩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열두 제자 공동체의 경험이 마가복음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이야기가 열두 제자의 관점으로 기록된 특징이 있다고들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마가 뒤에는 베드로가 있고 베드로 뒤에는 열 두 제자가 있다’라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b. 기록 시기


초대교회 교부들 중 이레니우스는 베드로가 로마를 떠난 이후에 마가복음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떠남이라는 단어가 죽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로마를 떠난 것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유세비우스가 베드로가 살아 있을 때 마가복음이 기록되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에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로마에서 대화재가 일어난 것은 주후 64년이고, 네로가 죽은 것은 주후 68년입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주후 60년대 초반이고 순교한 때는 주후 64년 혹은 65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베드로가 살아 있을 때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했다면 기록 시기는 주후 63년에서 65년 사이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뒤에서 언급할 마가우선설이 맞는다면 누가복음보다 마가복음이 먼저 쓰였어야하기 때문에 이 경우 아무리 늦어도 60년대 초반을 넘을 수 없습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죽은 이후 마가복음이 기록되었다면 그 시기는 68년에서 69년경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현대 비평학자들은 마가복음에 있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언을 이미 일어난 사건을 예언 형식으로 기록한 소위 사후예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마가복음이 주후 70년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에 언급된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언은 기록된 그대로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합니다. 마가복음 13장 14절에 보면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 될 곳에 선 것을 보면.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을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예언은 유대에 있는 사람이 여전히 도망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에나 적절한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로마에 포위되어 멸망했습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주후 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c. 기록 장소와 독자


마가복음에는 기록 장소가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갈릴리, 또 어떤 학자는 시리아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들은 마가복음의 기록 장소를 로마로 봅니다. 그리고 주 독자들 역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런 추정은 다음과 같은 마가복음 내의 증거들에 근거합니다. 


첫째, 마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유대적 배경이 많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기록된 마태복음에는 구약성경 인용이 아주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용어나 고유한 관습이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구약성경이 덜 언급되어 있습니다. 마태, 누가, 요한은 율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 반면에 마가는 이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유대의 관습이나 문화를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이런 것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에는 유대의 정결 규례(7:3,4)와 고르반 제도(7:11), 유월절 양 잡는 일(14:12) 등에 관한 설명이 나옵니다. 


둘째로 마가복음에는 당시 유대인들의 언어였던 아람어를 번역해 놓은 부분들이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에는 보아너게(우레의 아들), 바디매오(디매오의 아들),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에바다(열리라), 엘로이 엘로이(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등의 아람어를 번역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마가복음의 독자들은 아람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마가복음에는 라틴어 단어들을 음역한 헬라어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마가복음이 로마에서 혹은 로마인들을 위해서 기록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에는 레기온(로마의 군단), 모디오스(곡식을 되는 말), 스페쿠라토르(시위병), 켄소스(세금), 고드란트(로마의 동전), 브라이도리온(궁전), 켄투리온(백부장) 등등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나옵니다. 이 중에 고드란트는 헬라어 렙돈을 로마 화폐 단위로 환산한 것이며, 브라이도리온 역시 궁전의 뜰을 의미하는 헬라어를 라틴어로 다시 번역한 것입니다. 


넷째, 베드로전서 5장 13절은 마가가 베드로와 동행하고 있으며 당시 바벨론에 머물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초대 교회 당시 로마를 가리키는 별칭이었습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로마인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기록된 책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리처드 보캄(Richard Bauckham, 영국의 신학자로 복음서의 역사성을 입증한 ‘예수와 그 목격자들’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이라는 학자가 이런 견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보캄은 복음서는 바울서신처럼 수신자가 따로 있지 않고 불특정 다수의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문서라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캄은 고대에 기록된 문서들은 대부분 먼 거리에 떨어진 사람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도구였음을 지적했습니다. 만약 마가가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로 전달하면 되지 왜 복음을 다시 기록하는 수고를 했겠느냐고 반박했습니다. 마가가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복음을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했다는 보캄의 말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특정한 독자를 두고 마가복음을 기록했다는 견해가 여전히 타당하다는 내적 증거가 있습니다. 15장 21절에서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을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오직 루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이해 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이 루포를 잘 알고 있던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독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고 볼 수 있습니다.


d. 기록한 목적과 배경


신약성경에서 사복음서를 묶어서 복음서라는 하나의 장르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마가가 복음서를 쓸 때에는 복음서라는 장르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또 복음서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마가가 복음서를 쓰면서 의식했던 장르는 전기(고대의 전기 중에는 로마의 오현제 시기 헬라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플루타르코스가 쓴 인물 열전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플루타크 영웅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밖에 없습니다. 고대의 전기는 현대의 전기와는 뚜렷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현대의 전기는 한 인물의 일생을 그 사람의 심리와 성품, 그리고 업적을 소재로 삼아 기술합니다. 그러나 고대의 전기는 한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서술하되 출생에서부터 시작하여 공적 사역에 이르는 과정, 그리고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인물이 남긴 격언, 일화, 어록과 더불어 소개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외모에 대한 묘사나 예수님의 내면적인 삶을 묘사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습니다. 고대에 이런 전기를 기록한 목적은 대략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인물과 관련된 과거를 기록으로 남겨놓되 보다 신뢰할 만한 자료에 의거하여 후대가 그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사기록은 좀 더 분명하며 믿을 만하며 정확한 것이라고 자부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예수님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구전으로 여기저기 떠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보존가치가 있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들을 선별하고 모으는 작업을 누군가는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로 마가가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증언을 기초로 해서 좀 더 분명하고 믿을 만하며 정확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하려는 의도로 펜을 들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역사 기록은 단지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과거를 통한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저장된 과거 역사는 기억의 쇠퇴와 함께 잊혀 갑니다. 하지만 현재의 삶의 길을 안내하는 정보는 지속됩니다. 과거 역사가 현재 역사의 등불 노릇을 하려면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기록으로 남겨져야만 했습니다.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할 때 이 복음서가 현재의 청중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역사가 복음서를 듣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회상되고 다음 세대로 계속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셋째로 고대의 전기는 변증, 논쟁, 교육이라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의 의미를 보호하고(변증), 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적들 곧 복음의 원수들을 물리치고(논쟁), 그리고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도록 양육(교육)하고자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예수님에 관한 전기로 읽힐 수 있었겠지만, 막상 마가복음을 읽은 사람은 동시대 다른 전기와는 낯선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계속해서 무시당하고 거부되며, 굴욕을 당하시고, 명예가 훼손되고 결국 가장 절친했던 사람들에게서까지 버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고대의 전기가 전혀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복음서의 특징이긴 합니다만 마가복음에서 유난히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가복음의 전체 분량 중 약 40%가 십자가 수난의 기록에 할애될 정도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마가복음이 쓰일 당시 로마 교회가 처한 상황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된 시기에 로마 교회는 네로의 기독교 대박해를 겪고 있었습니다. 로마 대화재의 범인으로 기독교인들이 누명을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맹수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거나 십자가에 묶인 채 화형당하여 밤에 도시를 밝히는 횃불로 사용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습니다. 로마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그 당시 상황을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먼저 잡혔다. 그 다음 그들의 밀고에 따라 많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잡혀 방화죄가 아닌 인류를 증오한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마가복음 13장 12,13절은 이 상황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의 길을 걷는 예수님에 대한 강조는 예수님을 주로 믿고 고백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것이 이상한 것이 결코 아니라 도리어 주님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으심과 고난 이후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을 통해 박해 가운데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특히 '실패한 제자들'이라고 불리는 마가복음의 제자들의 위상 역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살펴보면 열두 제자는 후에 교회의 든든한 기초를 놓은 사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모습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일에 실패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에서 사도로 변화되는 과정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마가는 그 변화 뒤에는 예수님의 주도권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주도권은 주를 부인하고 실패할 것이 뻔한 제자들에게 부활 후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 시작하자 하시는 결론 부분에서 절정에 도달합니다.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세워 나가시는 예수님의 주도권을 담고 있는 마가복음의 제자도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로마에 있던 기독교 공동체 역시 형제가 형제를 배신하는 일로 와해의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 실패한 제자를 사도로 바꾸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저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재현되어야 하고 또 재현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믿음을 낳게 했습니다.


e. 문예적 특징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합쳐서 공관복음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세 복음서 사이에는 유사성이 많아 서로 형제 사이 같습니다. 그런데 한 동안 마가복음은 이 세 형제들 중에서 가장 못난 형제 취급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에 비해 더 잘 짜여있고 더 자세하고 더 세련되게 쓰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베드로로부터 유래한 복음서라는 명성이 아니었다면 아예 교회에서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평가가 지나치게 마가복음을 평가 절하한 것이라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가복음이 예수님을 가장 강력하고 생동감 있는 드러내고 있는 복음서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이 이런 칭송을 받게 된 데에는 마가복음의 문예적 특징이 한 몫을 크게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어떤 문예적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로, 마가복음은 '구전 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글보다는 말에 가장 가까운 복음서입니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인구의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을 주목표로 두지 않았습니다. 마가는 이 복음서를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글을 모르는 다수 앞에서 낭독하는 상황(E. 베스트라는 학자는 마가복음 자체가 한 편의 설교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가는 연구나 묵독이 아니라 구두 전달에 효과적인 여러 가지 방법들을 사용했습니다. 


■ 마가는 한 단락 내에서 이야기의 전개를 표시하고 또 이어지는 사건을 밀접하게 연결하기 위해서 '곧'이라는 부사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가복음 내에서 '곧'이라는 부사가 42번이나 사용되고 있으며 1:16-31에서만도 7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야기의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 마가복음에서 26번이나 사용된 '다시'라는 부사도 위와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 또한 마가는 주절과 종속절로 연결시키는 관계보다는 주절과 주절을 병렬로 연결시키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에 의해 신속한 이동의 느낌이 더해집니다. 

■ 마가는 마태나 누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현재 시제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은 마가복음의 생생하고 구어적인 스타일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마가의 이런 문체적인 특징은 마가복음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생함과 활력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이 과거에 비해 빠른 전개를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런 마가의 문체적인 특징이 재평가를 받게 만든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둘째로, 마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더 자세한 묘사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마가복음의 기적 이야기는 같은 내용을 다루는 마태복음보다 평균 두 배 정도가 깁니다. 왜냐하면 마태는 곧장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반면 마가는 좀 더 생생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을 쫓아내시는 모습을 다룬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현격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마가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듯이 상황을 세부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에게 이야기꾼의 은사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주된 원천이 바로 누구보다도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었던 베드로의 기억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접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을 마가는 베드로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광풍이 불어 배에 물이 가득 찬 그 순간에 예수님이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던 것을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또한 마가복음에 가끔씩 등장하는 제자들의 생각이나 감정에 관한 언급도 마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베드로의 기억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셋째로, 마가는 샌드위치 기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샌드위치 기법이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샌드위치 빵 사이에 토핑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시는 사건 속에 혈루증 않는 여인의 치유 사건을 포함시킨 경우가 전형적인 샌드위치 기법입니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공유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마가는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이 샌드위치 기법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열두 제자의 파송과 귀환 사이에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한 회상을 집어넣었습니다. 마가는 이를 통해서 세례 요한의 죽음과 제자들의 사명을 의도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예수님이 사탄의 세력에 속했다고 서기관들이 비난하는 장면과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친족들의 이야기를 묶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는 것과 성전 정화 사건, 예수님의 재판과 베드로의 시련 장면 등등이 서로 엮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두 장소를 번갈아 가며 비추어 주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를 통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계속 흥미를 유지하고 한 장면의 의미를 보다 폭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 덕분에 마가복음을 읽는 사람은 결코 지루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계속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f. 다른 복음서와의 관계


마가복음은 그 내용 중 약 90퍼센트 정도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동시에 나오거나 혹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중 적어도 한 곳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복음서 중에 어떤 복음서가 가장 먼저 쓰였을까요? 초대 교회 당시 교부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사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된 복음서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그 이후 오랫동안 교회에 통용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중반 이래로 이런 믿음은 마가우선설로 대체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일부 소수의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마가우선설(Marcan Priority Hypothesis)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마가우선설이란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였고 그 후에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참고하여 각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썼다는 가설입니다. 이런 가설을 전제로 하고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가져와서 사용했는지를 연구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복음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형성 과정보다도 완결된 형태로 복음서 자체의 의미를 캐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태복음은 마태복음으로, 누가복음은 누가복음으로, 마가복음은 마가복음 그 자체로서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저자가 자료를 어디서 가져왔건 간에 하나의 복음서 안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가계, 탄생, 유년기에 대한 기록이 전무합니다. 단지 삼년 반 동안의 예수님 공생애 기간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은 내용이 단조롭고 간결하기 때문에 처음에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주석의 양이나 설교의 빈도수에서 다른 복음서에 밀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같은 이유 때문에 마가복음에는 큰 매력이 있습니다. 시드니 무어 신학대 교수인 아란 콜 박사는 "베드로의 자료는 그 모든 간결성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에 강조점을 두는 적이 없다. 항상 핵심과 요점을 잘 추려낸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은 짧지만 매우 개성적이고 독창적이고 신선한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짧고 간결한 덕분에 미전도 종족에게 필요한 성경을 번역할 때 가장 먼저 번역되는 성경책이 바로 마가복음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마가는 첫 장을 시작하자마자 마가는 곧바로 행동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불같은 설교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제시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행적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마가는 예수님이 행하신 열여덟 개의 기적을 언급하면서 비유는 단 네 번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대화를 묘사한 것이 많아 대화의 복음이라고 한다면 마가복음은 사건의 묘사가 뛰어나 행동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관해서는 말해주는 바가 적지만, 예수님의 행하심에 대해서는 아주 풍부합니다. 마태와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생애를 천연색 슬라이드로 보는 것 같고 요한복음은 잘 그려진 초상화를 보는 것 같다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영화로 보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이런 점은 마가복음이 로마에서 쓰인 것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권능과 행동을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마가는 그들에게 능력의 예수님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폭풍이 부는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g. 추가된 종결의 문제


예수님의 부활을 다룬 마가복음 16장에서 9절부터 20절까지 부분이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현대의 많은 번역본들이 이 부분을 꺽은 괄호로 묶어 놓았습니다. 마가복음 주석을 쓴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가복음은 16장 8절에서 끝나고 9절부터 20절까지는 후에 추가된 부분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이런 주장은 사본 상의 증거와 내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이 됩니다. 사본학적으로 가장 권위가 높은 4세기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의 마가복음은 16:8로 끝이 납니다. 이 입장은 교부들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마가복음 16:8 이후 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유세비우스도 16:8을 마가복음의 끝이라고 전제하고 해당 본문을 인용했다고 합니다. 반면 9절부터 20절까지를 포함한 사본도 있습니다. 또한 저스틴이나 이레니우스, 터툴리안은 20절을 마가복음의 종결로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9절부터 20절을 마가복음의 원본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내적 증거들 때문입니다. 내적 증거는 언어와 내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단 9절부터 20절 사이에는 마가가 사용하지 않은 단어와 표현, 문체들이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또한 내용면에 있어서도 앞부분과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래서 9절부터 20절까지는 후에 다른 복음서의 내용을 참조하여 추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것은 8절로 끝난다는 것이 너무 갑작스럽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부분을 제외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는 오랜 역사 속에서 이 부분을 마가복음의 일부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교리적으로 문제가 될 내용도 없습니다. 오히려 초대 교회의 부활신앙과 선교신앙을 잘 요약해서 드러낸 단락으로서 가치가 큽니다.


III.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 본 바대로 마가가 마가복음을 쓸 당시는 네로의 대박해가 있던 시대였습니다. 기독교 공동체 여기저기 고통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오던 때였습니다. 결코 마가가 한가해서 마가복음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성령님의 감동으로 쓴 복음서가 마가복음입니다. 현재 우리도 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은 날로 커져 갑니다. 캠퍼스에 복음을 마음껏 전하지 못하고 캠퍼스 폴리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입니다. 청년들은 현실 문제에 매여 두려워하고 아파하지만 획기적인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를 향해 하나님께 주신 해답 역시 마가복음 1장 1절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고 대박해를 이기고 적대적인 세상 한 가운데서 교회를 세웠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고 어려움을 이기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캠퍼스 가운데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가처럼 겁이 많고 여린 학생 제자들을 성숙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변화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번번이 실패만 하던 제자들을 담대한 믿음의 사도들로 변화시키신 예수님께서 이 부족한 저도 변화시키셔서 담대한 복음의 전달자로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끝)



참고 도서


박윤만, 길 위의 예수, 그가 전한 복음 마가복음, 서울 : 킹덤북스, 2017.

황원하, 설교자를 위한 마가복음 주해, 서울 : CLC, 2009.

R.T.프란스, NIGTC 마가복음, 이종만 외 2인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크로스웨이 ESV 스터디 바이블 편찬팀, ESV 스터디 바이블, 신지철 외 4인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4.

그랜트 오스본, LAB 주석 마가복음, 박대영 옮김, 서울: 성서유니온, 2009.

로버트 귤리히, WBC 성서주석 마가복음, 김 철 옮김, 서울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제자원 편집부, 옥스포드 원어성경 대전 마가복음, 제자원, 2001.

라마 윌리암슨, 현대성서주석 마가복음, 서울 :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정훈택, “마가복음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두란노 HOW주석, 마가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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